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나는 너만 있으면 되는데.”

소렌 칼리지를 졸업하고 자신의 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해나가는 아란 지와 카이츠 아일 히렌. 극악한 노동 강도와 험난한 준비를 거쳐 6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란.”

왼손 약지에, 정확히는 반지에 입을 맞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제 슬슬 반지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어?”

“아야!”

물렸다. 물렸어!

카이츠는 내 손가락을 왕 하고 깨물어버렸다.

“대답은? 나 참을 만큼 참았는데.”

2. 작가 소개

정연주

최근에 거주 환경이 집필에 최적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 흉흉한 소문과 소문보다 더 빡빡한 막차 시간! 덕분에 외출도 어렵고 해서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삼박자 떨어지는 곳이 어디냐면 화성입니다. 화성(星) 말고 경기도 화성.

……위험하지 않냐는 지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냥 시골이라 제철채소가 참 맛있다고요(웃음).

▣ 출간작

기화, 왕의 기생들

야수의 청혼

인어의 목소리

캔버스 위의 당신

붉은 매듭

도깨비 각시

가희 사랑할지어다

달빛을 밟는 아씨

어드레스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공저)

차아제국 열애사(공저)

허니 앤 베어(공저)

하늘 창(공저 단편집)

겨울 엔딩(공저 단편집)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공저)

양효진

1989년 3월, 절과 돌탑, 왕릉이 많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그 전에는 남들처럼 먹고, 자고, 공부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충실한 지금이 만족스럽답니다.

현재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는 해가 잘 들어오는 집에서

매일매일 마감에 쫓기는 삶을 사는 중.

▣ 출간작

엘샤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계약의 목걸이

너의 온기에 안기다

눈부신 그대

파란만장 태자호위담

그는 내 심장을 뛰게 한다

내 꿈으로 놀러 와요

아이고, 폐하!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공저)

차아제국 열애사(공저)

허니 앤 베어(공저)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공저)

하늘 창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겨울엔딩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3. 차례

#1. 참을 만큼 참았는데

#2. 숟가락, 젓가락만 들고 가면 안 되나요?

#3. 바다 건너 날아온 혼수

#4. 늑대의 본성

#5. 너와 내가 만드는 새 둥지

#6. 행복의 증거

#7. 연애의 끝, 허니문

#8. 낮은 달콤하게, 밤은 진하게

#9. 아우우, 꼬꼬, 삐약삐약

#10. 늑대가 병아리를 사랑하는 방법

#푸드덕 후기

4. 미리 보기

“아란,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마.”

“응!”

힘껏 발을 구르자 그네가 휭 하고 하늘에 가까워졌다. 아, 재미있어라. 어릴 때 타고 난 후 한동안 이런 걸 탈 일이 없었는데. 간만에 타고 노니까 아주 끝내준다. 흔들흔들하는 것이 별로 힘들지도 않고. 이십 분이나 타다가 발이 조금 아파서 내려왔다.

“그렇게 재미있어?”

“오랜만에 타니까 좋아. 그네는 인기가 좋은 놀이기구니까 항상 조금밖에 못 탔거든. 찔끔찔끔 타다가 내려와야 했다고. 다른 아이들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확실히 아카데미에 있는 것도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지.”

“그나저나 카이츠. 여기에는 왜 그네가 있는 거야? 내가 솔직히 벤치랑 간이침상은 이해가 가는데 그네는 정말 모르겠어.”

“이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만드신 거야. 나를 가졌을 때 초기는 아기 성별을 모르니까 혹시나 딸일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하셨대.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네를 만드신 거지.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라면 같이 타고 노는 걸 상상하시면서 말이야.”

“엄, 근데 넌 튼실한 아들이었으니.”

“어머니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지. 대신 어린 날 무릎에 앉힌 채로 태워주셨어. 조금 더 큰 후에는 직접 탔지. 재미있는 건 남녀가 다 똑같아, 아란.”

