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누구……세요?”
남자가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들었어.”
“……네.”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대단한 외모였다. 무표정한 게 분명한데, 지독하게 차갑다. 만지면 얼음이 손에 닿을 듯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내 이름은 수호, 22살이다. 넌 케이, 나이는 18살이야. 나보다 4살 어려. 그리고 난 네 남편이야.”
18살…….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부모님은? 왜 난 여기 이렇게 갇혀 있는 걸까? 아프다는 이유로? 누가 나의 목숨을 노리는데? 정작 여기 있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더 위험한 건 아닐까?
“그런데 어떻게 그쪽이 남편이라는 거예요? 18살밖에 안 된 저랑 어떻게?”
“혼인신고는 하지 못했지만, 비밀리에 우린 같이 살고 있는 관계니까. 그다음이 궁금하면 네가 기억을 떠올려.”
그는 말없이 팔짱을 끼고 앉아 그녀를 헤집듯이 깊어진 눈빛으로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받아내기 부담스러워져 시선을 피했다.
“부모님은…….”
“네 부모님은 없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야. 너한테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그러니까 안 찾는 게 나을 거야.”
세상에 자기 자식이 어찌되는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거짓말! 그럴 리 없다.
“나를 못 믿는군.”
수호가 매혹적인 입술을 슬쩍 비틀며 조소했다.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당연하잖아요.”
“상관없어. 난 네 안전 외에 다른 건 관심 없으니까.”
“왜 이름도 얘기해 주지 않는 거죠?”
“네 이름을 말하면 그게 시발점이 되어 다른 모든 기억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올까 봐.”
“네?”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모호하게 지어 보였다. 더 이상의 힌트는 없다는 듯, 표정이 단호했다.
“집으로 보내 주세요. 돌아가고 싶어요.”
“……난 차라리 네가 기억을 되돌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상하다. 이 남잔……. 왜 기억을 되돌리지 말라는 걸까?
“당분간 여기 머물러 지내.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여기로 들어올 수 있어. 날씨가 좋지 않으면 그나마 그것도 어렵지만……. 의료진과 영양사가 네 식사와 치료에 만전을 기할 거야.”
수호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그대로 나가려 했다. 남색과 자줏빛이 뒤섞인 체크무늬 셔츠에 긴 다리를 감싼 네이비 바지 아래 검은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셔츠 소맷자락은 서너 번 접어 올렸고, 앞머리가 길어서 눈썹을 덮고 있었다. 깊고 검은 머리카락 색깔 때문에 인상이 더 차게 보였다.
“저기요!”
“이름 불러. 오빠라고 하면 더 좋고.”
“……치료가 전부 끝나면 내보내 줄 거죠?”
“내가 왜?”




-2권-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로구나. 넌…… 정말 내 인생 최대의 선물이야.’
미칠 것 같았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다른 가슴을 부여 쥐고 다른 쪽 가슴은 입술과 혀로 부드럽게 원을 그려 나가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도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했는지 미간이 확 구겨지더니 눈꺼풀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아랑곳 않고 더욱 집중해서 정성을 다해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을 맛봤다. 발갛게 달아오른 정점을 혀끝으로 슬슬 지분대다 툭 건드리니 그것은 금세 잘 여문 한 떨기 꽃이 되어 새빨갛게 피어났다. 정말 아름답다. 눈물 나도록.
“으응!”
아이는 몸의 어느 부분이 무언가에 젖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딘가에서 비라도 샌 게 아니라면 이렇게 축축하다 못해 뜨끈할 리가 없었다. 뜨끈하다니? 하지만 잠의 수마에 완벽하게 미혹당해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떠지지 않는 눈을 떴다. 흐릿하게 무언가가 보였다. 검은 무언가가 그녀의 가슴 부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헉, 개, 개가 있나? 그런데 가슴이 뭔가 좀…… 이상하다. 이건 뭘까? 시야가 흐릿해서 보이지 않아 결국 손의 감촉에 의지하기로 하고 그 검은 덩어리를 만져 보았다. 부드러운 털이 손가락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그때, 무언가가 닿지 말아야 할 곳에 닿기라도 한 듯 그녀의 입에서 신음성이 툭 터져 나왔다.
“읏!”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려 눈을 커다랗게 키우고 앞의 상황을 내려다봤다. 수호가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가슴을 물고 있었다. 브, 브래지어는 어디로 사라지고 왜 이런 자세가!
“오, 오, 오, 오빠!”
“못 참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지금…… 너무 실례되는…….”
“실례를 무릅쓰고 묻는데, 내가 감히 너를 범해도 되겠니?”
그런데 큰일이다. 밀어내야 하는데, 이미 야릇한 감각에 사로잡힌 몸이 그를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가슴을 혀로 뭉개는 그의 현란하고 세심한 움직임에 몸이 나른해지고 그가 주는 달콤함에 그대로 사로잡혀 있고만 싶었다.
“그래도 이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너무도 빤한 수순이 정해져 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허벅지 안쪽에서 뜨끈하고 뭉클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네가 날 유혹했어. 누가 이렇게 하고 자래? 이건 대놓고…… 먹어 보라는 거잖아.”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아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