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금지’ 인생 25년째.
화려한 교사의 길을 꿈꾸는 지금!
웬 악마같은 녀석이 자꾸 지랄을 해댄다.

“야, 이 묵은지 자식아!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김치원’ 인생 19년째.
오로지 이날만을 기다리며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다.

“아주 쇼를 해라. 네가 김하늘이냐?”

악마 같은 ‘묵은지’와,
묵은지만 보면 파리해지는 ‘시금치’의
전쟁같은 사랑이야기.



[본문중에서]

봄바람이 넘실넘실. 갓 봄 딱지를 붙인 3월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새로 장만한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거금 9만원을 투자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강양춘 여사가 열렬히 아끼는 명품 가방을 가지고 학교로 출근한 나는 입이 찢어져라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교사의 꿈을 키워 온 지 십수 년. 드디어 그 첫날이 시작된 것이다! 두 근 반 세 근 반하는 심장은 터져라 쿵쾅대고 침은 꼴깍꼴깍 쉴 새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 이 문만 넘어가면,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날 보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를 하겠지? 생각만 해도 또다시 스물 스물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래 얘들아. 선생님이 왔단다. 벌써부터 드는 흐뭇한 생각에 교실 문을 열려 손을 든 그때.
“아야!”
“아, 뭐야 아줌마.”
아, 줌, 마? 어깨에 작은 고통을 주는 충격과 함께 마음에 큰 고통을 주는 한마디. 아. 줌. 마? 두근거리던 마음이 어느새 신경질적인 마음으로 바뀌어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웬 가슴팍이냐? 엥? 빨간 이름표? 뭐야! 학생인 거야? 돌아보자마자 눈에 띈 것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빨간 명찰을 단 사내놈의 가슴팍. 눈을 치켜 올려 보자 험악하게 생긴 사내놈이 날 팍하고 노려보았다.
“뭘 봐. 아줌마. 스머프 반바지만 해 가지고. 저리 꺼져.”
허! 기가 차고 코가 차고 허파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어린 노무 자식이 뭘 봐? 아줌마? 스머프 반바지? 꺼져? 한 번에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아서인가 숨을 씩씩 몰아쉬며 그 녀석을 노려보았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난 이래 뵈도 선생이라고 선생! 목구멍까지 이 말이 들어찼지만 순간적으로 인상을 쓰는 녀석에 눈빛에 졸아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야만 했다.
“저기……, 난 아줌……마가 아니라…….”
“바보.”
또다시 한마디 내뱉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 녀석. 순간적으로 멍한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볐다. 안 돼, 안 돼. 이런 일 가지고 충격 받을 순 없어. 하지만 나는 또다시 드는 충격으로 멍 때릴 수밖에 없었다. 날 아줌마라고 부른 저놈은 나보다 6살이나 어린 고등학생이고, 날 스머프 반바지라고 부른 저놈은 3학년 3반이고 어린놈한테 꺼져 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 말 못한 한심한 나는 오늘 부로 3학년 3반의 담임이 된 것이다. 으아아악! 이럴 수는 없잖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