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과 함께 후견인 도움으로 살아가다가직장 상사의 유혹에 넘어가 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근데 그 남자는 알고 보니 남매의 후견인이며 남매의 부모를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남자.
거짓으로 똘똘 뭉친 집착이 강한 악마 같은 남자를 사랑과 복수란 명목으로 착한 남자로 거듭나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

-본문 중에서-

“야, 장혜진 들었어?”
“뭘, 들어?”
“우리 부장님 총무과 직원이랑 그렇고 그런 관계란 거.”
“그게, 뭐?”
“야, 넌 참. 네 일 아니면 무신경하지? 대회의실에서 찐하게 키스하는 것도 누가 봤다더라.”
“그래? 사내에선 좀 자제를 해야지. 어찌, 그러실까?”
“야, 그 인물이면 누구나 안기고 싶을 거다. 학벌 좋지, 인물 좋지, 집안 되지. 내가 들었는데 이석주 부장, 돌아가신 전(前) 사장님 아들이란 소문도 있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근거가 없으면 나왔겠냐?”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얜 이렇게 호들갑을 떨까?’
누구를 만나서 임신을 시키든 그녀는 관심 밖이었다.
그녀의 현재 관심은 정식직원이 되는 것과 목돈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 잘 하다가 정규직 되면 재계약으로 가슴 조렸던 마음 고이 접어서 휴지통에 쑥하고 내던지면 되는 것이고 보너스와 연봉 두둑이 받아서 학비에 보태 쓰면 되는 것이다.
동생이 아직 대학생이라 등록금만 생각해도 머리가 울리기 때문이었다.
이번 학기에도 그녀의 동생이 다니는 대학은 등록금을 알차게 인상해 주셨다.
학생들 등골 빼먹고 얼마나 떼돈을 벌려는지 학생들이 그리 데모를 하면 좀 깎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벼룩의 간을 내어먹지 학생들을 알겨먹고 값지게 돈을 벌려는 날강도 같은 족속들이었다.
그런 이유에서도 꼭 정규직이 돼야 하는데 인턴사원이나 하는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니 인생살이가 힘에 겹다.
‘언제나 이 지긋지긋한 인턴에서 벗어나나?’
“아, 몰라. 난 정규직이나 빨리되고 싶다. 하루가 이리 끝날까 봐 불안하다고.”
“얘는 너 여자 맞아? 남자 사겨봤기나 했냐?”
“남자야, 뭐, 음…….”
“너, 처녀지?”
‘내가 처녀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그래, 나 처녀다. 어쩔래!’
하지만 현실에서 처녀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경험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자 없는 것도 서러운데 무시까지 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럴 땐 빠르게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 아, 아냐. 나도 남자 사겼었거든. 지금까지 여러 번.”
그녀는 남자 복이 유독 없었다.
부모 복이 없다면 남자 복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대학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자와 사귀기 시작하면 처음엔 다들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그러다가도 한순간 돌아서 버린다.
거의 다 그녀와 헤어지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부담 된다.’
좋아는 하는데 그녀가 부담 돼서 사귀지 못한다고 했다.
무엇이 부담이 되냐고 물어봐도 답을 안 해 주고 슬금슬금 피하기 바빴다.
이유라도 명확하게 알려주면 좋을 텐데 남자들이란 다 똑같았다.
그러기에 혜진은 지금까지 솔로를 지향하지 않으나 솔로 인생을 사는 여자가 되었다.
“정말? 말은 왜, 더듬냐? 수상해……너, 처녀 맞지?”
“야, 박예은 하자. 해.”
“뭘 해?”
“일이나 하자고. 남의 일에 신경 끄시고요!”
“아, 귀청이야. 얘가 소리는 고래고래 지르고 난리야. 그래 하자 해. 일해야 봉급 나오지.”
옆에 있는 그녀의 입사동기 마당발 박예은, 회사곳곳 안 다니는 곳이 없다.
어찌나 쑤시고 다니는지 그녀의 별명은 마당발이었다.
예은이가 말하는 부장 이석주에 대해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도 본 적이 있었다.
옥상에서 바람이라도 쐴까 해서 올라가니 열띤 29금 신음이 흘러나와 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손톱의 때만큼, 궁금증이 발동해 누군가 하고 등을 벽에 기대면서 몰래 다가가 모서리를 부여잡고 살짝 얼굴을 보았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성에 눈을 뜨고도 남았을 터.
여건이 맞아 떨어지지 못해 아직도 처녀지만 호기심은 언제나 존재했다.
‘에구, 목소리 죽이네. 나도 나중에 내 남편 될 사람에게 저런 목소리 들려줄 수 있으려나?’
그녀는 옥상에서 야한 동영상을 화면이 아닌 실물로 보는 쾌거를 얻을지는 몰랐다며 공부 삼아 감사히 잘 보겠다는 말을 속으로 뱉어내곤 합장하며 주억거렸다.
‘저도 예습을 해 놓아야 미래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않겠어요?’
45도 얼짱 각도로 빼꼼히 얼굴을 내놓고 보니 어느 여자와 반 나신의 모습으로 진한 키스를 하는 사람은 부장 이석주였다.
‘에구머니나!’
그 29금 실물 동영상의 남배우가 아는 사람이라 더 얼굴이 붉어져 버렸다.
