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양아버지의 폭력과 도박으로 인해 가출을 결심한 효은은 동생을 안고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차에 치이게 되고, 퇴원후 차 주인인 연진의 집의 가정부로 고용되게 된다. 그러나 연진의 오빠 준헌은 kk 제과의 젊은 사장으로 얼음마왕이라 불릴만큼 북풍한설과 오만함과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낯선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그에게 비친 효은 남매는 유기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효은에게서 위험함을 감지하고 바리케이드를 치기위해 벌인 냉대와 무시는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그는 얼음처럼 차갑던 심장이 펌프질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본문 중에서>

이번엔 집주인이 받아줄 새도 없이 혼자 넘어져버려 무릎이 까져 피가 나고 말았다. 다시는 하이힐 따위는 신지 않으리라. 효은은 아픈 것보다 집주인 아저씨 앞에서 넘어졌다는 사실이 더 창피했다.
“조심해야지.”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일단 문이나 열어 봐.”
“예, 사장님.”
이불을 깔고 진우를 눕힌 준헌은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효은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뒤채를 나갔다가 몇 분 뒤 다시 나타났다. 준헌의 손엔 구급상자가 들려 있었고 그는 다른 한 손으로 효은의 치마를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다.
“그것 좀 벗어 봐.”
“예?”
효은은 갑자기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 들어 눈이 동그래졌다. 치마를 벗으라고?
“예?”
“스타킹 벗으라고. 구멍 났잖아?”
“아, 예.”
화장실에 들어가 스타킹을 벗고 나온 효은은 구급상자 안에서 소독약을 꺼내고 있는 준헌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하겠다는 효은을 굳이 앉히고는 약솜에 소독약을 묻히고 있는 집주인의 얼굴을 마음 놓고 바라보는 중이었다. 깎은 듯 오뚝한 콧날과 꽉 다문 입술은 강인해보였지만 손가락은 굉장히 길고 섬세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효은은 준헌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내렸다.
집주인 아저씨는 가난한 사람과는 상종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한 친구가 돈도 없고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어린 가정부와 혹시라도 엮일까봐 불안해서였는지, 온종일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효은은 알고 있었다. 예쁘게 꾸민다고 가정부가 마법처럼 공주가 될 순 없는 법이었다. 자신은 신데렐라가 아니라 그냥 가난한 여자일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
준헌은 꾸벅 인사를 하는 효은에게 나가면서 확인사살을 하고 있었다. 준헌의 말은 효은의 자격지심으로 완전히 왜곡돼 전달되었다는 것을 그 당시 준헌은 알지 못했다.
“임효은.”
“예, 사장님.”
“상현이가 너한테 관심 좀 보인다고, 그 녀석이 진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예?”
“돈 많고 잘생긴 남자는……가난하고 어린 여자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괜한 환상 갖지 말라고.”
“…….”
효은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집주인아저씨 자신도 그렇다는 소리를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도 돈 많고 잘생긴 남자이기 때문에 너같이 가난하고 어린 여자한텐 관심을 가진다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라는 말을 상현의 예를 들어 완곡히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준헌은 말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다. 질투심 때문에 효은에게 찬물을 끼얹었던 준헌은 그것이 얼음송곳이 되어 그녀를 찌르고 상처 입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현대물 까칠남 상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