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내년 안에 아이 좀 낳아줘. 화염마법사기만 하면 상관없어.”

“제가 왜요? 전 사랑하는 사람과 상호 동의하에 낳을 거예요.”

“사랑해. 난 너 사랑하니까 너만 나 사랑하면 돼. 알겠어?”

화염마법사 김하나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온 서진태. 처음 보는 여자에게 아이를 낳아달라는 참신한 미친놈이라니!

사랑 같은 거 없어도 애는 얼마든지 낳을 수 있다고?

그럼 그런 게 가능한 여자 화염마법사를 찾으시든가!

“어떻게 하면 사랑에 빠지는데?”

“사랑이요?”

“나한테 완전 빠지면 애 낳아줄 거지?”

“그, 그야…… 하지만 저만 일방적으로 하면 안 돼요!”

“아, 나는 널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으니까.”

“거짓말.”

“왜 안 믿어? 그리고 내가 좋다는데 왜 의심을 해? 어? 내가 이렇게 구애하는 거 보면 몰라?”

2. 작가 소개

신서록

집 주변에 사슴과 멧돼지가 삽니다.

기계를 사랑하고 여름에 강합니다.

수중 생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주로 새벽에 글을 써서 서록입니다.

글로 독자분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3. 차례

2부

#8. 빈자리

#9. 사랑에 빠지는 방법

#10. 결혼식

#11. 새로운 세계

4. 미리 보기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는 그녀가 본 적 없는 생소한 얼굴로 물었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확신에 차서 말을 뱉던 남자는 모르는 문제를 만나 벽을 더듬는 표정이었다. 그 순진한 물음은 하나로서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그녀는 “뭘요?” 하고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사랑에 빠지는데?”

그는 조언을 구하는 학생처럼 하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빨리 호텔로 가자고 재촉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사랑이요?”

“나한테 완전 빠지면 애 낳아줄 거지?”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 그야…… 하지만 저만 일방적으로 하면 안 돼요!”

하나가 다급하게 덧붙였다.

“아, 나는 널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으니까.”

그가 심드렁한 얼굴로 손을 이리저리 휙 저었다.

“거짓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왜 안 믿어? 그리고 내가 좋다는데 왜 의심을 해? 어? 내가 이렇게 구애하는 거 보면 몰라?”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는 흡사 돈을 뺏는 건달과 다름없었다. 하나는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어딜 봐서 사랑하는 여자를 대하는 태도란 말인가. 그녀 역시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서진태가 김하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손모가지를 걸 수 있었다.

“그럼 제 어디가 좋은데요?”

하나는 몸을 내밀었다. 외모니 마음씨니 하면 실컷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해도 그것 보라며 한마디 해주려고 했다.

“너의 그 부분이 사라지면 널 좋아하는 마음도 사라지는 건가? 사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는 답지 않게 지극히 정상적인 말을 했다. 하나는 떨떠름하게 반박하려고 준비했던 말을 삼키며 “그렇긴 하지요.” 하고 중얼거렸다.

“됐으니까 빨리 말해봐.”

그가 손목시계를 힐끔거리더니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떻게 하면 나한테 완전히 빠져서 헤어날 수 없게 되는 건지 말해보라고.”

그가 거만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하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게다가 만약 안다고 해도 그걸 이 남자에게 알려줄 리 없다.

“우선 데이트를 해야지.”

앉아 있던 두 사람 위로 그림자가 불쑥 드리웠다. 다홍을 안고 있던 청주댁이었다. 그녀는 다홍에게 빨대를 꽂은 우유를 건네주며 빈자리에 앉았다.

“흠. 데이트? 무슨 데이트?”

진태가 물었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물으려는데 두 사람이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길 했다. 하나가 진태와 청주댁을 번갈아 바라보며 끼어들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일단 남산에 가야 해.”

그녀의 얼굴에서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남산?”

그가 하나의 얼굴을 살피더니 휴대전화에 뭔가를 적었다.

“그거 뭐냐, 요즘 젊은 애들 나오는 드라마 보니까 남산 근처에서 산책하고 꼭대기에서 자물쇠 채우던데. 열쇠는 버리고.”

“열쇠는 또 왜 버리는 건데?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자물쇠를 채우는 이유가 뭐야?”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청주댁은 태연한 얼굴로 다홍을 고쳐 안았다.

“원래 채우는 거야. 얘, 너는 영주랑 데이트도 한번 안 해봤니?”

“내가 걔랑 데이트를 왜 해?”

그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리고 63빌딩에 있는 아쿠아리움도 가야 하고, 고궁 산책도 하고.”