하긴 오빠도 그네 타는 걸 좋아했으니 말이다.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고 태워주기도 했다. 커다란 2인용 그네는 같이 타기도 했고.

“배고프지 않아?”

“조금.”

아침을 빵으로 먹어서 그런지 조금 걷고 조금 놀았을 뿐인데 금방 배가 꺼져버렸다. 꼬르륵 소리가 날지도 모르겠어. 풀밭 위에 펼쳐진 돗자리에는 커다란 바구니가 하나 덜렁 놓여 있었다. 저기에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들어 있다.

“아침을 어중간한 시간에 먹었으니 지금 먹어도 될 거 같아. 그래야 저녁시간에 얼추 맞겠네.”

“그렇지.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해.”

집사 할아버지가 메뉴는 이야기해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었다. 주방의 요리사들은 항상 내 기대보다 더한 음식을 만들어주셨지! 기대를 하면서 바구니를 뒤지니 의외의 음식이 나왔다.

“김밥이네. 모양이 예쁜 샌드위치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속재료가 행복한 시간에서 만드는 거하곤 달라. 그리고 밥 색도 좀 다른 걸.”

노르스름한 밥을 보고 카이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하긴, 흰밥밖에 먹어본 적이 없겠지. 이 밥의 정체는 바로바로 현미밥이다.

“카이츠, 이건 현미밥이야. 아무래도 건강을 생각해서 신경 쓰신 거 같아.”

“현미밥?”

“음, 그러니까 쌀은 벼를 도정한 거라서 하얗잖아.”

“그렇지.”

“현미는 그 도정을 반만 한 거야. 영양소가 많이 남아 있어서 몸에 좋아.”

“몸에 좋으면 자주 먹어야 하는데 왜 평소에는 흰밥을 먹는 거지?”

“식감 차이가 나거든. 흰밥 쪽이 보들보들해서 더 부드럽지. 그래서 현미밥을 반찬이랑 해서 한 그릇 다 먹으려면 의외로 힘들어. 익숙하지가 않다 보니. 하지만 김밥은 괜찮지. 속재료가 많이 들어가서 티가 덜 나거든.”

즉, 이 소풍 도시락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거라는 거다! 으아아, 김밥은 재료 준비만 다 하면 만드는 건 되게 쉬운 건데. 이 단순한 음식을 아주 저녁 풀코스의 메인 요리처럼 공들여놓으셨네.

큼직한 걸 하나 들어 맛을 보니, 오! 맛있다! 약간 퓨전식으로 크림치즈와 호두 같은 견과류를 넣었는데 궁합이 좋았다.

“맛나, 카이츠. 얼른 먹어.”

“아, 응.”

내 재촉에 손으로 하나를 집어 입에 넣은 카이츠의 표정도 곧 밝아졌다.

“뭔가 네가 만든 거랑 비슷한 맛이 나네.”

“전에 물어보셔서 레시피를 가르쳐드린 적이 있는데 거기에 조금 더 연구를 하셨나 봐. 그치만 이거 팔지는 못하겠다. 재료값이 많이 들어서 수지가 안 맞아.”

“하지만 집에서 먹기에는 좋지. 아, 아란. 여기에는 김치랑 햄이 들어가 있어. 그런데 다른 채소도 넣어서 개운한 느낌이군.”

카이츠는 자기가 먹은 거랑 같은 속재료가 들어간 김밥을 나에게 먹여주었다. 방금 전에 말한 감상 그대로 정말 뒷맛이 깔끔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저녁때 힘들어질 걸 생각해서 양도 정확하게 딱 배가 살짝 부를 만큼만 들어 있었다. 집어 먹다가, 놀다가, 이야기를 하다가 난 따사로운 햇살 아래 기분이 좋아 잠이 들었다. 배 위에 덮이는 담요는 포근하고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카이츠의 손길은 다정했다.

