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질지 못한 성격 탓에 이리저리 상처받는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여주.
남들은 그런 그녀에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행복이 찾아온다고 위로해주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사는 것이 재미없다.
그러한 고달픈 여주의 인생에 선물처럼 남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아니, 정확하게 남. 자. 들. 이!
최여주: 여러 가지 사연 때문에 남들보다 늦은 대학생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이상형의 남자가 들어왔다. 자상하고 깔끔한데다 나이도 그녀보다 무려 다섯 살이나 많다! 연하라면 학을 떼는 성격이라 최소한 한 살이라도 연상인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그녀였는데. 드디어 그녀가 평소 꿈꾸어 왔던 그가 나타나 그녀 마음을 흔들고 있다.
김건우: 타고난 영특함 때문에 남들보다 대학을 3년이나 일찍 갔다. 어린 나이에 대학생이라는 사실은 결코 득이 되지 않았기에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개팅장소에 나가고 거기서 여주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모르지만 그 이후로 그녀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다.
이창민: 작은 동물병원 원장.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하는 건전한 성격에 반듯한 외모와 성품을 가진 그. 주변에 친구들이 하나둘 장가를 가고 이제는 여자를 가까이 하고자 여러모로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는 참, 재미없다는 치명적 약점으로 여자들과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연애세포 자체가 없어서 그런지 여주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져도 모르는 눈치이다 어느 순간 알아채고 그녀를 다시 보게 된다.
박재성: 창민의 친구. 대대로 내려오는 한의사 집안의 한의사. 능력, 외모, 재력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 왕자병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여주가 창민의 뒤를 몰래 밟는 것을 당연히 자신을 좋아해서 그러는 줄 아는 제 멋대로 해석하는 심각한 자뻑 왕자.


<본문 중에서>

“함박스테이크 정식 A세트.”
창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재성에게서 요란한 콧바람소리가 났다.
‘저 사람 무지 화났나 보구나.’
괜히 졸아든 여주는 휴대폰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삐삑!
마침 문자가 들어와 그녀는 긴장감 도는 와중이었지만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밥 파라다이스에서 시키는 거야? 내 입을 뭘로 알고!”
재성은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얼굴까지 붉히며 사뭇 싸가지 없게 창민을 나무랐다. 그 사이 문자를 확인한 여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흐음, 두말 않겠다. 나가자. 밥은 내가 사줄 테니.”
“그냥 오늘은 여기서 먹지?”
만만치 않은 창민의 대응. 재성 역시 그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눈에 힘을 주고 말하려다 옆에서 잡음처럼 들리는 여주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고 흘끗 바라봤다.
“무슨 일이신데요?”
여주는 건우와 통화중이었다. 전화를 해달라는 건우 문자에 전화를 걸고 있던 참이었다. 통화를 하면서 창민과 재성의 심상치 않은 기류에 아무래도 건우 전화를 핑계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한창 실랑이 중이던 창민과 재성은 비명 소리를 듣고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왜 그러세요?”
그녀의 비명에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같은 말을 외쳤다. 그녀는 말은 못 하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미 손에 힘이 빠진 그녀는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전화기 속의 건우는 계속 “여보세요! 여보세요!”를 다급하게 외쳤다.
비척대면서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여주는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그러다 숨이 끊어질 듯하던 그녀가 겨우 내뱉은 말.
“허리. 허리. 허리.”
“Hurry? 급하다는 건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 못 한 창민은 자신의 친구를 보며 물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재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허리가 아프다는 건가요?”
이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그녀가 맞다는 듯 고개를 재빠르게 끄덕거렸다.
“이런, 일어나면서 허리가 잘못되었나 보군.”
재성의 말에 창민이 여주를 안심시키려고 그녀의 팔을 잡았다.
“구급차 부를까요?”
이에 발끈한 재성이 말했다.
“구급차 부르면? 신경외과로 보내려고?”
재성은 한의사인지라 자신의 잠재고객이 양방병원으로 가는 것을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MRI도 찍어야 하잖아?”
창민의 말에 재성이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외쳤다.
“우리 병원을 무슨 동네 구멍가게로 아나? 우리 병원 첨단시설 다 갖춰 놔서 MRI 촬영도 할 수 있어, 인마!”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두 남자는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답답해진 여주가 그냥 기어서라도 나가자는 심정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다는 것이 그만 재성에게로 넘어지고야 말았다.
꽈당!
무방비 상태로 둘이 바닥에 넘어지자 커다란 효과음이 울렸다.
“아악!”
이번엔 재성이 소리를 질렀다. 여주는 역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재성의 기다란 몸 위로 그녀의 몸이 살포시 엎어졌다. 김 위에 놓인 밥처럼.
“야, 아무래도 구급차 불러야겠다.”
사태가 거의 재앙수준으로 치닫자 창민이 수화기를 들었다.
“구. 급 .차. 는. 안. 된. 다. 고. 그. 랬. 지?”
소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파하면서도 재성은 기어코 구급차를 거부했다.
“구급차 불러서 너희 병원으로 가자고 하면 되지!”
그 말에 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사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