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나도 반찬싸움 말고 재산싸움 해보고 싶다고! 부모자식 간에 긴장 좀 바짝 해보자고! 형제의 난 한번 일으켜보잔 말이야!”
대한민국 대표 흙수저로 억울한 삶을 마감했지만
2회차는 드디어 재벌 딸이다!
그것도 남부를 장악한 대재벌 세르지오 가의 후계자로!
비록 세기말 악녀의 언니라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무슨 상관?
어차피 그 애는 시한부에 나는 후계자인데!
하지만 그새를 못 참고 여동생은 뒤통수를 쳐주시고 인생 목표였던 상단의 후계자 자리가 위태해진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2주,
그사이 어떻게든 제국 최고의 신랑감을 데려와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대신전 신랑감 원정대.
젊고 능력 있고 잘생기면 더 좋고!
한 가지가 아주 살짝 걸리긴 하지만…… 뭐 어때.
어차피 계약결혼이니 ‘그런 건’ 확인할 일도 없을 텐데.
아델이 입술만 벙긋거리다 말고 그를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조각상 같은 고귀한 기사단장님 앞에서라면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이 남자도 한 마리 짐승이라는 걸 뼛속 깊이 체득했다.
“아…… 그거 말이군요.”
서늘한 웃음으로 다가온 킬리언이 그녀를 두 팔에 가두었다. 어깨를 지나쳐 귓가에 속삭이는 음성이 은근하게 울렸다.
“제게 문제가 있다 말한 적은 없을 텐데.”
2. 작가 소개
포르토피노
3. 차례
#4. 반품 불가
#5. 컴백홈
#6. 소박한 선물
4. 미리 보기
“……단장님, 설마 절 찾으러 오신 건가요?”
“…….”
“아니시지요?”
아델은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 위에서 절 내려다보는 킬리언의 눈빛이 자신이 생각하는 후회의 그것과는 다른 감이 있지만, 뭐 어때. 그 정도 디테일은 포기할 수 있다. 대업을 위해서라면야.
“아…….”
천천히 그를 훑어보던 아델이 미약한 헛웃음과 함께 입가를 가렸다. 알겠다, 하는 깨달음을 표현하기 딱 좋은 동작이다.
“혹시 레베카 신녀님을 만나셨나요?”
“…….”
“역시. 그러지 말라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착잡한 얼굴로 반쯤 돌아선 아델은 연거푸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특히 왼쪽 옆모습에 자신이 있는 편이다.
“단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들었습니다.”
“……네?”
이번에야말로 아델은 진짜 당황했다.
이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여기까지 말을 타고 달려온 남자에게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둔 표정이나 반응 역시 보다 솔직해질 수밖에.
“……아니, 왜요?”
“왜라니.”
“대주교님의 대리인으로서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줘야지요. 레베카 신녀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실 줄 알고…….”
“그분이 어떤 말을 하든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이건 뭐지?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아델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정말로 머리까지 지끈거려 눈가를 좁히는 그녀의 앞으로 킬리언이 훌쩍 뛰어내렸다.
“레이디 아델레이드,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아마도 그대가 사람을 잘못 본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무슨 말이냐면…….”
순식간에 다가서는 바람에 물러날 틈도 없었다. 킬리언은 발끈하듯 고개를 든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그 손을 받쳐 들었다.
“난 이런 쪽으론 그다지 허락은 구하지 않는 편입니다.”
아델이 그의 커다란 손에 꽉 잡힌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잠시만 꿈틀거렸을 뿐인데 킬리언의 손이 더욱 빈틈없이 조여왔다.
“그러니 이리 간청할 때 돌아가시지요.”
……간청? 어디가?
자신이 아는 뜻과 달라도 심히 다른 킬리언의 말에 아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계획에 의해 꾸며내는 것보다는 훨씬 생동감이 넘치는 반응이다.
킬리언이 그녀를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어찌 그러십니까.”
“……단장님이야말로 어찌 그러신가요?”
아델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이건 도로를 이탈해 멀미가 날 지경이다.
“가라고 하실 땐 언제고 왜…….”
“내가 언제.”
킬리언은 당당했다. 아델은 이런 남자가 후회로 가득한 모습을 할 거라 믿고 있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어쩌면 오늘 산 피델리오의 짐승을 한 마리만 깨운 것이 아닌가 보다. 거기다 아까 아이는 새끼였지, 이쪽은 성체 맹수다.
“그래서 아니라고요? 단장님께서 저를 싫어하시는 거야 알고 있었고…….”
“단 한 번이라도…….”
“…….”
“내가 그대를 싫어한다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조용한 음성이거늘, 피할 수 없을 만큼 가슴 깊이 내리꽂혔다.
