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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이혼해요, 우리.”

사랑 없는 정략결혼.

결혼은 비즈니스일 뿐이라 생각했던 남자, 최무원.

그런 그에게 이혼을 말한 여자, 이유래.

3년이 지난,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낯선 관계로 재회하는데…….

“우리 연애할래요?”

아내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 여자, 그가 알던 예전의 ‘그 여자’ 맞아?

멈추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돌아온 아내에게.

2. 작가 소개

이보나

로맨스 소설, 순정만화, TL을 쓰고 그리는 일체형 글 & 그림쟁이.

머릿속 상상이 어떤 형태를 갖추고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이 가장 짜릿합니다.

https://blog.naver.com/libandt

▣ 출간작

메데이아의 축복

그 남자, 처음, 로맨틱

카인의 흉터

3. 차례

#chapter 11. Platonic love

#chapter 12. Missing link

#chapter 13 .화양연화

#chapter 14. 같이 잘래요?

#chapter 15. Reverse

#chapter 16. Apego

#chapter 17. 스캔들

#chapter 18. 두 번째 결혼식

#epilogue. 두 번째 선물

#supplementary story 01. 동상이몽

#supplementary story 02. 두 번째 허니문

#작가후기

4. 미리 보기

자신의 사전에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한 ‘플라토닉 러브’가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세 번째 데이트는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간 것이 언제였더라. 아마 십수 년 전이었을 거다. 평소 영화는커녕 TV도 잘 보지 않지만, 데이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화관이었다.

적당한 시간대로 예매했던 영화는 스릴러와 추리가 적절히 혼합된 장르였다.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한 유명 화가의 살인사건의 범인과 숨겨진 유작을 찾는 내용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였다. 특히 도입부가 충격적이었다. 술에 탄 약 때문에 의식을 잃은 남자를 누군가 들어올려서 목을 매단다.

제법 디테일하게 표현된 장면을 보는 동안 옆에 앉은 유래가 그의 손을 세게 그러쥐었다. 도입부의 충격과 달리 유작을 찾는 과정은 지루함의 연속이었지만 그 시간이 무척 즐거웠던 것은 기억한다. 깍지를 끼고 잡은 손이나 놀라는 장면이 나올 때 느껴지는 진동, 슬쩍 어깨에 기대던 감촉이 좋아서.

영화를 보고 유래를 데려다주던 길, 무원은 아파트 앞에 차를 세웠다.

“오늘 영화 재미있었어요. 특히 범인이…….”

열심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유래의 눈동자가 너무 예뻐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모든 것이 그를 자극하고 유혹하는데 이게 무슨 고문이야. 무원은 한숨을 쉬며 유래의 손을 잡아끌었다.

“영화만 재미있었나?”

“다른 게 더 재미있어야 해요?”

“이게 더 재미있을걸.”

무원은 안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뭐예요?”

“크리스마스 선물.”

선물이란 말에 유래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아, 미안해요. 나는 준비 못 했어요.”

“괜찮아. 지난번과 다른 거야. 이번에는 내가 직접 골랐어.”

무원은 상자를 열어 보였다. 아콰마린과 블루 다이아몬드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푸른빛 펜던트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처럼 지나치게 크거나 화려하지 않아서 어느 옷에든 어울릴 것 같은 디자인이다. 유래가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직접 골랐다고요?”

“그래. 마음에 들어?”

“네, 예뻐요.”

유래의 눈이 반달로 변하자 무원은 안심했다.

“걸어줄까?”

“좋아요.”

“눈 감아봐.”

유래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으며 눈을 감았다. 역시 예술적인 목선이다. 무원이 몸을 기울이자 숨결이 느껴질 만큼 두 사람의 간격이 좁아진다.

그는 조심스럽게 목걸이의 버클을 채웠다. 하늘색 펜던트가 유래의 목에서 반짝거렸다. 미치겠네. 무원은 손을 뻗어 유래의 목덜미를 감쌌다. 원하는 것이 명확한 시선이 서로 얽혔다.

“무원 씨.”

신기하기도 하지. 부르는 이름은 하나인데 거절도 되었다가 허락도 되었다가 하는 걸 보면. 무원은 천천히 유래의 볼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겹쳤다. 입술을 열고 입안을 맛보자 유래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오늘 밤도 제대로 자긴 글렀구나 싶다.

◇ ◆ ◇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연휴란 쉬는 날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출근한 유래는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입으며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유니폼인 브이라인 셔츠에 완벽히 어울린다. 다 알고 선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화점 복장규정에 착용 가능한 범위다.

푸른색 펜던트는 빛에 따라서 깊은 심해와 연하늘빛 하늘을 번갈아 담아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골랐어.」

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들었다. 유래는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손으로 쓸었다. 아직도 무원의 열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키스는 혼을 빼놓을 정도로 길었다. 무원은 다급하게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헤치더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가슴을 움켜쥐는 손에 놀란 유래가 입술을 뗐다. 그녀는 옷 안으로 들어간 그의 손목을 잡았다.

「자, 잠깐만.」

「여기까지만 할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달래듯 속삭였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아찔한 감각이 몸 안에 스며들어 심장을 간질였다. 무원은 놀랄 정도의 자제력을 발휘해 약속을 지켰다.

그가 토해내던 거친 숨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람.

유래는 캄 다운, 하고 중얼거리며 탈의실을 나섰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탈의실 옆에 있는 휴게공간에서 벨가의 매니저와 직원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갑자기 매출개런티를 높이는 경우가 어딨냐고요!”

“어쩔 수 없어. 본사지시야.”

