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 킴 (Lena Kim). 김여은.
밝고 당찬 모습 뒤에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여자.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낯선 도시에서 자신만큼이나 아픈 상처를 가진 그를 만난다.
마크 라일리 (Mark Riley).
여자들로 인해 얼굴과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채 ‘야수의 성’에 은둔하는 남자.
아픔을 감춘 채 구원을 기다리는 그녀를 만난다.
-본문 중에서-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아무리 심한 상처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아나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잊을 수 있다고 한다. 한때의 아픔도, 고통도 모두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결국에는 잊혀 진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아픔도……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 기억 속 그날처럼 또다시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회색빛 거리에서 시선을 돌린 여은은 비가 훑고 지나가는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낡은 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가 오래전 그 가을날의 기억에 아파 흘리는 자신의 눈물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눈가를 더듬어 보았다. 분명 울고 있는데…… 눈가는 건조하기만 하다. 울지 못하는 눈을 대신해서 가슴이 울고 있는 것일까. 가슴이 아팠다. 먹먹하니 꽉 막혀서 너무 아팠다.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아파…….’
창밖에 한 번 더 시선을 던진 여은은 비옷을 잡아채서 입으며 다급하게 아파트 문을 열고 나섰다.
무작정 뛰어나온 거리는 한산했다. 하염없이 내리는 가을비는 도시를 온통 우울한 잿빛으로 물들이고 사람들을 실내에 묶어 두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어대고 쌓인 낙엽 위로 비가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여은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젖은 낙엽의 쿰쿰한 냄새가 코를 지나 몸 한가득 들어왔다. 막혀 있던 가슴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들이쉬고 내쉬고, 또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여은은 숨쉬기에 집중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일 듯 달려드는 아픈 기억이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 삼킬 것만 같기에.
기억을 밀어내고 아픔을 삼키며 여은은 오래도록 비가 내리는 타인의 도시를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다. 끝없이 이어지던 발걸음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간신히 멈췄다.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 하지만 기대고 싶을 만큼 크고 단단한 어깨를 가진 그 남자.
그 날, 비 내리는 호숫가에서 그를 보았다.
mama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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