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난 너랑 같이 산책도 하고 점심도 먹고 과제도 해야 하니까. 일 때문에 남들처럼 데이트를 하긴 힘드니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온전히 너에게 시간을 쓸 거야. 애인에게 잘해야 사랑받는다고 하더라.”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를 졸업한 아란 지와 카이츠 아일 히렌은 나란히 소렌 칼리지에 입학한다. 아카데미 시절 못지않은 과제와 시험의 폭풍 속에서도 소중하게 사랑을 지켜가는 두 사람의 아직은 삐약삐약 러브스토리.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근데 애당초 내 능력선에서 가능한 건 몇 개 안 되니까. 음, 선택지가 별로 없긴 하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카이츠는 밝게 웃었다.

어라라, 나 왠지 실수한 거 같은데.

“아란, 우리…….”

그래! 우리! 뽀뽀? 키스? 아니면 포옹? 자, 말해! 카이츠!

“약혼하자.”

2. 작가 소개

정연주

최근에 거주 환경이 집필에 최적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 흉흉한 소문과 소문보다 더 빡빡한 막차 시간! 덕분에 외출도 어렵고 해서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삼박자 떨어지는 곳이 어디냐면 화성입니다. 화성(星) 말고 경기도 화성.

……위험하지 않냐는 지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냥 시골이라 제철채소가 참 맛있다고요(웃음).

▣ 출간작

기화, 왕의 기생들

야수의 청혼

인어의 목소리

캔버스 위의 당신

붉은 매듭

도깨비 각시

가희 사랑할지어다

달빛을 밟는 아씨

어드레스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공저)

차아제국 열애사(공저)

허니 앤 베어(공저)

하늘 창(공저 단편집)

겨울 엔딩(공저 단편집)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공저)

양효진

1989년 3월, 절과 돌탑, 왕릉이 많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그 전에는 남들처럼 먹고, 자고, 공부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충실한 지금이 만족스럽답니다.

현재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는 해가 잘 들어오는 집에서

매일매일 마감에 쫓기는 삶을 사는 중.

▣ 출간작

엘샤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계약의 목걸이

너의 온기에 안기다

눈부신 그대

파란만장 태자호위담

그는 내 심장을 뛰게 한다

내 꿈으로 놀러 와요

아이고, 폐하!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공저)

차아제국 열애사(공저)

허니 앤 베어(공저)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공저)

하늘 창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겨울엔딩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3. 차례

#1. 파란의 입학식

#2. 흑역사의 어머니는 술이다

#3. 갈수록 태산

#4. 꼬꼬닭일 때가 좋았지

#5. 당첨이냐 꽝이냐

#6. 이름만 고상하네

#7. 오빠 닭, 장가가다

#8. 국물도 없습니다

#9. 오리를 만나세요

#10. 여왕과 머슴

#11. 지은 죄도 없는데 코 꿰였다

4. 미리 보기

“저, 카이츠. 많이 힘들어? 내가 저기 당장 시간을 내거나 이 일을 때려치우는 건 무리인데. 다른 건 해줄 수 있어. 뭐 맛있는 걸 만들어준다든지, 그런 거.”

그러자 카이츠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근데 애당초 내 능력선에서 가능한 건 몇 개 안 되니까. 음, 선택지가 별로 없긴 하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카이츠는 밝게 웃었다. 어라라, 나 왠지 실수한 거 같은데.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말을 낸 거 같은데? 취소할까? 하지만 취소했다가는 좋은 꼴 못 볼 거 같다고 본능이 경고하니 일단은 가만히 있어야겠다.

자, 마음을 굳게 먹고 정말 무리한 거라면 못한다고 해야지! 키, 키스까지라면 괜찮아! 다만 그 이상의 진도는 무리다!

“아란, 우리…….”

그래! 우리! 뽀뽀? 키스? 아니면 포옹? 자, 말해! 카이츠!

“약혼하자.”

“엉?”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나왔다. 야, 약혼? 멍하니 있는 날 보고 카이츠는 정신을 차리라는 듯 가볍게 볼을 쓰다듬었다. 커다란 손이 닿는 감촉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약혼이라. 불가능한 건 아니네. 근데 약혼이면 결국 결혼을 약속하는 거……. 어어어!

“부모님도 허락해주셨어. 우리 나이도 슬슬 차가고. 리사와 토미도 결혼했잖아.”

“그렇지.”

“우리 친구들 중 벌써 반 정도가 결혼했지. 엘론도 내년에는 식을 올릴 거라고 얼마 전에 그러더군.”

맞다. 그랬지. 엘론의 신부가 될 아가씨는 놀랍게도 우리가 졸업한 뒤 학생회장이 되었던 후배였다. 얼마 전에 만났는데 정말 예뻐졌더라. 아카데미에 다닐 때는 공부만 주야장천 한다고 그다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칼리지에 들어오고 나니 미모에 물이 쫙 올라서. 어휴, 곱기도 했지.

악마 같은 엘론은 손도 잽싸서 그 애를 매처럼 낚아채 도장을 쾅 찍어버렸다. 반지를 딱 끼워주고 식 올리는 그날까지 기다리라고 했다지. 무서워서 그냥 네네 하고 대답을 하고 나니 모든 일이 끝나 있었다고 했다.

“얼추 일도 자리가 잡혔고 난 더 기다리기 싫어.”

