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건우 : 33세 천재 피아니스트.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음악마저 손을 놓게되고 사랑하는 여자 소영도 떠나버린다. 그 충격으로 외부와의 관계를 모두 끊고 은둔 생활을 하게된다.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지원이 어느때부턴가 그의 심장에 파고드는데.

백지원 : 26세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 평소 잘 깜박하고 덤벙대지만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여자. 2년전 대학졸업을 앞두고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피아노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치며 살아간다. 뜻밖의 사고와 우연한 기회로 인해 건우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가슴 저린 사랑을 하게 되는데.


[ 본문 발췌글 ]

“당신 얼굴,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조그맣게 중얼거린 소리를 지원이 들었는지 갑자기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이리와 봐요.”
지원이 그를 나무들이 많은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인적이 드문 곳에 마주 보고 앉았다.
“건우 씨 제 얼굴형은 흔히들 말하는 계란형은 아니고 약간 동그스름하고, 눈은 얼굴에 비해 약간 커요. 콧대는 약간 낮아서 불만인데 나름 어떤 사람들은 귀엽다고도 해요. 절대 자화자찬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입술은 얼굴에 비해 약간 작은 편인데 이상하게 음식 먹을땐 커지더라고요.”
“푸웁!”
“웃지 마요. 남은 자세히 설명하는 건데. 다음은 또 뭐가 궁금해요?”
“귀.”
“귀요? 헤헤, 귀는 제가 유일하게 자신 있는 덴데. 귀는 자타가 인정하는 예쁜 모양이에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에 귓불이 도톰해서 다들 나중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그래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이렇게 당신을 만난걸 보니까.’
지원은 마지막 말은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녀의 설명을 듣는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자, 이제 시작해 봐요.”
“뭘?”
“손으로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걸 느껴보라고요.”
지원이 건우의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재촉했다.
“눈은 보는 걸로 끝나지만 손은 감각으로 느끼는 거니까 어쩜 더 자세히 저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서 해봐요.”
“지원아!”
차마 그녀를 만지지 못하는 건우가 손을 내리려하자 지원이 그의 손을 잡았다.
“건우 씨 저도 당신한테 제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요.”
건우는 간절한 그녀의 목소리에 내리려던 손을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댔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더니 크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녀의 숨결이 손바닥에 느껴지자 요동치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는 거 같더니 이내 차분해졌다. 떨리는 손길로 어루만지듯 그녀의 얼굴을 살짝 감쌌다.
“정말 계란형은 아닌데. 눈은 제법 큰 거 같고. 후후, 콧대가 낮은 거 맞네. 그런데 귀여운지는 모르겠고.”
손가락들이 하나둘 그녀의 얼굴을 더듬더니 천천히 입술로 내려와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그녀의 입술을 쓸어내리자 그녀의 입술에서 작은 신음소리를 들은듯했다. 작고 도톰한 입술에 손을 댄 순간 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리곤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느낌에 잠시 손을 멈췄다.
“입술은…….”
건우는 그날 처음으로 그녀의 하나하나를 눈이 아닌 가슴으로 새겨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