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나도 반찬싸움 말고 재산싸움 해보고 싶다고! 부모자식 간에 긴장 좀 바짝 해보자고! 형제의 난 한번 일으켜보잔 말이야!”
대한민국 대표 흙수저로 억울한 삶을 마감했지만
2회차는 드디어 재벌 딸이다!
그것도 남부를 장악한 대재벌 세르지오 가의 후계자로!
비록 세기말 악녀의 언니라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무슨 상관?
어차피 그 애는 시한부에 나는 후계자인데!
하지만 그새를 못 참고 여동생은 뒤통수를 쳐주시고 인생 목표였던 상단의 후계자 자리가 위태해진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2주,
그사이 어떻게든 제국 최고의 신랑감을 데려와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대신전 신랑감 원정대.
젊고 능력 있고 잘생기면 더 좋고!
한 가지가 아주 살짝 걸리긴 하지만…… 뭐 어때.
어차피 계약결혼이니 ‘그런 건’ 확인할 일도 없을 텐데.
아델이 입술만 벙긋거리다 말고 그를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조각상 같은 고귀한 기사단장님 앞에서라면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이 남자도 한 마리 짐승이라는 걸 뼛속 깊이 체득했다.
“아…… 그거 말이군요.”
서늘한 웃음으로 다가온 킬리언이 그녀를 두 팔에 가두었다. 어깨를 지나쳐 귓가에 속삭이는 음성이 은근하게 울렸다.
“제게 문제가 있다 말한 적은 없을 텐데.”
2. 작가 소개
포르토피노
3. 차례
#프롤로그
#1. 신랑감 원정대
#2. 안녕하세요, 미천한 신의 종 아그네스입니다
#3. 그래, 너로구나. 이 구역의 미친 망아지
4. 미리 보기
“대체 내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눈빛만큼이나 서늘한 음성. 잔꾀는 통하지 않을 사람이다. 그만 본색을 드러내라는 듯한 엄숙함이 그녀를 짓눌렀다.
“레이디 아델레이드.”
“네, 단장님.”
그녀 역시 입가에 남은 웃음기를 지웠다. 그건 그의 의도처럼 엄숙함에 내리눌려서가 아니다.
“안 그래도 어찌 운을 떼나 고심하던 차였는데 마침 말씀을 꺼내주셨군요. 아마 굉장히 당황스러우실 거라 생각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주신다면 다행이네요.”
아델의 투명한 핑크빛 눈동자가 그를 담았다. 이 남자가 아무리 얼음굴의 수련을 마쳤든, 남의 속을 모두 들여다보는 혜안을 가졌든 간에 이제부터 제가 할 말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시겠지만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꼭 치러야 할 인륜지대사라는 것이…….”
“되도록이면 짧고 간략하게.”
“……결혼해요, 우리.”
거보세요. 장담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니까.
아델은 속으로 혀를 차며 굳어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계셨으면 최대한 듣기 편하게 어련히 둘러말했을까.
“저기…… 괜찮으세요?”
킬리언의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렸다.
사람이 맞긴 맞구나.
하도 조각상처럼 서 있길래 혹시나 했다. 남자의 붉은 입술도 경직되어 일자로 다물려 있었다.
“혹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결혼하자고요.”
“…….”
“혹시 당황하셨나요?”
“천만에.”
그런 사람이 왜 머리는 쓸어넘기신대.
여태껏 절도 있게 움직이던 그의 손이 은빛 머리칼을 갈랐다. 눈을 찌푸린 채 숨죽여 내뱉는 한숨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지금…… 처음 보는 제게 청혼을 하신 겁니까?”
“아마도요.”
“저를 모르시지 않습니까.”
“원래 결혼은 모르는 사람끼리 하는 법이랍니다.”
물론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이겠지만.
아델이 태연하게 고개를 까딱이자 킬리언의 한쪽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아마도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타인의 시선 따위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지만 지금 이 남자가 그리 생각하게 둘 수는 없다. 아무리 계약결혼이라지만 제 남편 될 이가 아닌가.
“결혼 적령기의 미혼 남성이시고 산 피델리오 대신전의 성기사단장님이시지요. 대주교님의 대리인을 맡으실 정도라면 검술 외에 상당한 성력도 갖추셨겠죠. 말투로 보아 수도 출신. 구두끈을 그렇게 두 바퀴 감아 매는 건 오르센의 풍습일 텐데 그것이 몸에 밸 정도라면 꽤 오래 그곳에서 지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모습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진 않으시고, 성격은 대체로 솔직하신 편 같네요.”
