“당신을 충분히 이해해요. 납치를 당하면 당신처럼 납치자에게 동조를 하고 연민을 느끼는 경우가 있지요. 우리는 그것을 ‘Stockholm Syndrome(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들어 보셨나요?”
대니얼은 사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인데, 은행에 무장 강도가 들어 은행에 있던 사람들을 엿새 동안 인질로 삼아 경찰과 대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인질들은 처음에는 강도들을 무서워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이해하고 심지어는 경찰로부터 그 강도들을 보호하고자 그들을 옹호하고 협조까지 하게 되지요. 사건이 종료되고 나서도 인질이 된 사람들은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사건 후 심리학자들이 그 사건을 연구하면서 납치나 인질과 같이 아주 극한 상황에서는 약자가 강자의 논리나 주장에 동화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심리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결론을 짓고 그런 상황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이 신드롬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 유명한 ‘패트리샤 허스트(Patricia Hearst) 사건’입니다. 미국 사람이라면 허스트 가문의 납치 사건을 잘 알 겁니다.”
미아의 표정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대니얼은 서두르지 않고 마치 강의라도 하듯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1974년 신문왕 허스트의 딸이 19살 때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납치됩니다. 여자를 납치한 자들은 SLA라고 하는 극우단체였는데, 그들이 패트리샤 허스트 양을 납치한 동기는 물론 돈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보통 납치 사건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2달 만에 패트리샤 ― 흔히 패티(patty)라고 불리는 그녀 ― 가 세상에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그녀를 납치한 사람들과 같이 은행을 터는 모습으로 은행 CCTV에 찍히게 됩니다. 그녀를 납치한 단체는 급진적인 성향을 지닌 SLA, 한국어로 ‘공생해방군’이라는 극단적인 이념단체였습니다. 그들은 패티에게 그들의 이념이 진리라는 것을 세뇌시킨 겁니다.”
“…….”
“처음 그 단체가 그녀를 납치했을 때, 그들은 그녀를 아무도 없고 아무 자극도 없는 백열등만 있는 작은 독방에 가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주기적으로 주는 식사와 백열등뿐인 그 독방에서 패티가 점점 지쳐 가고 그녀의 뇌가 텅 비었을 때 그들은 그녀에게 조금씩 자극을 주기 시작합니다. 패티는 이미 공포와 권태를 경험한 상태라 반복되어 주어진 자극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쉽게 말해 그녀는 세탁된 거라 할 수 있는 상태지요.”
미아의 눈빛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찰나의 일이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대니얼의 목소리는 어느 사이 신중한 빛을 띠고 있었다.
“세탁된 그녀에게 그들은 그들의 이념을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사회의 부조리가 어쩌고…… 너희 아버지는 민중의 기생충이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어쩌고…… 그래서 우리는 은행을 털려고 한다 어쩌고…….’ 반복되어 들려진 그들의 논리에 탄복하여 패티 허스트 양은 울면서 자신도 사회를 위해 인류를 위해 그 훌륭한 일에 참가하기를 애원합니다. 결국 그녀는 SLA 조직의 일원이 된 것이지요.”
“…….”
“납치된 지 2달 후 패티는 타냐라는 이름으로 반자동소총 권총을 들고 은행을 터는 모습으로 감시카메라에 나타납니다. 그녀는 계속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는데, 당시 패티는 그녀를 납치했던 SLA라고 하는 단체 리더의 아이를 임신까지 하고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패티는 결국에는 변호인단을 통해 그녀가 육체적, 정신적 고문과 세뇌에 의해 강도 행각을 벌이게 되었다고 주장하여 무죄가 되었습니다.”
미아는 대니얼이 길게 말하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경청하는 태도는 대니얼에게 힘을 주었다.
“외부와 격리된 상태에서 두 달도 안 되어 그들의 이념에 금세 동조한 패티는 대표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패티 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패티가 경험했던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거예요. 마이클 도니 비토에게 납치되어 4개월 동안 별장에 갇혀 있으면서 마이클을 사랑한다고 세뇌당하고, 당신 스스로도 그렇다고 착각하여 지금 패티처럼 그를 보호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아,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납치당한 상태가 아니에요. 당신을 협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당신에게 심리치료를 해주는 것은 물론 당신의 신변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미국에는 증인보호프로그램이 완벽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대니얼이 여기까지 이야기하는데도 미아는 그의 말에 어떤 이의도 달지 않고 있었다. 미아가 긍정하는 자세를 취하자 대니얼은 이제 그녀에게 그녀를 움직일 만한 결정적인 말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보세요. 당신은 아름다워요. 게다가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미아, 당신은 사람들이 마피아라고 부르는 이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충분히 자유롭고 정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마이클을 보호하기 위해 납치된 사실을 부인하지만, 마이클이 당신을 납치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당신이란 존재는 마이클을 위협할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에 비토 가문은 결국 당신을 파멸시킬 겁니다. 그건 아마 당신이 더 잘 알 겁니다.”
미아는 대니얼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마이클의 이름이 나오자 책상에 있던 그의 사진을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다시 훑어볼 뿐이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대니얼의 상관 폴과 그의 뒤로 뚱뚱하고 작은 키의 전형적인 이탈리안 백인이 급하게 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서고 있었다.
“변호사야.”
폴은 고개로 대니얼 옆의 여자를 까딱이고 가리키며 말했다.
“Miss Mia Yi, 내가 늦은 건 아니죠? 늦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이 사람들이 하는 어떤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저와 같이 나가도 돼요.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요.”
변호사는 판사가 주었다는 서류를 펄럭이며 여전히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미아가 변호사의 말에 일어서서 문을 향해 한발 디디자마자 대니얼은 미아의 팔을 움켜쥐고 등 뒤에서 한국말로 나직이 말했다.
“미아, 당신이 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 변호사를 따라가는 순간 그들은 사진에 찍힌 이 키 큰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당신을 죽일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이렇게 젊고 매력적인 동포가 돼지 같은 이탈리안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니 대니얼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미아는 대니얼의 진심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고마워요, 저를 걱정해 주셔서. 근데 가기 전에 말씀드리고 싶어요.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라 리마 증후군이라고요.”
미아는 그 말을 뒤로하고 취조실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