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사랑이 다르다는 건 안다. 뽀뽀와 키스가 다른 것처럼, 연애와 사랑도 다른 것임을 안다.
그동안 내가 해 왔던 연애들은 사랑이 아니다. 현재의 말처럼 헤어지고 나서 죽을 것처럼 아팠던 적이 없다.
얼마나 사랑하면 죽을 것처럼 아플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알고 싶다. 그 죽을 것처럼 아프다는 사랑의 열병을 앓아 보고 싶다.
-본문 중에서-
“박연주.”
“응?”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은 많이 했지만 한백현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우면서도 가슴이 뛴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기쁘다. 나는 그 기쁨의 표현으로 그에게 될 수 있는 한 예쁘게 웃어 보였다.
“고마워. 그리고 좋아, 많이.”
“알아, 인마.”
웃으며 대답한 한백현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다가온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그를 기다렸다. 남자의 뜨겁지만 보드라운 입술이 내 입술 위로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입맞춤은 금세 키스로 바뀐다. 성인 남자인 한백현과 성인 여자인 내가 나누는 키스는 풋풋하기보다 농밀하다.
서로의 입술을 빨고, 혀가 부딪쳐 질척이는 소리가 귓가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져 가슴 끝이 찌릿찌릿 울린다.
둘이서 합을 맞춰 본 것도 아닌데 각자 다른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가고, 내어 주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움직임이 부딪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입술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 자꾸만 뒤꿈치를 들고, 그는 나를 좀 더 가까이 느끼려는 듯 등을 감아 안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키스를 별로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전에 연애를 했던 남자들이 흡연자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키스를 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니코틴 냄새에 내 입 안이 재떨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남자와 나누는 키스는 다르다. 너무 오래간만에 해 보는 키스라서 그런 건지, 한백현이 비흡연자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설렌다.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뭉근한 뭔가가 아랫배 쪽으로 몽글몽글 모여드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 한백현은 나와 키스를 나눌 때 온전하게 몰두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의미를 가진 건 오로지 나 하나라는 듯 나에게 집중하는 이 남자가 한없이 사랑스럽다.
그는 아릿하게 내 입술을 빨고, 내 혀를 희롱하고, 내 호흡을 마시면서도 간혹 그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나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템포를 조절한다.
입술 위에 자잘하게 뽀뽀를 하며 두 손으로 소중한 것을 만지듯 얼굴을 쓰다듬는 감촉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10분? 20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 키스를 나누었던 것 같다. 자정이 훨씬 지난 덕에 골목 안을 지나는 사람은 없었고 한백현과 나는 욕심껏 키스를 할 수 있었다.
아쉬운 듯 마지막 입맞춤을 끝으로 얼굴을 물린 그가 미소 짓는 동시에 내 입에서 밀도 놓은 한숨이 뱉어진다.
“하아!”
홀린 듯, 멍한 듯 바라보는 내가 사랑스럽다는 듯 그의 입술이 다시 내 입술 위로 날아와 잠시간 머물다가 떠난다.
그러고는 지금 이 시간이 매우 행복하다는 듯 그윽하게 미소 지은 그가 제 품으로 끌어들인다. 길고 단단한 팔로 담뿍 안고는 정수리 위에서 아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후우! 들여보내기 싫어 죽겠다.”
“그냥 여기서 밤새울까?”
“눈치 없는 척하지 마.”
“음…… 아는데 그래도 엄마가 여행 가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 그러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무슨 탈선 청소년 같잖아.”
“나이가 몇 갠데 청소년이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알아. 나도 그럴 생각 없어.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야.”
한백현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나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 가슴에 불꽃이 피었듯, 이 남자도 자기 가슴속에 인 불길을 진화할 시간이 필요할 것을 알기에 나는 잠자코 너른 품 안에 안겨 있었다.
반쪽짜리 달이 어느 집 지붕에 걸려 있던 날, 늦더위가 마지막 위용을 떨치던 어느 날 한백현과 나는 오래오래 서로를 안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밤새 잠을 설쳤다. 키스가 처음인 것도 아니면서 처음인 것처럼 설레 혼자서 이불을 발로 차고, 동동 구르며 난리 블루스를 추다가 창이 훤하게 밖을 때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겨우 서너 시간이나 잤을까?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즐기려는 듯 거의 발악하는 수준으로 울어 대는 매미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 벨 소리가 고막을 건드렸다.
눈도 못 뜬 채 손만 더듬거려 겨우 휴대전화를 들고는 발신인을 확인도 않은 채 걸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여보세요?”
- 연주 양?
“누구세요?”
- 한백현이 엄마예요.
한백현이 엄마가 누구더라……. 헉!
한백현이 엄마가 누군지 정확하게 인지되는 순간, 뇌가 깨어나며 심 봉사가 심청이 만난 듯 눈도 발딱 떠졌다.
그의 어머님이 나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우렁차게 인사를 하자 휴대전화 안에서 들릴 듯 말 듯 웃음소리가 건너왔다.
“아, 안녕하세요!”
- 혹시 내가 자는 걸 깨운 건가요?
“아, 아닙니다!”
누가 들어도 잠에 취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앙큼하게 시치미를 잡아뗐다.
- 그럼 다행이지만,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네요.
“제, 제가 오전에는 이렇게 목이 잠기는 편이라서 가끔, 이런 오해를 받습니다.”
- 그래요. 혹시 오늘 나한테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
“오늘 말씀이세요?”
- 정확하게는 점심을 함께하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그럼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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