왜 이러는 거야?
아델이 엉거주춤 고개를 돌렸지만 재클린은 다가올 엄두도 못 내고서 숨어 있다. 그의 기세에 질린 건지, 감탄을 하는 건지 넋이 빠져 있다.
아델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킬리언의 옷깃을 잡았다.
“그걸 꼭 말을 해야만 아는 건가요? 내내 대답 한번 제대로 안 해주셨잖아요. 그러니 절 그냥 가게 두셨을 거고…….”
“그럼 내가 그 자리에서 레이디를 둘러메고 내 방에 가두어놔야 했겠군요.”
명심하지요.
무뚝뚝해서 더 진심으로 느껴지는 킬리언의 말투에 아델은 하얗게 질렸다. 그가 원래 이런 남자였나 묻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그녀는 한숨과 함께 옷자락을 털어냈다.
“……좋아요. 그럼 대체 여기엔 왜 오신 건가요?”
“당신이 그걸 모른다고?”
터무니없다는 듯한 웃음이 그의 붉은 입술을 스쳐갔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아델이 발끈하기 전에 그가 먼저 눈썹을 치켜세웠다.
“실망이군요. 그리 자랑스러워했던 세르지오 가의 레이디라면 다를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 저희 집안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건데요?”
“그야 그대만의 집안이 아니게 됐으니까요.”
“……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델이 웃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같이 웃으면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 텐데 킬리언은 언제나처럼 진지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법전에 새겨도 될 만큼 진지한 남자였다.
“잠시만요. 잠시만…… 그 말은 저랑 정말로 혼인을 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럼 안 할 생각이셨습니까?”
“당연히 그건 아니지만…….”
진행이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나.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가 아침에 있었던 오해에 대해 사과를 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줄 생각이었다. 그 후 일단 대신전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그사이에 한껏 상처 입은 얼굴로 그의 죄책감을 후벼팔 계획이었다.
분명히 그랬는데…….
“당혹스럽군요. 세르지오 가의 후계자로서 본인이 한 말을 그리 쉽게 잊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잊다니요?”
빚쟁이가 따로 없다. 그것도 완벽한 무장과 발군의 실력을 갖추었으니 목숨이 아까운 이상, 싫다는 말은 삼켜야만 했다. 그럴 마음도 없긴 했지만 애초에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잊은 게 아니라 놀란 거예요. 단장님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으니까요.”
“……제안이라고?”
되묻는 음색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곧 쓴웃음을 접고서 오만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잊은 게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세르지오 가의 후계자께서 그리 무책임하실 리 없겠지만.”
“전 제가 한 말은 지켜요. 단장님이나 말씀을 바꾸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레이디께서 저를 농락하지 않는 이상.”
“……죄송한데 농락이라니요?”
단순한 빚쟁이가 아니라 본격적인 죄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아델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며 돌아서서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제 치맛자락 아래에서 눈을 깜빡이는 동물을 본 뒤에야 겨우 미소를 되찾았다.
“확실히 해둬야겠네요. 제가 지금 굉장히 나쁜 여자가 된 것 같은데, 저는 처음부터 사정이 급하니 사람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리고 언제나 제 주변에 계셨지요.”
“그건…….”
“앞으로도 쭉 그러시면 된다는 말입니다.”
가시지요.
킬리언은 이 복잡미묘한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을 내린 후, 그만 가자며 아주 살짝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고 보니 그가 계속 제 손을 받치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냈다간 또 무슨 닦달을 당할지 모른다.
가만있자.
아델은 최대한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여보고자 정신을 집중했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멋대로 움직이려는 입가를 지켜내려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웃으셔도 됩니다.”
“……누가요? 제가요?”
“비웃으셔도 돼요.”
언젠가 자신이 했던 말을 그의 입에서 듣자니 기분이 묘했다. 오로지 정면만 보며 걷는 사람이 어찌 알았는지 놀라웠지만,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아델은 코웃음을 쳤다.
“아뇨. 안 웃어요. 전혀 우스운 일도 아니고요.”
“유감이군요.”
“……어째서요?”
“이 혼인은 당신의 인생을 바꿀 가장 중대한 일이라지 않았습니까.”
“…….”
“그러니 한 번쯤은 웃어줄 줄 알았습니다.”
원래 기사들은 다 이런 걸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킬리언에게 아델은 어금니를 꽉 물고 버텼다. 이런 식으로 산 피델리오의 성기사에 대한 명성을 되새길 줄이야.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할 자신이 시도 때도 없이 당황하고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다시 말하면, 킬리언은 지루한 결혼 생활을 함께하기에 ‘꽤 좋은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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