“……레이디 아델레이드.”
“아, 처음 보는 여자의 미친 소리를 화 한번 안 내고 들어주실 수 있을 정도의 인내심과 예의도 갖추셨고요.”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을 뗐던 남자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아델의 미소는 처음처럼 조신해졌다.
“그리고 여기서 더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역시 레이디에 관해서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군요.”
“네? 저에 대해서요?”
“미쳤다기엔 지나치게 영리하시고.”
“…….”
“제게 진심도 아니시며.”
비웃음인지 흥미인지 알 수 없는 푸른 눈빛이, 그 뜻을 미처 헤아리기도 전에 사라졌다. 어느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킬리언이 제 앞을 턱짓했다.
“제대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절대로 안 나가주실 분이라는 것 정도는.”
아델은 그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최대한 성심성의껏, 간략하게 제 입장을 전달했다. 상단을 물려받으려면 결혼을 해야 하고 시간이 얼마 없다. 1년 정도 결혼을 유지할 상대가 필요하고 당신이 가장 적절하니 생각을 좀 해주시면 좋겠다. 그동안만이라도 데릴사위로서 세르지오 가에 들어와주면 딱이겠다.
상대를 보아가며 감성과 이성을 적절히 자극하는 것도 관뒀다. 직감적으로 그런 게 통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킬리언은 아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말을 끊거나 인상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적극적이었단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상단의 후계자 자리가 필요하단 말씀이십니까?”
“처음부터 제 자리였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러시군요.”
그는 시종일관 대리석상 같은 태도를 고수하며, 묵묵하고 반듯하게 자리를 지킬 뿐이다.
아델은 초조해져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교장선생님 호출도 아니고. 안 그래도 조각상 같은 남자 앞에서 혼자 떠들고 있자니 기도를 하는 건지, 대화를 나누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아버지께선 제가 당연히 친구와 결혼할 거라 생각하고 계세요.”
“레이디도 그럴 생각이셨고요?”
“그거야 그렇지만…….”
제록스가 화제에 오르자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떠올려 좋을 것도 없는 이야기인 데다 일이 그렇게 될 때까지 알아채지도 못했다는 데 자존심이 상했다.
아델을 지켜보던 킬리언이 턱을 살짝 들었다.
“그분의 생각은 다르셨나 봅니다.
“뭐…… 그렇게 됐어요. 제 동생과 잘 어울리니 그걸로 됐죠.”
“그리고 동생분은 금발일 테고요.”
“…….”
뭐야, 이 남자.
아델의 눈동자가 흔들리자 그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언뜻 웃음을 참는 듯도 했는데, 그럴 리는 없다. 그녀가 그를 신랑감으로 점찍은 가장 큰 이유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얼음 같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상단의 한가운데에서 온갖 더러운 꼴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을 것 같은 남자. 돌아설 땐 미련 없이 돌아서는 칼날 같은 남자 말이다.
“그분께도 그리 진심은 아니셨나 보군요.”
“당연하죠.”
뻔뻔한 감이 있지만 더는 감출 것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동생에게 애인을 빼앗긴 비련의 여인’ 흉내를 낸다 해도 믿어줄 상대도 아니다. 아니, 속는다 쳐도 개의치 않으리라는 쪽이 맞을지도 모른다.
“상단 일만 해도 정신이 없는걸요. 다른 데 한눈파는 걸 기다려줄 만큼 인정 넘치는 세상이 아니라서요.”
“그래서 레이디껜 그런 결혼이 당연하단 말씀이십니까?”
그의 말투에서 씁쓸함이 배어난 것 같다면, 착각일까.
네?
아델이 눈을 크게 뜨자 그는 곧 무감해졌다.
“평범한 레이디들에겐 쉽지 않은 생각일 텐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되는 거고, 저는 아니에요.”
“그럼 왜 저인지.”
“단장님께선 사랑을 원하세요?”
“…….”
아니잖아요.
직감이랄 것도 없다. 저리 무감하고 서늘한 눈이 그 누구든 따스하게 바라본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델이 그에게 이런 제안을 꺼낸 것도 그걸 알아봤으니 가능한 일이다.