그녀는 막힘없이 데이트 코스를 쭉 늘어놓았다. 동물원 가서 낙타 체험하기,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기, 별 보면서 캠핑하기. 한두 개 정도 받아 적던 남자는 한강에서 오리보트 타기를 듣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내가 나이가 몇인데 오리보트를 타?”

“어머, 어머. 얘가 아직도 트렌드를 모르네. 원래 다 하는 거야. 그죠, 하나 씨?”

“그…….”

데이트라곤 쥐뿔도 해본 적 없는 하나로서는 쉽사리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오리보트라니. 지금 이 남자와 오리보트를 타러 가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답을 몰라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두 사람은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녀의 입장에선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들뿐이었다.

“놀이동산에서 커플 머리띠 하기도 적어.”

“머리띠? 미쳤어?”

청주댁이 이것저것 데이트 코스를 말하면 남자는 의문과 분노에 차서 반박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원래 다 그러는 거야.”라며 그를 눌렀다. 중간에 같이 점심 먹기, 영화 보기, 카페에서 차 마시기 등 제법 정상적인 데이트도 여럿 나왔다.

“그리고 꽃도 줘야지.”

“꽃? 무슨 꽃?”

“하나 씨, 무슨 꽃 좋아해요?”

눈동자 두 쌍이 자연스럽게 하나에게 꽂혔다.

“모란이요.”

당황해서 어, 하고 말을 더듬다 얼떨결에 답하고 말았다.

“이런 건 잘 적어놔. 알았어? 어휴. 너는 대체 나이가 몇인데 데이트하는 법도 모르니? 어디 가서 서른 처먹고 이러는 거 알면 남들이 욕해.”

“이…….”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결국 몇 번 벙긋거리다 말았다. 대꾸 못 하는 걸 알고 청주댁이 신이 나서 그를 놀려댔다. 이래서 결혼은 하겠냐부터 대체 30년 동안 뭘 한 거냐, 현욱이를 좀 보고 배워라. 몇 번이나 꾹꾹 눌러 참던 진태는 한참을 듣다가 현욱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만하지?” 하며 이를 갈았다.

그녀는 잠깐 그의 눈치를 살피다 부엌에서 “다 먹었어요.” 하는 소리가 들리자 다홍을 안고 다시 주방으로 걸어갔다.

“너 이거 정말 다 해야 해?”

그가 퍽이나 피곤한 얼굴로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데이트 코스를 전부 읊었다. 어림잡아도 열 개는 훌쩍 넘었다.

“아니, 그러니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남은 날을 세어보니 약 6주 정도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다.

‘설마 이걸 다 하려고 하겠어?’

대충 맞다고 하고 나중에 또 애 낳아달라고 보채면 이거 안 했잖아요,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차라리 변명하고 요리조리 피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럼요. 하나도 빠지면 안 돼요. 꼭 해야 해요.”

그녀는 일부러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벚꽃놀이랑 불꽃축제도 추가해주세요.”

하나는 덧붙였다. 이제 8월이 다가오니 벚꽃을 볼 일은 요원했다.

“흠.”

진태가 한숨과 신음의 중간 같은 소릴 냈다. 그는 그 목록을 쭉 훑어보더니, “근데 그럼 대체 키스는 언제 하는 건데?” 하고 물었다.

“키, 키, 키스요?”

하나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래. 언제 하냐고?”

그가 재촉했다. 하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절대 일어나지 않을 만한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일상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나 그럴듯한 상황을. 그러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났다. 로맨틱해서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었다.

“키, 키스는, 어…… 석양이 지는, 그러니까 지평선에 해가 반쯤 걸쳐 있을 때 둘만 남아 있는 해변에서 하는 거예요!”

“뭐? 해변에서 해야 해?”

“네. 다른 사람이 해변에 있으면 안 돼요. 한 명도!”

하나는 단호한 얼굴로 덧붙였다. 이제 휴가철이니 해변은 곧 사람들로 득실거릴 게 뻔했다. 게다가 매일 사무실에 처박혀서 일만 하는 남자가 언제 바다를 가겠는가. 만약 간다고 해도 이 남자와 노을 지는 해변을 걸을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하나가 황혼으로 물든 해변을 몇 번이고 강조하자 남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물었다.

“해변이라고.”

그가 해변, 해변 하며 중얼거렸다. 진태의 태도가 진지해 하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설마 이 남자랑 해변을 걸을 일이 있을까. 하나가 앞에 놓은 컵을 만지작거리는데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근데 너.”

“네?”

“이거 다 했는데 나한테 안 빠지기만 해봐.”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