‘어휴, 우리 부장님 정말 구제불능이시네.’
일을 산더미로 뿌려놓고 나가더니 옥상에서 진한 러브신이라니, 아니꼽고 더러우면 진급을 해야 함을 확실히 느껴버린 사건이었다.
그녀는 때와 장소 좀 가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인턴사원이지 않는가.
그가 정규직으로 뽑아줘야 정식직원으로 대우를 받는 입장이 되니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참아내며 내려와야 했다.
정규직이 되고 싶어 그에게 줄을 타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거 보면 정말 전(前) 사장 아들인가 싶기도 하고 뜬금없는 소문들이라 알 수가 있어야지 싶어졌다.
‘나도 좀 빌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
잠깐 그 생각을 했지만 그 남자가 하는 거 보면 혹, 늑대 밥으로만 전락될까 싶어서 말도 못 꺼냈다.
소문이 다 허구는 아니기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는 것이다.
그의 눈동자는 짙은 흑색이지만 눈동자가 깊어서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블루 홀 같다하여 블루 홀 눈을 가진 악마(Blue Hole-eyed devil)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그 눈동자로 사람을 조정한다는 소리가 있다.
치켜뜨기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경우가 다분한데 여자를 상대할 때는 색다르게 눈동자가 깊어지고 색욕을 담당하는 악마에게 빙의라도 된 것처럼 매혹적이게 행동하기에 피하고 도망가야 하는 것을 알아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매력을 발산하고자 마음먹는다면 한 번에 여러 여자도 가능하다고 하니 다 믿을 소문은 아니나 옥상에서의 상황은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아 보였다.
입사 첫날 예은과 회식자리에 참석하는데 그도 함께였다.
그의 눈빛이 우리 쪽으로 향해 한참 고정되어 있었다.
그 자신도 취향이란 것이 있을 텐데 치마만 두르면 다 OK 하는 남자도 아닐 것이고 발정 난 망아지로도 보이지 않았지만 회식 내내 그의 눈빛으로 어색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잘난 남자가 악마이든 사람이든 그녀로써는 상관이 없었다.
되고 싶은 것엔 욕심을 내도 제 것이 아닌 것엔 욕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주제 파악을 확실히 하면서 살기 때문이었다.
속마음은 그렇지만 요즘 들어 그녀의 눈은 그를 향한다.
제 것이 아니라도 본능적으로 눈은 호강을 하고 싶었나 보다.
한번 힐끔거리면 미소가 생겨나는 것이 좋아하는 연예인 보면 기분 좋아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 것이 아니라도 좋아할 수는 있으니까 살짝 욕심을 부려볼까?’
자신의 것으로 자리 매김할 수는 없으나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혀 가는 걸 보면 그녀도 여자이긴 했다.
‘아니다. 내 주제에. 너무 남자 없이 살았나 보네. 간단한 만남이라도 가져야지. 나도 사랑이든 일이든 인정한번 받아보고 싶다. 그런 날아 제발 좀 빨리 와라.’
“장혜진 씨, 작년 매출 판매현황 좀 복사해 주지.”
“네, 부장님.”
“각각 1부씩만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장혜진 씨, 오늘 약속 있습니까?”
“네?”
“약속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 아뇨. 없습니다.”
“잘 됐네요. 나와 야근 좀 합시다. 괜찮죠?”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야근이라, 정규직 아니라고 막 부려먹으시네.’
“휴우…….”
이 블루 홀 악마는 귀 청소도 깔끔하게 하시는지 혜진의 바람 빠지는 한숨 소리를 뚜렷하게도 들어 주셨다.
“장혜진 씨, 나하고 야근하기 싫습니까?”
‘네, 싫습니다. 아주, 대따 싫습니다!’
속으로 고함을 치면 뭐하나 실상은 이러한데.
“네?”
‘이런, 염병. 잘 보여도 모자를 판에 이런 식으로 보여서 어쩌려고 야무지게 난 실금에 말뚝을 박아 틈새를 벌어 놓느냔 말이다.’
그녀는 이러니 정규직에서 ‘뚝’ 떨어져 쓴 맛을 본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회사에 나에 대한 소문이 이상하게 나던데 다 믿지는 말아요. 나, 그 정도로 질 나쁜 남자 아니니까.”
‘아, 그러시겠지요.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어쩌죠? 전, 눈으로 확인했거든요.’
하지만 그녀는 살기 위해 생각과 따로 입을 놀린다.
“아, 그럼요. 부장님 좋은 분이시고 능력도 좋으시잖아요. 전, 그런 면이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호호호.”
이것이 바로 생존본능이란 것이다.
‘BD전자 영업부원들아, 살고자 한다면 블루 홀을 따를 것이고 죽고자 한다면 블루 홀을 배반하라!’
결론은 그녀는 살아야 함으로 살짝궁 아부도 넣어가면서 그를 따른다.
‘아우, 이 정도 아부를 하는데 설마하니 정규직 안 시켜주겠어? 안 시켜주면 어쩔 수없이 알뜰하게 구매한 500원짜리 뽑기 인형을 저주 인형으로 써야지.’
“혜진 씨도 그리 봐 주는 겁니까? 하하하, 고마운데요.”
‘흐흐. 아주, 좋단다. 당근, 고마워 하셔야 해요. 그래야 옥상에서의 29금 버전은 눈감아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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