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2006년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던 작품의 종이책 출간본입니다
하얗게 눈이 반짝이는 밤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들뜬 도시의 밤과는 딴 세상인 듯,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저택의 정원은 달빛만 고고하다. 차가운 북풍이 불자 향나무에 무겁게 쌓인 눈이 투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안개처럼 뽀얗게 눈가루가 피어올랐다. 정원 한 귀퉁이를 나긋나긋 걸어가던 검은색 도둑고양이는 눈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랐는지 냐옹, 하며 높은 담장으로 훌쩍 뛰어올라갔다. 눈 위에 고양이의 발자국이 옴폭옴폭 귀엽게 패였다.
서늘한 푸른빛에 싸여있는 저택의 유일한 불빛은 응접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이는 조명뿐이다. 커다란 창에 반짝반짝 꼬마전구가 반사되고 대리석 바닥에도 일렁일렁 오렌지 불빛이 제 그림자와 함께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탈칵.
적막한 침실의 공기를 가르며 조심스레 문이 열리고 창백한 맨발 하나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섬세한 복사뼈가 드러나는 하얀 발, 매끈한 종아리, 가운 깃 사이로 드러난 가느다란 목이 달빛에 파르스름했다. 목이 훤히 드러나도록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침실 안으로 성큼 들어서지 못하고 문가에 서서 꼼지락거리는 여자의 발가락에 망설임이 가득했다. 내내 꼼지락거리던 여자의 하얀 발이 되돌아 침실을 빠져나가려는 듯 방향을 돌렸다.
하아.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어지러워.
여자의 짧게 끊어지는 숨결 사이로 조금 전 마셨던 와인 향이 달큰했다.
부스럭.
갑자기 매트리스가 출렁이며 움직이자 오랫동안 서늘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여자는 움찔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다시 침실을 향해 머뭇머뭇 몸을 돌렸다. 후우.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크게 심호흡을 하며 여자는 차갑게 식은 손을 말아 쥐고 천천히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위태롭고 불안한 걸음.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모습은 전쟁터로 나가는 사람처럼 비장해 보이기조차 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이 체온을 조금씩, 조금씩 앗아가는 동안 여자의 무릎이 커다란 침대에 닿았다.
“후우…….”
딱딱한 침대 모서리에 무릎이 닿자 여자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침실로 들어서면서부터 느꼈던 미미한 알코올 향과 익숙하지 않은 알싸하고 낯선 향기가 여자를 왠지 불안하게 했다. 침실의 주인이 언제나 사용하던 아라미스 향에 무언가 다른 향이 섞여 있었다. 여자의 시선이 커다란 침대 한가운데 엎드려 잠이 든 남자의 검은 머리카락에 멈췄다.
꽤 자랐네. 이발해야겠다.
운명은 어이없이 엇갈리고 서로에게 고통이 되어버린 세 사람.
“누, 누구…… 세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오, 오빠는요? 주, 준기 오빠는 어디 있어요?”
“준기는 어젯밤 무주에 갔어.”
“무, 무슨……?”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이불을 움켜쥐고 있는 손이 하얗게 질려갔다.
“아, 아니야. 어, 어젯밤에 함께 있었…… 어요.”
비명과도 같은 속삭임과 함께 여자는 푹 옆으로 쓰러지며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젠장! 기절하고 싶은 사람은 나라고!
민은기, 그 사람이 돌아왔다.
왜…… 울어요? 당신이 왜 우냔 말이에요…….
낙인처럼 가슴 한가운데 찍혀버린 눈물방울이 헐떡이는 채은의 가슴을 따라 쇄골 사이의 움푹 패인 우물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신채은,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느꼈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자신의 앞에서 비웃으며 기다리는 운명의 잔인함을.
프란체스카
심윤서(프란체스카)
염소자리.
토성의 영향을 받는 사람.
아마추어 정원사
반려견 ‘쎄비’와 ‘설이’와 함께 어설픈 시골살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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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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