킬리언이 침묵을 지키자, 아델은 모른 척 입안을 깨물었다.
“모든 건 물물교환이에요. 제가 이 결혼으로 얻는 것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존재 역시 단장님이시죠.”
“…….”
“설마하니 아무런 대가 없이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
그럴 리가. 내가 누구라고.
나는 남부 최고의 거부인 세르지오 가의 후계자란 말이다.
아델의 얼굴에 그럴싸한 자신감이 감돌았다.
“아버지 앞에서 완벽한 부부 행세만 해주신다면 단장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드리죠.”
“모든 것이라니.”
“저희 상단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없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신랑감만 빼면 말이지요.
“세상에 하나뿐인 보석도 일주일이면 그 손안에서 빛나게 되겠지요.”
“보석 따윈 관심 없습니다.”
“고대 트레비아의 마검, 조르네의 성검, 양손에 하나씩 들려드릴게요. 초대 요하스 왕의 전법서도 함께.”
“……그런 조건이라면 굳이 제가 아니라도 줄을 설 텐데.”
“그렇겠죠. 그렇지만 단장님께서 고작 그런 것들을 원하실 리는 없지 않나요?”
아델이 피식 웃었다. 기사라면 목숨도 바칠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읊는데도 그는 단 한 치의 동요도 없다. 예상은 했지만 콧대가 지나치게 높으시다.
“……언젠가 황궁으로 가실 때를 생각하셔야지요.”
처음으로 그의 눈이 흔들렸다. 아델은 흥분을 감추며 눈을 내리깔았다.
“설마 산 피델리오의 단장으로 만족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왜 그리 생각하시는지.”
“좁잖아요. 춥고. 배고프고.”
아델은 찬찬히 또박또박 끊어 말하며 책상에 손을 올렸다.
아무리 대신전이라 해도 남부의 산꼭대기다. 이 정도 되는 남자가 언제까지나 여기에 머물러 있을 리는 없다.
‘내기였다면 전 재산을 걸 텐데.’
3년 후, 아니, 당장 1년만 지나도 그의 존재에 대해 트라네스 제국 전역으로 소문이 퍼져나갈 것이다. 그간 남부에서 한가락 한다 하는 남자치고 수도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황궁에 입성하는 것이야말로 기사님의 최종 목적이라 하겠지요.”
“…….”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이라니, 결코 쉽진 않을 거예요. 기존 세력의 텃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 제국에서 그곳만 바라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낮아진 그의 음성에 아델의 미소는 깊어졌다.
“그때가 되면 세르지오 가의 명예를 걸고 성심성의껏 후원해드리지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원하시는 자리까지 탄탄대로를 내드릴게요.”
“거절합니다.”
“단장님.”
이렇게까지 단번에 잘라낼 줄 몰랐기에, 아델은 입술을 깨물었다. 쉽지 않은 남자라곤 짐작은 했지만 적어도 생각을 해보는 척이라도 할 줄 알았다.
“이야기를 들어드렸으니 손님에게 할 수 있는 도리는 모두 한 듯싶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신다면.”
“아니요. 저는 한번 내린 결정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대쪽도 이 정도일 수는 없겠다. 그가 축객령을 내리듯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델 또한 질척이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네, 단장님 말씀 잘 알았어요. 탄탄대로도 관심 없으시단 거군요.”
“그렇습니다.”
네, 그러시다면.
아델이 눈을 내리깔며 몸을 돌렸다. 그 얼굴이 비장하기 그지없다. 또각또각, 선명한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리 쉽게 나가주다니. 킬리언은 살짝 머뭇거렸지만 그뿐이다.
대체 뭘 바랐다고.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잡고 잡힐 사이가 아니다. 킬리언은 묵묵히 선 채 뒷모습마저도 화려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디 조심해서,”
끼익.
문 앞에서 돌연 그녀가 발을 멈추자 킬리언의 목울대가 오르내렸다.
“레이디 아델레이드.”
“거기서 여기까지,”
무미건조한 목소릴 낸 아델의 눈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황금으로 깔아드리죠.”
없는 황금이 비쳐 보일 정도로 채도가 선명한 핑크빛 눈동자가 그를 향해 휘었다.
“꽃길은 너무 식상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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