◇ ◆ ◇

“다녀오셨습니까, 마님.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셨군요.”

“아, 집사. 일이 좀 있었어. 모임에 참석한 올렌 남작 부인이 몸이 좋지 않아서 말이지. 단단히 체한 거 같아서 일찍 파했어.”

“그럼 쉬실 수 있겠군요.”

“그렇지. 카이츠랑 아란은 오늘 집에서 쉬던가?”

“네, 마님. 두 분께서는 지금 정원에 계십니다.”

“정원?”

“정확하게는 정원의 그네가 있는 쪽으로 나가셨습니다. 애기 마님께서 신나게 타고 노시다 지금은 자고 계시지요.”

“그럼 카이츠는?”

“옆에서 같이 누워 계십니다.”

그 말에 공작 부인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몰래 구경을 하러 나섰다. 정원을 잘 보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제일이다. 우아한 발걸음으로 하지만 바람같이 빠르게 걷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고 숙련된 시녀들이 종종걸음을 쳤다.

“망원경.”

“여기 있습니다.”

딱 봐도 크기가 범상치 않은 망원경을 두 손으로 든 시녀가 재빠르게 그녀의 손 쪽으로 내밀었다. 방향을 대략 잡은 공작 부인은 찬찬히 살피다가 곧 아들 부부가 있는 그네 쪽을 찾아 초점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정말 둘은 집사가 말한 대로 돗자리 위에 알콩달콩하게 누워 단 냄새란 단 냄새는 다 풍기고 있는 중이었다. 보아하니 아란은 피곤해서 깊게 잠든 것 같았고 카이츠는 옆에 누워 웃으며 아란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정말, 예전에 남편이 하던 거랑 어찌 저리 똑같은지.”

몇십 년 전의 달콤한 신혼을 생각하면서 공작 부인은 얼굴을 붉혔다. 근엄한 공작인 남편도 파릇파릇한 이십 대 때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서 가끔 저렇게 하곤 했다. 지금은 그저 손자가 태어나기를 고대하는 약간 팔불출 끼가 있는 중년이지만 말이다.

“시녀든 시종이든 저쪽으로 다가가지 말라고 해요. 분위기를 방해받으면 우리 집안 남자들은 짜증을 내거든. 그리고 아란이 피곤한 거 같네. 몸에 좋은 음식을 좀 먹여야겠어.”

“안 그래도 다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집사의 말이 마음에 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잔 지 얼마나 되었지요?”

“음, 한 시간 전에 잠드신 걸로 압니다.”

“조금 있으면 일어나겠구나. 본채의 방에다가 좀 더 재운 다음 저녁을 먹도록 하지요. 어차피 그이도 약간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으니까.”

“알겠습니다.”

공작 부인의 명이 떨어졌으니 이제 바로 실행을 해야 한다. 나이가 지긋한 집사는 무척 신속하게 움직였다. 일단 모든 사용인들에게 정원에는 가지 말라 일렀고 그 다음에는 주방으로 가서 저녁식사에 관한 것들을 몇 가지 전달했다. 마지막으로 시녀들을 불러 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라고 말한 후 상태가 어떤지 직접 확인했다. 공작 부인은 너그러운 편이지만 깔끔하지 못한 일처리는 질색이었다.

“집사님, 도련님이 애기 마님을 안고 들어오고 계세요!”

“호오, 결국 안고 오시는군.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카이츠의 행동은 그의 예상 안이었다. 아버지인 현 공작도 신혼 때 자주 공작 부인을 안고 들어와 방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으니까. 후계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며 남들이 보는 눈앞에서는 일부러 무뚝뚝하게 하기도 했던 공작조차 부인을 손수 안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예 대놓고 부인을 애지중지하는 카이츠는 당연히 그보다 더할 것이었다.

“좋을 때구나.”

“그렇지요.”

노집사와 젊은 시녀는 창밖의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가만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