연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카이츠가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술술 넘어가는 말은 여타의 미사여구가 전혀 없는 100퍼센트 진담이다. 그 단순하고 직설적인 화법에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그냥 차분해진다. 이게 바로 오래 사귄 연인의 관록이라는 건가! 하긴 카이츠랑 사귄 지도 꽤 되었고, 나이도 찼고, 슬슬 미래에 진지해질 때이기도 하다.

“좋아.”

“의외로 시원시원하네?”

“나 되게 냉정하게 현실을 따져봤어. 그런데 어떤 변명이나 이유로도 네 말을 거절할 명분이 내게 없더라고.”

“왜?”

그만큼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하거든. 솔직히 말해 카이츠가 공자가 아니라 굉장히 가난했어도 난 이 프러포즈를 받아들였을 것 같다. 사람의 배경이 아무리 대단하거나 또는 반대로 보잘것없어도 결국 그 사람에게 품은 감정이 얼마만큼 큰지에 따라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자, 봐라, 카이츠! 내가 널 이만큼이나 좋아한다! 게다가 얜 머리가 좋다고. 자수성가할 타입이다. 그러니 내가 사귀었지.

“그걸 꼭 말로 해야겠어?”

“흐음.”

저거 표정 좀 보소. 그냥 넘어가준다는 식인데? 어쨌든 감사! 지금 쑥스러운 말이나 할 때가 아니거든.

“우리 부모님께도 말씀드려야겠지. 근데 나 약혼식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데. 왜 그 사진 커플 있잖아. 걔네들이 했던 거처럼 하는 거라면 좀 그래.”

“그건 극단적인 경우고. 그냥 집안사람들끼리 모여서 밥 한번 먹고 반지 교환하는 정도로 끝날 거야.”

상견례랑 비슷한 거구나. 그렇다면 내 힘으로 가능한 거다.

“언제쯤 하고 싶은데?”

“되도록 빨리.”

“그럼 부모님한테 말씀드릴게. 나, 나도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 아직은 경제적으로 독립을 다 하지 못해서 말을 못 꺼낸 거뿐이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고.”

이건 진짜다. 나도 나이가 벌써 이십 대 중반이 되어가니 아무래도 고려를 안 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상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다만 카이츠네 집안이 공작가다 보니 혼수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걸리는 게 많아서……. 내가 미리 말을 꺼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에휴, 그나저나 내년에는 월급을 들어오는 즉시 차곡차곡 모아야겠구나. 통상 귀족가에서 약혼 후 결혼까지 걸리는 시간은 1년 정도. 그 안에 자금을 마련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몹시 힘들어진다.

“내년에는 되게 바쁘겠다. 할 일이 많은걸.”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긍정적인 내 대답이 맘에 든 모양이다. 카이츠는 슬쩍 주위를 살피더니 잽싸게 내 얼굴을 붙잡고 입술을 겹친다. 왠지 배부른 사자가 기뻐하는 환상이 보이는 건 내 눈의 착각이겠지. 착각일 거야. 진짜 그럴 거야.

◇ ◆ ◇

약혼식 때문에 걱정도 많고 기대도 많았는데, 막상 하고 나니 정말 별거 없었다. 오죽하면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리사의 표정이 심심함으로 물들 정도였다. 신전 안에서 양가의 직계가족만 모여서 엄숙하게 선언, 그리고 약혼반지 교환. 진짜 중요한 이벤트는 그 정도였고 그 외에는 정말 단출했다. 거짓말 안 하고 밥만 먹더라.

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히렌 가문이 워낙에 대단해서 이런 검소하고 평범한 약혼식이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쪽 가문의 어르신들이 뭐라고 할까 봐 되게 조마조마했는데, 이 가족들 좀 웃기게도 빠안히 나만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특이하기는 했지. 이날에도 차아제국의 전통복을 입었걸랑. 전처럼 화려하게는 아니더라도 단정하고 고아한 아가씨 같은 의상이었다.

“웬 인형이…….”

그냥 혼잣말한 것 같았는데 다 들렸다! 어쨌든 히렌 가 사람들은 날 보면서 인형, 작다, 동갑이라니, 거짓말! 등등의 말을 뱉어냈다. 굉장히 깐깐하고 식 분위기 싸하게 만들 것 같았던 어느 할아버지마저도 날 보더니 입을 딱 다물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히렌 가문 사람들이 워낙에 커서 나처럼 작은 사람을 가족으로 만난 적이 없단다. 며느리도 죄다 키가 큰 사람들로만 들였다고. 하긴 미인의 조건이 늘씬하고 키가 큰 거니 당연하겠지만! 작아서 죄송하네요. 근데 유전이라 어쩔 수 없어요!

카이츠 왈, “작아서 널 귀엽게 생각한 거야. 좋은 현상이지.” 란다.

작은 건 결코 좋은 게 아닌데! 키가 작아서 설움 당했던 걸 생각하면 이가 다 갈리지만! 히렌 가의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작은 나, 장하다. 어쨌거나 약혼식 자체는 꽤 소소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우리 집 가문의 내력을 쭉 읊을 때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깜짝 놀랐지만, 그 외에는 뭐.

다만 이 이후의 일은 아주우 커다랗게 대서특필되었다. 뭐로? 히렌 공작가의 검소한 약혼식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약혼, 결혼식 때문에 돈도 깨지고, 커플도 깨진다는데 공작가문에서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다나? 의외로 사람들이 나에 대한 궁금증은 적은 듯해서 다행이었다.

이로써 나는 카이츠의 것(예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예비 도장은 카이츠의 이마에도 예쁘게 찍혔다, 이 말이지. 카이츠, 이 잘생기고 멋진 남자는 예비지만 이제 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