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해버렸어.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뒤흔들렸어.
처음으로, 사람이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

평생 열의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던 내가,
널 보면서 미친 듯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단지 꿈같았던 그 순간이 지나고도
너를 보면 살아있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어.

반해버렸다는 게 어떤 건지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

설사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본 모습은 그저 눈의 거짓이 빚은 환상이었다고 해도

그런 건 이제 어찌 돼도 좋을 만큼
너를 보는 게 행복한 지금의 내가 있어.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그 모습을.
흐릿한 보랏빛이 점점 진해지더니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아련한 붉은 그림자에 물들어있던 그 저녁 무렵과, 건듯 부는 바람 속에 눈처럼 날리던 벚꽃.
그리고 그 속에서 벚꽃과 함께 부서져버릴 듯 소리도 무게도 없이, 풍경처럼 비춰온 그 애.
그때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변했다.

벚꽃을 닮은 소녀 윤태희,
다이아몬드를 닮은 소년 한재경.
이것은 그들의 사랑이야기이다.


《본문 발췌글》

“거절하기 전에 한 가지만 알아둬.”
태희의 말을 자르며 재경이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놀랍도록 부드러웠던 것에 비해, 갑자기 까칠하게 변한 재경의 목소리 때문에 태희는 흠칫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교실 때문에 재경의 눈은 여느 때보다 더 날카로운 빛을 띠었다. 태희에게 익숙한, 사람을 위압하는 눈으로 재경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난 딱히 갖고 싶은 게 별로 없는 녀석이야. 근데 어쩌다 갖고 싶은 게 생기면 한 번도 못 가져 본 적이 없어. 그게 남의 것이라고 해도 말이지. 원하는 걸 갖게만 된다면 수단방법은 가리지 않는 편이야. 그런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내가 고칠 생각이 없으니 앞으로도 이대로일 게 분명해. 사람을, 그것도 여자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야. 그러니까 순순히 포기할리가 없지. 알겠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거절하는 건 네 자유지만 후회하게 될 거야. 내 마음이 그칠 때까지 널 놔줄 생각이 없을 테니까. 살고 싶지 않을 만큼 널 괴롭혀서 네 입에서 항복을 받아내는 것도 한 방법일 테지. 난 그것도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녀석이지만, 과연 네가 견딜 수 있을까?”
멍하니 재경의 눈을 바라보면서 태희는 이것이 진짜 현실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렇게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바짝 얼어붙어 있는 자신은 분명 깨어 있는 채로 한재경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재경은 절대로 이런 일로 쓸데없는 장난을 할 사람도 아니다. 태희는 몇 번이고 생각을 거듭해 대답할 말을 골라냈다.
“이해했어. 하지만 정말로 안 돼. 내 뭘 본건지 몰라도, 나 형편없는 애야. 너무 초라해. 차마 말할 수도 없을 만큼 너한테 부족해.”
“아무 상관없어. 그냥 지금의 너로 충분해. 다른 핑계는 없어?”
“핑계가 아니라, 난 정말 그런 건 생각해 본적도 없어. 너랑 사귀다니, 나는 한 번도 너를 그런 상대로……생각한 적이…….”
“날 좋아하잖아.”
결정타였다.
태희는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서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두 손으로 감쌌다. 태희의 그 모습에 쿡쿡 웃으면서 재경은 말했다.
“거절하지 마. 내 옆에 있을 자격을 줄 테니까 지금 잡으라고. 안 그럼 네가 날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릴지도 몰라. 난 벚나무가 아니니까.”


《미리보기》

“셋째, 트랜스포머가 된다.”
“하아아. 윤태희.”
길게 한숨을 내뱉은 재경이 눈을 감았다 확 치뜨는 데 태희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옵티머스 프라임 정도는 못 될 거고, 범블비라면 음…… 발끝에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해볼게. 입안의 혀처럼 네 기분도 잘 알아채주는 좋은 친구였다가, 가끔은 변신해서 위험을 지켜주는 방패도 되고, 어쩌다 네가 지쳐있으면 쉴 수 있는 소파도 되어주고, 힘차게 꿈을 향해 전진할 땐 열심히 진군나팔을 불어주는 군악대도 되고 싶어.”
태희가 어느 샌가 그의 왼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있었다.
“나는 말이야, 아주 아주 아날로그적인 인간이잖아. 널 너무나 좋아하지만, 내 마음과 몸의 오롯한 모두가 네게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믿기 전엔 너의 그 벅찬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결혼을 하게 된다면 너와 할게. 너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게. 그걸 약속할게. 이 반지에.”
이어서 천천히 그를 올려다보며 태희가 속삭임에 가까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나중에 내가 프러포즈 할 때까지 나만 좋아해야해. 응?”
“아아.”
재경은 태희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만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푸념이 흘러나왔다.
“젠장, 어째서 이런 소릴 길바닥에서 들어야 하는 거야. 집이었으면 당장 쓰러뜨리고…….”
“하하. 그럴까봐서. 내가 지금 배고파서 힘이 없거든. 맛있는 저녁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좀 쉰 뒤에 생각나면 끌어안아주든가 할게. 물론 잠이 오면 어쩔 수 없고.”
“호오, 그렇게 나오신다? 오늘 하루 반짝 나았다가 한 사나흘 더 아프고 싶은 모양이네. 소원이시라면 그렇게 해드려야지. 내 소중한 피앙세를 위해서.”
“아, 갑자기 현기증이…….”
며칠 전에 소희 어머니에게 배운 그 멋진 스킬을 써보는 게 아주 좋은 생각 같았는데, 하고 난 직후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해 힐끔 재경을 쳐다보고 말았다. 눈이 마주치자 어느 편이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