“이번 달도 얼마나 힘들게 메웠는지 아시잖아요. 저 카드 한도예요. 뭘 더 하라고요!”

“이번 입점만 성공하면 우리도 한경모직 계열사로 들어갈 수 있어. 우리도 계속 계약직으로 팝업스토어 영업만 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결국 직원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떨궜다.

“매출집계표 봤지? 성원백화점에서 제시한 기간 이제 한 달 남았어. 다음 달만 어떻게든 넘기면 돼.”

매니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직원을 다독였다. 그들은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자며 자리를 떠났다.

유래는 그제야 오늘이 매출집계표가 나오는 날임을 깨달았다. 매장에서 확인한 패션관 전체매출 순위 1위는 부동의 투 피츠. 그 아래로 한경모직 브랜드들이 줄을 선 가운데 파일로가 자리했다.

“여성복이 전부 10위권 안에 있는 거 감안해서 11위면 잘 나온 것 같아요. 남성복에서는 저희가 제일 잘 팔았다는 이야기니까요. 첫 달에 오프닝행사 끼고도 부진했던 거 만회하려면 이번 달 판매량이 중요할 것 같네요.”

집계표를 같이 보던 윤성이 객관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마찬가지로 집계표를 들여다보던 건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건우는 14위에 있는 ‘벨가’를 가리켰다.

“그런데 ‘벨가’ 말인데요, 이 순위가 맞는 건가요?”

“왜?”

“A사보다 더 높은 게 아무래도 수상해서요. 솔직히 A사가 백화점 쪽에 좀 늦게 뛰어들어서 그렇지 중장년층에서는 인기 제법 있거든요. 저희 아버지만 해도 A사 옷이 몇 벌인데요. 우리처럼 유커 영향을 거의 안 받은 브랜드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벨가’가 A사보다 많이 팔았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우리가 딱 봐도 벨가 매장에 사람 없잖아요.”

윤성이 생각하는 것처럼 팔짱을 꼈다.

“아마 대부분 가매출이 아닐까.”

“말도 안 돼. 가매출도 앞으로 발생할 매출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아요? 솔직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가매출 만들어봐야 회수도 안 될 텐데.”

건우가 펄쩍 뛰었다. 유래는 조금 전 휴게실에서 벨가 직원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벨가 직원들이 매출개런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매출개런티요?”

윤성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진다.

“제가 알기로는 성원백화점은 몇 년 전에 백화점 직원의 투서로 가매출 문제가 크게 이슈화된 뒤로 매출개런티를 없앤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신 매달 순위표를 만들어서 압박을 주죠. 그런데 어째서 매출개런티 이야기가 나온 걸까요?”

“듣자하니 입점에 성공하는 조건으로 한경모직이 벨가를 인수할 모양이에요. 매출개런티는 본사에서 계약직 사원들에게 요구하는 상황인 듯해요.”

“뭐라고요?”

건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헐, 대박. 말도 안 돼. 중국 때문에 골 아프기는 한경모직도 마찬가지라 당장에 자기들 브랜드도 정리해야 할 판이구먼. 또 투 피츠처럼 되는 건 아닌지 몰라.”

“차라리 투 피츠면 다행이게. 당시 투 피츠의 경우는 한경모직이 주력으로 키우고 싶어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는데, 벨가는 아니잖아. 최악의 경우 생산라인만 가로채겠지. 애초에 하청만 맡아 하던 회사이니만큼 생산라인은 확실할 테니.”

“그렇죠. 특히 벨가는 잡화 쪽이 엄청 괜찮거든요.”

이야기의 분위기가 한껏 무거워지는데 관리부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 십 분 후, 아침조회에 한 본부장님 대신 대표님께서 참석하십니다. 각 매장에서는 청결상태와 복장에 각별히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무슨 일이야? 한 본, 바이어 마중 갔대. 세상에. 그래도 그렇지, 무슨 대표가 직접 나와? 취임해서 지금까지 대표가 아침조회에 나온 것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유커 사태와 더불어 모든 매장이 예상치 못한 대표의 출현에 겁을 먹었다.

윤성은 재빨리 집계표 종이를 치웠고 건우는 셔츠 깃을 바로 했다. 보통 관리부에서 하는 조회는 플로어별로 이뤄지지만 대표가 참석하는 경우는 다르다. 가뜩이나 매출 하락으로 브랜드마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인데 대표에게 트집이라도 잡힐까 싶어 열심히 매장을 쓸고 닦았다.

- 다음, 남성복 플로어입니다.

방송이 나오자 매장 직원들이 일제히 자신의 매장 앞으로 나가 섰다. 파일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매장을 정리하고 입구로 나가자 무원과 남 실장, 관리부 직원들이 에스컬레이터로 플로어에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무원은 오늘도 완벽한 차림이다. 다시 어제의 키스가 떠올라 불현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원은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매장 앞을 지나쳤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조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유커 사태를 협력업체와 백화점이 동등하게 힘을 합쳐 해결할 상황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무원은 간혹 걸음을 멈추고 협력업체 직원들과 인사를 하거나 현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파일로의 차례가 다가오자 유래는 점점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무원의 걸음이 파일로 앞에서 멈췄다.

“파일로.”

그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지난달 성적이 좋던데.”

천천히 고개를 들자 장난기가 깃든 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뭐지, 이건.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건우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이번 달도 열심히 팔겠습니다! 기대해주십시오.”

무원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이 끝인가 했다. 걸음을 옮기려던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떨어뜨렸다.

“목걸이가 잘 어울리는군요.”

“네? 목걸이요?”

건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나 이미 무원은 다음 매장으로 넘어가버린 뒤였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목걸이에 집중되자 유래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