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별아, 인사해야지?”
“…….”
여전히 입도 뻥긋 안 하고 멀뚱히 서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하별의 눈빛에 천랑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별 공주님.”
자신을 소개하는 천랑의 말에도 하별은 조용히 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하별이 말을 하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야무지게 다물어진 입이 조금씩 오물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천지 왕과 천랑은 그런 하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결심했어! 나 이 사람이랑 크면 결혼할래!”
“…….”
“…….”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하던 천랑과 천지 왕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당신 이름이 뭐야?”
하별의 말에 천랑은 표정을 피며 대답했다.
“천랑이라고 합니다. 천랑성의 기운을 타고 나 지어진 이름이지요.”
“천랑성이라…… 겨울 밤 남쪽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름이지? 그 별의 기운을 타고 났다니 정말 밝고 예쁜 사람이구나?”
역시나 나이답게 어린아이다운 말을 하며 하별은 꼭 잡고 있던 천지 왕의 옷깃을 움직이며 말했다.
“천랑이랑 혼인해도 되지요, 아바마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하는 하별을 천지 왕은 잠시 굳혔던 얼굴을 피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별아, 어제까지만 해도 크면 이 아비랑 혼인한다 하지 않았느냐?”
“아바마마는 어마마마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 천랑이랑 혼인할래요!”
그녀의 말에 천랑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풋…….”
그의 웃음에 하별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뽀로통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하별의 눈빛에 천랑은 터뜨렸던 웃음을 억지로 잠재우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하별 공주님, 전 이미 이 흘러가는 자연과 함께 할 것을 마음먹었답니다.”
“?”
“보십시오.”
아직은 어려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하별의 얼굴에 천랑은 하별을 번쩍 안아 들고 산 아래 아름다운 풍경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자신의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산 아래 경이로운 장관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하별의 얼굴표정에 천랑은 옅게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의 전 이 자연을 빼고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관을 두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틈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난 천랑이 좋은데.”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리는 하별의 말에 천랑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공주님께서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그래도 나 크면 정말 천랑한테 시집 갈 거야. 그러니까 다른 여자랑 장가가면 안 된다!”
막무가내인 하별의 억지스러운 고백에 천랑은 더 이상 난처해지기 싫어 하별에게 단호하게 자신의 옆자리는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대답했다. 결국 하별은 그의 단호한 거절에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고집이 똥고집인 하별이라 절대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울면서도 자신에게 시집갈 거라 단단히 선언을 하고 사라져버렸고, 천랑은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머리가 띵했고 몸이 나른했다.
어린 그녀의 당당한 고백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리 매몰차게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괜히 하별에게 짓궂게 굴었다.
어른답지 못한 그의 행동에 자신도 놀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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