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인 서희수(본명: 서은구)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고, 자기가 모든 걸 누리고 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기적인 여자이다. 능력 있는 기획사 사장님 밑에서 기세등등하게 살던 어느 날, 희수 앞에 아주 당당한 스물한 살 신인모델 박태민이 등장하는데…….
젠장! 이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 어떤 인간이라도 희수 앞에서는 벌벌 기어 다니기 일쑤였는데, 이 녀석은 개념을 상실한 건지, 겁대가리를 상실한 건지, 희수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 있다! 천하의 서희수 앞에서 겁먹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니. 이를 바드득 갈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도중 우연히 지갑 하나를 발견한 희수.
뭐야, 이 녀석! 스물한 살이 아니라 열아홉이잖아?


-본문 중에서-

잔잔한 스탠드 불빛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신이준의 품에 안긴 채 침대에 누워 힐끗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조금 더 가까이 신이준의 품에 안겼다.
“추워?”
“아니.”
내 머리칼을 넘기며 묻는 신이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시계를 바라보고선 한숨을 푹 내쉬며 초조한 듯 손톱 끝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설마,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랬단 봐. 내일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복수하고 말 거니까.
이를 으드득 갈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데 신이준의 뜨거운 입술이 살짝 내 이마에 닿았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내 위에 올라탄 녀석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한 번 더 할까?”
신이준은 얼굴에 가득 장난기를 담은 채 나에게 말했다. 당장에라도 네 녀석과는 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녀석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신이준의 얼굴이 점점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입술 위로 녀석의 입술이 맞닿았고 천천히 신이준의 입과 내 입이 벌어지려던 순간, 스탠드 옆에 있던 내 휴대폰이 울렸다. 신이준은 감으려던 두 눈을 번뜩 떠 버렸다.
“……아이 씨.”
내 입술에서 입을 떼어내고 작게 욕을 읊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 옆에 있는 내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규호 오빠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 액정을 보고 미소를 짓고 말았다. 휴대폰을 들고 고개를 돌려 신이준을 바라보자 녀석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또 그 사람이야?”
나는 녀석을 질문에 무표정으로 곱게 씹어 버린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지막한 오빠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 ……어디야?
“집.”
- 우리 집으로 당장 와. 회사 일로 할 얘기 있으니까.
“……알겠어. 금방 갈게.”
뚜욱, 전화가 끊기고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널브러진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신이준은 그런 내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며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곤 녀석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우리 한 번만 더 하면 안 돼?”
신이준은 검지를 치켜들고 말했고 나는 블라우스를 입으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마지막 치마를 올려 입고, 구석에 걸려 있는 코트를 들었다. 거실 소파 쪽으로 다가가 가방까지 손에 들고서 잠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신이준을 바라보았다. 어린애 투정부리듯 입을 삐죽거리며 바라보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 녀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안.”
“진짜 갈 거야?”
“사장님 호출이야. 어쩔 수 없잖아.”
“그 사람……우리 사이 알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럴 리가. 만약 알고 있으면 널 아마 이 바닥에서 매장하고도 남을 사람이야.”
내 말에 신이준은 한숨을 내뱉으며 벌러덩 침대에 누워 버렸다.
“갈게.”
짤막한 인사를 남긴 채 나는 구두를 신고 문을 열었다. 싸한 바람이 살짝 내 머리카락을 날린다. 그리고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신이준의 고함이 문 너머 복도에 쩌렁쩌렁 울린다.
“……완전 제멋대로인 여자!”
나는 녀석의 고함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동으로 문이 잠기는 소리에 가만히 현관문을 바라보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미친 새끼.”
전생에 섹스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나? 정말 녀석이랑 매일 이랬다가는 몸이 남아나지도 않을 것 같다.
나는 녀석을 곱게 씹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내 차에 얼른 올라탔다. 한시라도 침대에 눕고 싶었다. 정말 너무 피곤해서 미칠 지경이다. 밤샘 촬영에 제대로 잠을 못 이룬 지 일주일째였기 때문에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조수석에 코드와 가방을 내던지고 차를 출발시켰다.
거칠게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가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세 시 반을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 가도 세 시간밖에 못 자겠네.”
급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며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나는 대충 주차를 마친 뒤, 코트와 가방을 들고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또각또각 계단 오르는 구두 소리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3층으로 올라온 나는 초인종을 누르며 벽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3층은 너무 높아. 빌라라서 엘리베이터도 없고 정말 이사를 하라고 하든가 해야지. 너무 힘들어서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였다. 잠시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규호 오빠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밖에서 잘 생각이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부릅뜨며 현관문 사이로 보이는 규호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규호 오빠의 표정에 배시시 웃어 보이는 나였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활짝 열고 규호 오빠 옆을 지나 제 집을 드나들듯 오빠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구두를 벗고 들어선 집 안은 밖과 다르게 따스했다.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벌러덩 등받이에 기댄 채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을 두 잔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규호 오빠의 모습이 내 시야에 거꾸로 잡혔다. 그런 오빠를 보며 소파에 뉘었던 얼굴을 똑바로 들어 규호 오빠를 바라보았다. 규호 오빠가 내 앞 테이블에 머그잔 하나를 내민다. 나에게 내민 건 코코아인데, 커피 향이 더 진하게 거실을 감쌌다. 아마도 규호 오빠가 커피를 마시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머그잔을 들자, 오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넌 왜 네 오피스텔 안 가고 매번 우리 집에 오는 건데?”
“알면서 왜 물어. 내일 아침 일찍 미용실에 가려면 오빠네 집이 제일 가까우니까 그렇지.”
“그럼 집을 옮겨.”
“이사하는 게 귀찮아.”
정말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는 나를 보고 규호 오빠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오빠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또 그 녀석이랑 있었지?”
규호 오빠의 말에 나는 코코아를 마시던 내 손이 멈칫거렸다. 하지만 태연한 척, 코코아를 마시며 머그잔을 손으로 감쌌다. 미지근하다. 뜨거운 걸 잘 먹지 못하는 날 위해 일부러 미지근하게 만든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코코아를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올려 규호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오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어깨가 더 뻐근해지는 것만 같았다.
“다 알면서 뭘 물어. 내가 왜 오빠한테 그 시간에 불러내라고 전화까지 시켰겠어?”
“그렇게 만나기 싫으면 네가 만나지 않으면 되잖아.”
“귀찮기도 하지만 나름 나한테 재미를 주는 사람이야. 쓸모없어지면 내가 알아서 버려.”
단호하게 오빠에게 말을 내뱉자 살짝 일그러지는 오빠의 표정에 나는 머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살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쭉 펴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씻어야겠다. 내일 아침부터 일이 있으니까 얼른 자야겠어.”
규호 오빠를 지나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무겁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기 전, 고개를 살짝 돌려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규호 오빠는 여전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욕실 안으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