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뭐야?”'지원은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건반 위를 달리던 손가락이 멈추고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문 앞에서 험상궂게 인상을 쓰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봤다.'“누구냐니까?”'“저, 저기…….”'남자의 고함소리에 긴장한 지원은 땀이 고인 손을 바지춤에 닦으며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내말이 안 들리나? 당신 뭐냐니까?”'“전 재민이 피아노 선생님인데요.”'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사람을 앞에 놓고 뭐냐니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남자다.'‘그래 나 백지원이다.’'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던 지원은 고개를 살짝 들고 눈앞의 남자를 자세히 쳐다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저 남자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왼쪽 눈에서 뺨을 향해 나있는 상처 때문인지 그의 인상은 더 무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상처만 뺀다면 참 잘생겼을 얼굴임엔 의심에 여지가 없었다.'“누가 당신더러 이곳에 맘대로 들어오라고 했어?”'‘왜 반말이야.’'“이 집 주인이요.”'가소롭다는 듯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허! 내가 이집 주인인데.”'입가에 조소를 머금은 남자가 어디 다음 말을 해보라는 듯 지원을 바라봤다.'“네?”'“내가 이집 주인이라고.”'‘재민이 아버님인가?’'팔짱까지 끼며 어디 더 말해보라고 버티고 서있는 남자를 보고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한 지원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남자가 팔을 들어 그녀 쪽을 향해 뻗더니 소리를 질렀다.'“그 피아노에서 손 떼고 당장 나가!”'남자의 고함소리에 순간 눈물이 핑 돈 지원은 주춤주춤 문 쪽으로 걸어갔다. 거의 남자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쯤에 갑자기 방문이 활짝 열리고 재민이가 뛰어 들어왔다.'“선생님!”'느닷없이 달려드는 재민이 때문에 놀란 지원이 휘청거리더니 옆에 서있던 건우를 치고 말았다. 방심하고 서있던 건우는 지원이 그에게 쓰러지듯 안겨오자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어머 죄송해요.”'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지원의 얼굴은 당혹감에 빨갛게 물들었다.'“안 다치셨어요?”'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건우를 보고 지원이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제 손 잡으세요.”'역시나 또 아무 말이 없자 민망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한 그녀는 이번에 웃음을 담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 괜찮으니까…….”'“나가.”'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입가에 아직도 미소를 담은 채 서있는 그녀에게 그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나가, 당장 꺼져버려!”'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의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이내 무안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잠시 넋 놓고 있는 그녀의 손에 고사리 같은 손이 살포시 다가왔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니 겁먹은 재민이의 얼굴이 보이고 눈을 돌리자 아직도 바닥에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선생님.”'잔뜩 주눅 든 재민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건우의 고개가 들렸다.'“정재민!”'아무 대답이 없자 건우가 손을 내밀었다.'“재민이, 삼촌 손잡아.”'지원의 손을 놓고 주춤주춤 건우에게 다가간 재민이가 손을 잡자 그제야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재민아 삼촌 방 어디인지 알지?”'“네.”'“가자.”'한손은 재민이를 잡고 다른 한손으론 허공을 가늠하는 몸짓을 지켜보던 지원은 너무 놀라 숨을 들이켰다.'“헉!”'그녀의 놀란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멈칫하던 남자는 그녀를 무시하고 방을 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고서있던 지원은 머릿속에 스치듯 떠오른 영상에 또 한 번 경악했다.'‘아, 최건우다……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그제야 확실히 돌아온 기억과 자신이 보고 있는 현실에 너무 놀란 지원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