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공녀3부작 중 두 번째, 마드무아젤 마리의 이야기!

[Mademoiselle Mari´s rule]
1. 두 눈으로 세상을 크게 본다.
2. 진심을 보이는 상대는 진심으로 대한다.
3.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만 때로 어떤 나무는 비바람 좀 맞고 벼락 한두 번 맞아봐야 ‘아, 내가 될 놈이다’하고 깨닫는다.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대기만성형의 큰 그릇이라 주장하는 자칭 대인배, 오명아.
닉네임, 마드무아젤 마리.
이름 하여 마리-오(중간에 한 호흡 쉬는 것이 포인트!).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를 연상시킬 법한 귀여움,
의자매들의 무한방관 속에 무럭무럭 성장시킨 초절정 애교.
그러나 150의 단신을 휘감아 도는 피 속엔 아직도 건달 본능이 살아 숨 쉰다.

그래도 개과천선 후 큰 사건사고 없이 주독야경하며 열심히 살던 어느 날, 어디서 본 듯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 잊고 있던 중학교 때의 동창생.

추리소설 마니아 리제 왈,
“입장의 차이지. 가해자는 잊고, 피해자는 기억하는 법.”

마리는 잊었다.
인생에 도움 안 되는 나쁜 기억 따위, 저 우주 너머의 블랙홀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그 블랙홀에서 야차가 걸어 나왔다.

“롤리팝”

이환이 그렇게 부른 순간, 심장이 쿵하고 울렸다.

[본문발췌글]

“너어…….”
등 뒤에서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한 질감과 양감까지 갖춘 훌륭한 살기가 화악 퍼져왔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마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힐긋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도 마리가 들었던 밀걸레는 꿈이 있었나 보다. 밀걸레가 아니라 다른 멋진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꿈. 이를테면, 술 달린 페이즐리 스카프라던가 하는? 그렇기에 그 꿈을 잠시나마, 이환의 목을 장식한 페이즐리 스카프를 만나 이루어보고 싶었던 건지도…… 라는 망상을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테러나 다름없는 사태에 잠시 정신이 혼미할 환의 방심을 이용해 마리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그야말로 바람처럼 쌩하니 뒤로 내뺐다. 환의 가슴을 강타한 밀걸레와 청소도구들을 여자화장실 안쪽에 말 그대로 패대기치고선 뒤도 안 돌아보고 마리는 직원휴게실로 달렸다.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오로지 코트와 가방만 집어 들고 발에서 연기가 날 스피드로 휴게실 뒷문을 이용해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나중엔 거의 바닥으로 날았다.
왜 그렇게 달아나야 하는지 마리도 잘 설명할 수 없는 본능의 도주였다. 어디선가 열려진 창문으로 “저 원숭이 같은 게!”라고 포효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또 이환이냐고. 아오, 전생에 내가 쟤하고 원수를 졌나.”
울상을 지으면서도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마리는 미친 듯이 달렸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의 최고봉이다. 그 덕분에 싫은 일들은 그 순간을 넘기면 잘도 잊어버린다. 조안과 리제의 말에 따르면 뇌용량이 작은 것도 한 몫 한다고 한다. 안 그래도 작은 뇌로 법대 공부를 하게 된 까닭에 쓸데없는 옛날 기억은 슝슝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환이고 그 쌍둥이 송씨 형제고간에 다 잊어버린 것도 문제될 것 없었다. 그러나 방금 전 그 일로 선명하게 어떤 일 하나가 망각의 늪에서 끌어올려졌다.
본능은 정확했다.
이환이 예전의 그 이환이라면 마리에게 남은 답은 삼십육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