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은 긴 세월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잊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매월 보름이면 환몽인 듯 나타나는 그의 모습이
꿈결처럼 아른거려와 그의 존재를 놓으려야 놓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이 꽃을 닮은 건 여전하군.>
빙긋 웃음을 지은 신니가 꺾어든 꽃나무가지를 소율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아름다워.>
새카만 머리카락과 어우러진 흰 꽃잎에서 달콤한 향기가 번졌다. 언뜻 꽃향기 같았지만 그것은 새카만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그녀의 냄새였다. 소율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신니가 아무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그녀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사흘 후에 다시 찾아오지.>
멍하니 서있던 소율이 시선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사흘……?>
<그땐 널 가지겠어.>


-본문 중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신니는 유일하게 소율을 도발하는 녀석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것은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소율은 어제의 그 작은 선물이 신니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친하고 싶은데 황녀인 자신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해서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방적인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불현듯 손을 올린 소율이 노을빛에 물든 신니의 뺨을 쓰다듬었다.
매끄럽다. 손끝만 닿았을 뿐인데도 그의 살갗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자신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차가워서인지, 아니면 신니가 유독 뜨거운 피를 지닌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야릇한 표정을 짓던 소율은 손가락을 옮겨 유난히 붉은 그의 입술을 살며시 매만져 보았다. 따뜻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올라 얼어있던 손끝을 물들인다. 조금 전 그에게 손목을 잡혔을 때도 이러한 붉은 피를 느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사람의 피가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단 것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이러한 따스함은 생소함으로, 생소함을 넘어 자석 같은 끌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체온이 전이된 탓일까. 소율의 입가에 어느덧 따스한 온기와도 같은 미소가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그저 따사롭다고만 생각했는데, 그저 따뜻해서 기분이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소율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의 입술이 신니의 입술에 포개진 후였다.
살포시 맞닿은 입술이 불에 덴 듯 몹시도 뜨겁다고 생각되는 순간, 지그시 감겨 있던 신니의 눈이 스르르 위로 뜨였다.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한 소율이 황급히 입술을 떼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 난…….”
“뭐하는 짓이야?”
“오해하지 마! 난, 난 그냥…….”
소율이 울상을 지었다. 황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체면보단 부끄러움이 먼저였고, 혹시나 신니가 자신을 방탕한 아이로 오해할까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다급하게 입을 열긴 했지만 마땅히 둘러댈 핑계가 생각나지 않아 소율은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장난치는 걸 보니 아직 덜 지친 건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 신니가 냉담하게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후우우…….”
서둘러 등을 돌리고 긴긴 숨을 내쉬는 신니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긴장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게 아니란 말야!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일은 각오 단단히 하고 나와. 쉬고 싶단 생각이 들 때까지 혹사시켜 줄 테니까.”
무뚝뚝하게 말은 했지만 얼굴에 물든 당혹감을 지울 순 없었는지, 신니는 귀까지 달아오른 화끈거림을 손부채질로 진정시켰다. 머리가 멍해져서 일단은 좀 걸어야겠단 생각에 신니는 무작정 뜰 입구로 걸음을 내딛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우선은 조용히 쉴 곳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오늘 수련은 여기서 끝낸다.”
그렇게 말한 신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뜰 입구로 걸어갔다. 자리를 피하듯 빠르게 걷던 그는 아까 소율과 닿았던 제 입술을 손으로 조심히 만져 보았다. 띄엄띄엄, 웃을 듯 말듯 입술을 꿈틀거리던 신니가 이내 묘하게 번진 미소를 황급히 지우고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왜인지, 온몸에서 불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