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못한 가족. 사랑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서연에게
이 세상 어디에도 그녀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보이는가?”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 무진.
“눈물이 진주 방울 같군.”
처음 듣는 어여쁜 말이어서였을까?
서연을 진심으로 웃게 해주는 남자 무진. 그가 가슴에 들어왔다.
“아저씨, 내 이름은 서연이라고 해요. 이서연.”
잠깐 스치는 인연이라 생각한 인간 여자 아이.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그 어떤 것에도 관심 없던
북해용왕 무진에게 신경쓰이는 존재가 생겼다.
“공부하러 한국으로 가요.”
“나도 한국에 간다.”
그의 충동적인 결정은 어지럽게 얽혀버리는 인연의 끈을 만들어 내는데……
두 개의 붉은 실을 가진 서연. 이미 마음은 무진에게 주었는데
그녀의 인연은 그가 아니라 한다.
안녕, 감히 욕심내지 못한 사람……가슴이 아파 차마 잡지 못한 사람.
정해진 운명 따위 그를 막을 수는 없다.
저승이든 어디든 그녀를 찾으러 가는 무진.
그 길의 끝에 부디 그녀가 있기를……만날 수 있기를……
[본문 내용 중에서]
“아얏, 아픈데.”
“엄살은. 자꾸 그러면 머리 아프게 빗어줘요.”
“아아, 항복.”
무진의 머리는 허벅지를 넘을 정도로 길었다.
한 번도 퍼머나 염색이라곤 해 본 일이 없는 머리칼은 윤기가 흐르고 매끄러웠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촉이 너무나 좋아 서연은 말없이 머리카락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무진 역시 기분이 좋은지 미소 지은 채 가만히 있었다.
“옛날에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어떤 나라인지 자신의 무기 못지않게 머리칼을 소중히 여기는 무사들이 있었대요. 그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손질할 때 스스로 했지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고 하네요.”
“아마 자신의 연인이나 부인이겠지?”
“어 알고 있었네. 그 나라에선 머리카락을 땋아달라는 말이 곧 그 여자에게 청혼하는 의미였대요.”
“그럼 나도 지금 서연에게 청혼하는 건가?”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뭘. 어, 얼른 땋아야지.”
보지 않아도 서연의 작은 심장이 동당거리고 얼굴이 새빨개진 게 그려졌다. 목덜미에 이따금씩 와 닿는 새근거리는 숨결이 너무나 향기로워 이대로 확 품에 끌어안고 싶었다. 한 가닥 한 가닥 정성스럽게 따는 서연의 손길이 너무나 예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손을 끌어당기자 서연이 약간 저항하는 듯 하다 그대로 딸려왔다.
“아직 머리카락을 다 땋지 못했는데…….”
“나중에 해도 돼. 지금은 우선 이것부터…….”
두 개의 입술이 가만히 맞닿았다. 잔잔한 떨림은 이내 거대한 파문이 되어 두 사람을 한꺼번에 덮었다.
두 개의 심장이 하나가 되며 힘차게 울리는 박동은 두 사람의 마음을 뜨거운 용광로처럼 하나로 녹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진의 입술이 서연의 눈두덩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작은 콧날로 다시 입술로 그리고 가녀린 목덜미로 움직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프로필]
원정미
온라인 필명 : 마고
한 번 쓰고 나면 엄청난 탈진과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소재와 구상이 떠오르면 손이 먼저 움직이는 고로 어쩔 수 없는 작가라 스스로에게 변명하곤 합니다.
[출간작]
[홍화녹엽], [발해연가], [주작의 제국], [연분], [가시나무], [용신의 신부]
[목차]
[1]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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