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단기 하숙을 결심한 은주! 매의 눈으로 하숙생 후보자들을 살피던 중에 선택한 사람은 조금은 수상해 보이는 남자, 시건인데…….

“침대 있는 방은 없어요?”

은주는 마치 몰래 꿀을 훔쳐 먹다 들킨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집에 침대 있는 방이 딱 하나 있긴 했다. 바로 그녀의 방이다.

“하숙 내놓은 방에는 없는데…….”

그가 말없이 지갑을 열어 수표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돈 더 낼 테니까 그 침대 방을 줘요. 난 침대가 필요해.”

은주는 파들거리는 손으로 수표를 움켜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돈 십만 원이 귀한 때다. 석 달만 참자.

“그런데…… 그래도 십만 원에 내 방을 양보하자니…….”

그가 또 지갑을 열더니 만 원짜리 지폐를 다섯 장이나 더 꺼내 내민다.

“이거면 됐죠? 한 달에 침대 하나 빌리는 데 오만 원이면 비싸긴 하지만 나한테 꼭 필요해서 그럽니다.”

“당연히 되죠. 이쪽이에요.”

2. 작가 소개

전혜진

위장약과 커피를 달고 사는 참을성 없는 30대.

현재 큰아들 같은 남편과, 생각 깊은 딸과,

미친 고양이 ‘마리’와 화성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 출간작

〈바람난 여자〉, 〈이대팔 교수의 연애학개론〉, 〈푸른 수염과 사랑에 빠지다〉, 〈팥쥐의 연인〉, 〈옹주님 우리 옹주님〉, 〈은주를 지켜라〉, 〈그 여자의 이중생활〉, 〈내기신부〉

3. 차례

1. 미스 고 하숙집

2. 소 도둑질하던 거렁뱅이

3. 청바지를 깁는 여자

4. 비 오는 날의 수채화

5. 파블로프의 연구

6. 심심해서 미친 사람들

7. 이미 시작이었다

8. 도화 마을 오 총사

9. 십 분의 묘미

10. 흉가에서

11. 떠난 사람, 돌아온 사람

12. 방앗간 노총각

13. 뒤로 가는 남과 여

14. 은주를 지켜라!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늘 이 입이 방정이었다.

세 번째는 그로부터 며칠 더 걸린 다음에 연락이 왔다. 퉁명스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처음부터 반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만나보지 않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은주는 전화 속 남자에게 자세히 오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차는 차가 지나기엔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을 잘도 내려와 그녀의 집 마당에 섰다.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은주는 문 앞에서 ‘침착’을 중얼거리며 심호흡을 했다. 이번에 확실히 받는 거야. 소도둑과 거렁뱅이만 아니면 돼.

초인종이 울렸고 은주는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얼굴에 깔아두고 문을 열었다.

그녀의 미소가 순식간에 싸악 걷혔다.

그래, 입이 방정인 것이다.

소 도둑질을 하던 거렁뱅이가 왔다.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거렁뱅이 행색에 소도둑 같이 험악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머리는 단정치 못하게 들쑥날쑥하게 잘랐고 직업이 뭔지는 몰라도 눈 밑에 다크 서클이 거짓말 좀 보태서 무릎을 지나 발목까지 내려왔다.

거기다 돈이 없어서 못 사 입는 건지 옷이 남루한데다 청바지는 엉덩이 부근과 무릎이 인정사정없이 찢어져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의 직업이 의심스러웠다. 이 사람, 하숙비 없어서 어느 날 밤 야반도주할지도 모른다.

“저…… 그러니까…… 저희는 미리 석 달 치 방세를 선불로 받거든요. 그리고 사진이 좋게 나와서 그렇지 겨울 동안 방에 메주를 띄워놓아서 사실 좀 퀴퀴한 냄새도 나고…….”

눈 딱 감고 마지막으로 그냥 보내버리자.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남자, 마음에 안 드는 건 둘째 치고 무섭기까지 했다. 차림도 그렇지만 그 살벌한 얼굴 표정.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어쩌면 살인을 저지르고 몰래 숨어살기 위해 찾아온 범죄자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조금 기다리더라도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그녀의 어깨를 한쪽으로 밀치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등에 짊어진 짐이 색깔만 붉었다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자루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남자보다 짐이 더 덩치가 크다.

“저, 저기요. 그러니까 내 말은…….”

갑자기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불안한 시선으로 봉투 속을 들여다본 은주는 놀라서 혀를 깨물 뻔했다. 수표도 아닌 지폐로 빼곡히 들어 있는 것이 분명 넉 달 치 이상의 하숙비다. 이 돈이라면 그녀가 밀린 돈 모두 갚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세 달 후면 돌아오실 텐데…….

“미안하지만 계산을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 저흰 세 달 동안만 하숙을 내주려 하는 것이에요. 세 달 후엔 나가셔야 하는데…….”

“알고 있어요.”

“그럼 이 돈은…….”

“짐이 좀 많아서 둘 곳이 필요해요. 방 하나만으로는 불편해서…… 인터넷으로 올린 사진을 보니까 방이 좀 작던데…….”

“그럼 방 두 개 다 쓰실 예정이란 말인가요?”

“그래요. 하지만 내 장비가…… 내 짐이 밥을 먹진 않으니 그 돈은 뺐어요.”

계산이 상당히 빠르고 시원시원하네.

어차피 지금 추세로는 사람이 오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을 외모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되지. 일부러 저런 얼굴로 태어나진 않았을 거 아니야? 뭐, 알고 보면 따스한 사람일 수도 있고.

