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대.”
“…….”
“윤서는 그 나쁜 여자가 보고 싶대.”
“…….”
“정말 착하다 못해 바보등신 같아.”
“……은서야.”
“우릴 버린 게 아니래.”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아내려고 이 악물고 버텼는데 결국은 또 울고 말았다. 바보 같은 윤서의 생각에 자꾸만 심장이 아파와 죽을 것만 같다.
“그 등신이 뭐라는 줄 알아?”
“…….”
“그 여자가 우릴 버린 게 아니라 사정이 생겨 우리를 그 고아원에 맡겨 놓은 것 뿐 이래.”
“…….”
“그 여자가 언젠가 우리를 찾으러 올 거라고 믿고 있잖아.”
나 너무 속상하게 오지 않을 사람을 올 거라고 믿고 있잖아.
“난 십년이 넘도록 그 여자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살았는데.”
“…….”
“최윤서는 자길 버린 엄마도 엄마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잖아.”
“…….”
“나랑은 다르게 그 여자를 단 한순간도 미워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고만 있어, 바보같이.”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들었을 거면서 우리윤서는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어.
“아마 어쩌면 우릴 버렸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용서했을지 몰라.”
심장이 아파서 죽을 것 같다.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아파오는데 그 와중에도 윤서가 날 보며 웃어주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윤서도 나도 환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던 그 때로.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테니.
“가슴이 너무 아파서 살 수가 없어, 환아.”
“하, 은서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은서야. 나 좀 봐봐.”
“기다리다 지치고. 지치고 또 지치다 결국 무너져버리고.”
희망이란 게 있다고 생각했어. 하늘이 내게 남겨 준거라곤 너랑 윤서가 전부니까. 부모의 사랑이 뭔 줄도 모르고 풍족함이란 게 여유로움이란 게 뭔지 모르는 이런 날 하늘이 불쌍하게 여긴다면 이만큼은 지켜 줄 거라고. 너랑 윤서만큼은 내 곁에 남겨 줄 거라고 생각했어. 너와 윤서만 있으면 난 살 수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으니까. 윤서가 아프단 사실을 알았을 때도 정말 절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지켜줄 거라고. 윤서도 나도 불쌍한 아이들이란 거 세상이 알고 하늘이 아는 일이니까 지켜줄 거라고. 이미 빼앗아 갈 수 있는 건 다 빼앗아 갔으니까 더 이상 빼앗아 가지 않을 거라고.
“지금까지는 잘 버텼는데, 환아.”
“…….”
“이제는 모르겠어. 더 이상은 너무 힘들어서 나도 잘 모르겠어.”
“…….”
“지금껏 살고 싶어서 살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
“그래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거든?”
그런데 있지, 환아.
“그런데 이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은서야…….”
환이 내 어깨를 꽉 잡아 그를 보게 만든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게 내 말에 그는 아마도 화가 난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너한텐 너무 미안해, 환아.”
“제발, 은서야…….”
“윤서가 이렇게 아프고 나서 하나님을 믿어 본적은 단 한순간도 없는데.”
“쓸데없는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내가 지킬 거야, 너. 그러니까 은서야……!”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만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어.”
미안해, 환아. 이런 말을 듣고 있을 네 마음이 많이 아플 거란 거 아는데. 내 입에 흘러나오는 말들이 너에겐 온통 상처가 되는 말일 거라는 것도 아는데. 그런데 이젠 정말로 자신이 없어.
“나와 윤서를 버린 내 부모를 용서하고.”
“……은서야.”
미안해, 환아. 자꾸만 너까지 힘들게 만들어서.
“나와 널 많이 힘들게 했던 세혁 씨도 용서하고.”
그런데 정말 바보같이도 이 순간 제일 두려운 게 뭔 줄 알아?
“내 전부인 윤서를 앗아가려하는 하늘을 용서 할 테니까.”
자꾸만 힘없는 소리만 하는 이런 내게 질려서 환이 너마저 돌아서 버릴까봐.
“이런 날 불쌍하면서도 갸륵하게 여긴다면 내 의지만으로는 절대 포기가 되지 않는…….”
죽겠단 말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면서 내뱉는 주제에 네가 날 떠난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끔찍해.
“……내 목숨을 앗아가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