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워줄까?”
‘끄덕끄덕’
준혁은 일어나 화은의 어깨를 감싸며 침실로 들어갔다. 팔베게를 하고 누운 화은은 금세 힘든지 준혁에게 등을 보이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런 화은을 보자 준혁은 다시 화은을 자신에게 돌아눕게 했다.
“왜?”
“등보이지 말라고 했다”
“그런 게 아니라 배가 너무 불러서 바로 못 누워서 그래”
“그래도 내쪽을 보고 누워야지. 벽쪽이 아니라!”
“그, 그건 내 모습이 좀 흉해서…”
“그런 말이 어딨어!”
평소와 같지 않게 언성을 높이는 준혁을 보자 화은은 덜컥 겁이났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서 늦은 밤에 목소리를 높이고 그래?”
“내가 언제!”
“지금 봐. 지금 나한테 화내고 있잖아. 말해봐. 요새 뭐가 그렇게 불만인건데? 매일매일 늦게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서재에 틀어 박혀 도대체 뭐하는 건데!”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자기 변한 거 알아?”
“뭐?”
“일본에서 돌아와서 나하고 눈 마주치고 얘기한 게 몇 번 되는지 모르지? 그리고 우리 개똥이한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인사 나누던 사람이 그 후로는 한 번도 안한 거 알아? 어머님 그렇게 돌아가셔서 충격적이고 슬픈 건 알겠는데 이렇게 일상이 다 흐트러져서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나 아무소리 안했어. 본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알겠지만. 그 다정한 우준혁 어디 갔어? 이제 신혼도 끝났다 이거야? 내가 자기 눈치나 보며 움츠리고 있으면 좋겠구나. 우리 부모님이랑 같이 사니까 불편해? 도대체 뭐야?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말해. 자기가 원하는 거 다 해 줄 테니까 말해봐. 내가 더 참아주려다가 지금 하는 행사를 보니까 더 이상 못 참겠다. 내 다정한 우준혁 돌려줘!”
준혁은 화은의 말에 웃음이 났다. 자신을 이렇게 웃길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뿐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웃을 수 가 없었다. 화은의 환한 미소에 대답해 줄 수 가 없었다.
“화은이 넌 내가 어디가 좋아서 이렇게 끝도 없는 사랑을 주니?”
“질문도 질문 같아야 대답을 하지.”
“난 내가 어떤 놈인지 모르겠다. 평생을 내 어머니라는 사람을 증오했어. 그래서 누구도 믿지 못했지. 물론 내 자신도 못 믿는 건 당연하지. 그런 내가 살면서 감히 욕심낸 게 있다면 오로지 너 하나뿐이었다. 너만 있으면, 너만 날 믿어주고 날 존중해 준다면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머니라는 사람을 안 만났을 때는 몰랐는데 만나고 보니까 너무너무 그립다. 좀 더 일찍 찾았더라면 하는 후회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괴로워 미칠 지경이야. 그리고 네 얼굴을 보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숨이 차오르는데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어머니 얼굴이 자꾸 떠오르고 슬픈 감정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내가,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내가 너를 보면 울고만 싶다. 억지로 참으려고 하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