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그녀를 사흘간이나 따라다니며 계속 지켜보았다. 이젠 그녀의 습관과 일정을 속속들이 파악할 정도였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나는지, 낮 동안에는 누구를 만나는지, 그리고 몇 시에 잠자리에 드는지, 남자는 다 알고 있었다. 잠들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독서하는 습관까지 알았다. 책의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우선 책부터 탁자에 내려놓은 다음에 스탠드를 끈다는 것도 알았다.
남자는 그녀의 숱 많은 금발 머리카락이 선천적인 것이며, 밝은 보라색 눈이 콘택트 렌즈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다. 화장품을 주로 약국에서 구입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이 정확하게 25분이라는 것까지도 알았다.
그녀는 화려한 겉치장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았는데, 남자는 그런 그녀의 미모에 꽤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미칠 정도로 매료된 건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감정도 아니었다.
처음에 남자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매우 조심했는데, 그런 조심성은 절대적인 필요에서라기보다는 습관에 의해 굳어진 것에 가까웠다.
주민 15만 명 중 10%가 대학생인, 플로리다 동부 해안의 작은 소도시인 벨하버는 도로에서 표지판을 못 봐 길을 잃어버릴 만큼은 아니었지만, 외부 사람이 들어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은 넓은 곳이었다.
오늘 남자는 그녀의 뒤를 밟아 시립 공원에 와서 프레지던트 데이(조지 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 탄생일을 경축하는 미국의 휴일)의 축제를 즐겼다. 웃고 뒹구는 아이들과 느긋하게 맥주를 즐기는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상쾌하고도 지루한 2월의 오후 시간을 보냈다.
남자는 주변에서 어정거리는 아이들, 특히 끈적끈적한 손과 지저분한 얼굴로 숨바꼭질을 하다 그의 발부리에 차여 넘어지는 아이들이 딱 질색이었다. 녀석들은 버르장머리없이 ‘아저씨! 거기 야구공 좀 던져주세요!’ 하고 소리치기 일쑤였다. 덕분에 그는 몇 차례씩이나 편안한 벤치 대신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지금은 울퉁불퉁한 줄기와 밖으로 불쑥 튀어나온 뿌리 때문에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큼직한 나무에까지 이르렀다. 만사가 짜증나게 돌아갔고,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허나 누군가를 지켜보며 기다린다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다.
남자는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모든 관심을 그녀에게 쏟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때 슬론 레이놀즈는 샛노랑색 날개를 활짝 펼친 검은 독수리 연을 나뭇가지에서 떼어 밑으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나무 발치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여섯 살배기 꼬마들이 ‘우와’ 하고 박수를 쳤다. 그 뒤에는 십대 후반의 소년들이 서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되찾은 연에만 관심을 두는 반면, 사춘기 녀석들은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슬론의 쭉 빠진 다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자는 그렇게 서로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그녀를 힐끔거리는 사내 녀석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끈한 다리를 가진 그녀가 스무 살 여학생도 아닌 서른 살이나 먹은 경찰이었으니, 그야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원래 그가 좋아하는 타입은 키가 크고 요염한 여자인데, 이번 상대는 고작 162센티미터의, 육감적인 몸매와는 거리가 먼 우아하고 날씬한 체격이었다. 뭐, 도색 잡지의 모델 후보감은 못 되지만, 주름 하나 없는 카키색 반바지와 깔끔한 흰 니트 차림에 금발을 하나로 묶은 그녀의 신선한 매력과 수수한 단정함이 그를 끌어당겼다.
야구장에서 ‘와와’ 하는 함성이 들리자, 그녀 주변에 서 있던 두어 명의 사춘기 소년들이 남자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종이컵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거의 자동적이었다.
그녀를 쫓아다닌 지 사흘이 지났지만 그녀는 아직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그를 봤다 해도 공원에서 공짜 음식과 전람회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 속에 혼자 서 있는 그에게 수상쩍은 기미를 발견할 리 만무했다.
남자는 속으로 히죽거리며, 슬론이 근무 이외의 시간에는 어리석을 만큼 부주의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밤중에 뒤에서 울리는 그의 발소리에도 무신경했다. 심지어 자동차 문 잠그는 것을 잊기도 했다. 작은 소도시의 여느 경찰들처럼, 그녀도 자기 구역에서는 지나치게 마음을 놓았다. 하긴 가슴에서 빛나는 경찰 배지와 권총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데다, 주민들의 소소한 비밀까지 꿰뚫고 있는 마당에 새삼 위기를 느낄 게 뭐 있겠는가.
하지만 슬론은 낯선 남자가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는 건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남자가 그녀의 모든 신상 명세를 철저하게 파악하는 데에는 7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모든 수치 자료, 즉 나이, 신장, 운전 면허 번호, 은행 잔고, 연봉, 주소 등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입수했다. 심지어 사진까지 손에 넣었지만, 그 모든 자료는 지금까지 그가 직접 지켜보고 알아낸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남자는 미지근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순간적으로 고개를 드는 조바심을 억눌렀다. 그녀의 생활은 대개 규칙적이고 단순했기 때문에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았고, 남자는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끔 엉뚱한 순간에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사태를 일으킬 때도 있었는데, 그는 그러한 불가측성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때문에 남자는 언제나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퍼즐 게임에 비유하자면, 슬론 레이놀즈는 아무리 해도 완벽한 그림이 짜맞춰지지 않는 모호하고 복잡한 여자였다.
슬론이 왼손으로 작은 연을 잡고 조심스럽게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맞잡고 좋아하는 꼬마들을 향해 돌아섰다.
「우와, 고맙습니다, 슬론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