게다가 집에 값나가는 것은 없으니 낮에 내가 집에 없는 동안 그가 뭔가를 들고 튈 수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정도 돈이라면 모든 근심 끝이다. 조금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나만 조심하면 되는 거지. 미스 고도 같이 있잖아.

“그럼 내가 이곳에 묵기로 결정이 된 겁니까?”

그녀의 머리 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피곤한 어투로 물었다.

“네? 아, 네. 그럼 일단 들어오시는 걸로 하고 통성명부터 하죠. 전 이은주예요.”

이름을 일단 알아놓았다가 나중에 인터넷으로 수배자 명단에 있는지 확인부터 해봐야겠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대꾸도 귀찮다는 듯이 자신이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짊어졌다.

“내가 쓸 방은 어딥니까?”

“바, 방이요? 저기 저 주방 안쪽에 있는 방하고 화장실 앞에 있는 방이요. 거기가 비어 있어요.”

사실 주방 안쪽 방은 두 달 전에 메주를 띄웠던 방이다. 몇 번이고 쓸고 닦고 했지만 아직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은 솔직히 사실이다. 그리고 화장실 옆방은 거의 창고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뭐, 짐을 넣기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주방 안쪽 방문을 열고 나서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본 은주는 조마조마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와서 도로 나가겠다고 돈을 돌려달라고 그러면 어쩌지?

차라리 다른 방을 보여줄걸 그랬나? 하지만 아버지의 방과 경주의 방, 그리고 자신의 방을 빼고 남은 것이 이 두 개의 방이다.

잠시 말없이 방을 본 남자가 한마디 했다.

“침대 있는 방은 없어요?”

은주는 마치 몰래 꿀을 훔쳐 먹다 들킨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집에 침대 있는 방이 딱 하나 있긴 했다. 바로 그녀의 방이다.

“하숙 내놓은 방에는 없는데…….”

그가 말없이 지갑을 열어 수표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돈 더 낼 테니까 그 침대 방을 줘요. 난 침대가 필요해.”

은주는 파들거리는 손으로 수표를 움켜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돈 십만 원이 귀한 때다. 석 달만 참자.

“그런데…… 그래도 십만 원에 내 방을 양보하자니…….”

그가 또 지갑을 열더니 만 원짜리 지폐를 다섯 장이나 더 꺼내 내민다.

“이거면 됐죠? 한 달에 침대 하나 빌리는 데 오만 원이면 비싸긴 하지만 나한테 꼭 필요해서 그럽니다.”

“당연히 되죠. 이쪽이에요.”

은주는 재빨리 2층으로 향했다. 분명 돈 밝히는 여자라 생각하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선 돈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야만 했다.

그녀의 방을 택한 것은 사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집 중 가장 햇볕이 잘 드는 방이었고 그녀 나름대로 읍내에서 시내로 나가 백화점까지 가서 사온 인테리어 소품들로 방을 예쁘장하게 꾸몄던 것이다.

방을 죽 돌아본 남자는 마음에 드는지 점퍼를 벗어 방 한 귀퉁이에 휙 집어 던졌다.

“오늘부터 하시게요?”

“돈을 다 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돈은 오늘 치까지 차고도 남을 정도로 받았지.

하는 수 없이 은주는 방금 전까지는 자신의 방이었던 그 방에 들어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필요한 화장품이며 옷가지들을 한 아름 안고 주방 옆에 있는, 아직도 메주의 냄새가 남아 있는 그 방으로 들어가며 은주는 손님에게 메주 띄운 방을 내주려 했던, 자신의 얄팍한 계산으로 되돌아온 불이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왜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 거야? 이름을 알아야 밥 먹으라고 부르든지 할 것 아니냐고? 안 그래도 얼굴도 마음에 안 드는데 하는 짓까지 마음에 안 차네.

혼자 구시렁거리던 은주는 자신의 아끼는 CD플레이어를 놓고 왔단 사실을 깨닫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어느새 방금 전까지 은주 자신이 쓰던 협탁 위에 사진이 든 액자 하나를 올려놓고 가방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물건들을 이것저것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액자로 향했다. 다른 한 남자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지금 모습과는 달리 아주 잘생겼다. 그리고 웃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뭡니까?”

그가 문간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은주를 발견하고 물었다.

“난 그저…….”

뭐냐니? 말투가 왜 저 모양이야?

그 사진 속에 있는 남자가 이 남자가 아닌가? 어쩜 이렇게도 표정이며 풍기는 기운이 판이하게 다른 건지.

은주는 방으로 들어가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구식 CD플레이어를 안아 들었다.

“이걸 가지러 왔을 뿐이에요.”

마치 그의 차가운 태도에 항의라도 하듯 은주는 쌀쌀맞은 태도로 방을 나왔다.

“참, 이름은 알아야 댁을 불러야 하는 상황에 부를 거 아니에요?”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은주는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물었다. 이번에 안 가르쳐주면 밥 먹으라고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한시건입니다.”

그가 여전히 그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런데 이름이 시건이라고? ‘시건방진’ 할 때 그 시건? 무슨 이름이 그래? 한 시건방 한다는 뜻인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그가 어느새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흠. 식사 제공은 아침과 저녁 두 번이고, 아침은 오전 7시 반, 저녁도 오후 7시 반이에요. 식사 시간에 늦으면 못 챙겨드리니까 잊지 말고 맞춰 오셔야 해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듯 은주는 그 말을 툭 뱉어놓고 서둘러 돌아섰다. 저 남자, 왜 저리 살벌하게 구는 거야? 볼 때마다 오금이 다 저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