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검은 폭풍 카라부란 KaRa BuRan

“나는 내 마음이…… 왜 열아홉, 꼭 그 즈음에서 머뭇거리는지…… 그 이유를 몰랐어요. 그래요, 전하. 당신께서는 그 일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모르시겠죠?”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대였어. 그래서 후회했었나?”

“아니, 오히려 감사했어요. 내 삶이 몹시 나른해질 때면, 그 기억은 아주 정확하게 살아나 나를 소름끼치게 했거든요.”

슬픔에 젖어 떠난 여행은 닮은 영혼을 만날 때 비로소 안식처를 찾는다.
―K.지브란



매일 바람에 따라 모양이 바뀌어 높이를 알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명사산(鳴沙山), 그리고 사막의 오아시스 월아천(月牙泉) 둔황(敦煌), 마가오굴, 모래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가오창 고성과 훠옌산,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실크로드.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들어가서 살아서 돌아온 자는 아무도 없다는 ‘타클라마칸’사막이 나온다. 그 사막에는 1600년 전 갑자기 몰아닥친 검은 폭풍 카라부란에 의해 사막의 모래 속에 가라앉아버린 신비의 러우란 왕국이 잠들어 있다. 엄청난 금은보석과 함께.
세계 각국의 수많은 탐사대들이 러우란 왕국의 보물을 찾아 떠났지만 살아서 돌아온 자가 단 하나도 없었다.

2000년의 어느 날, 대한민국 명문 사립 고등학교 3학년인 민은서는 여름방학 동안 미국에서 둔황 탐사를 준비하고 있는 오빠를 찾아간다. 그러나 오빠 민준서의 아파트로 가던 중 바로 옆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배신자에 대한 처형사건을 목격하고 도망치게 된다.

처형자들은 하나같이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유독 은서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 사내. 그 사내의 눈빛이 은서의 가슴에 불로 지진 듯 강렬하게 파고든다.

은서는 ‘그냥 돌아가라’는 편지만을 남기고 사라진 준서를 찾아 그의 룸메이트 케인과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가고 그곳 카지노에서 게임 중에 큰돈을 잃은 준서를 찾아낸다.
게다가 하필이면 준서와 게임 중인 사람은 바로 그 사내. 한눈에 그녀를 알아본 사내는 은서를 담보로 잡고 준서에게 하룻밤 안에 돈을 구해 올 것을 요구한다.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 그 처형자들과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된 은서.
하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은서는 그 사내의 전용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사내의 호화로운 전용비행기는 마치 마법의 양탄자처럼 그녀를 1500년 침묵의 왕국, 러우란으로 데려가는데…….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를 알고 있겠지?
뜨거운 사막에 왕이 살고 있었지. 왕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이기적이며 인정도 없었지. 물론 사랑도 몰랐지. 그래서 이를 괘씸하게 여긴 요정에게 저주를 받아 야수로 변해 버렸고 누군가 사랑해 주기 전에는 마법에서 풀려날 수 없게 되지.
어느 날, 야수는 소녀를 만났지. 왕은 말했어.
왕의 보물을 탐내어 죽게 된 너희 오빠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이니, 나의 신부가 되어달라고.
그랬더니 소녀가 이렇게 대답했어.
나는 아직 미성년자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당신과 결혼하러 돌아올게요. 약속해요. 나와 내 가족의 목숨을 걸고 각서를 쓰죠.
그래서 왕은 그녀를 믿고 반지까지 주었지만 소녀는 사막을 나서자마자 줄행랑을 쳐 버렸지. 그래서 뭔가? 그 잘난 고고학자? 넌 그저 나의 보물을 훔치러 온 도둑일 뿐이야!”
“전하! 약속을 어긴 벌은 제가 받겠어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제발…….”
은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정했지만 왕이 바람같이 다가와 그녀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꽤, 간단하군. 하긴 삼 년 전 내 손을 빠져나갈 때도 그랬지. 그런데 이런! 이제 어떻게 하지, 또다시 보물을 훔치려 한 오빠와 소녀의 목숨이 왕에 손에 떨어졌으니……쯧쯧! 좋아, 목숨만은 살려주지. 하지만 잊지 마! 네가 삼 년 전에 돌아왔더라면 러우란의 왕비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나의 노예일 뿐이라는 것. 두고두고 살아있는 것을 후회하도록 만들어주지. 어때, 재미있지 않겠나?”

나는 언제나 그녀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 울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녀를 내려놓았다. 내 사랑은 그랬다. 전쟁처럼, 공격적이고 잔인했다. ……그녀가 항복이라고 외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