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꿈이 중요하다고 차이고, 의문투성이인 남자가 나타나 나를 지켜주겠단다. 하지만 이 남자 뭔가 허술하고 의심스럽다. 알면 알수록 온통 거짓말로 싸여있다. 그런 와중에 마음이 넘어가는 찰나, 다시 돌아 온 전 남자친구.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지?

송지우 29세,
보이는 대로 믿고 말해주는 대로 가슴에 새기는 솔직하고 멍청한 듯한 여자.
강재영 33세,
처음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요령 없어 쉽지 않다.
이제는 짝사랑을 끝내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남자.

처음 사랑하는 남자와 제대로 된 사랑을 받는 여자의 연애일기.


-본문 중에서-

“난 말입니다.”
막 그를 부르던 차에 재영의 입에서 한숨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눈을 감은 채 잠꼬대를 하는 것 같았다.
“기다렸단 말입니다.”
나직이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나의 귓가엔 정확하게 들려왔다. 재영을 깨우려던 손은 허공에서 멈칫했다. 눈을 감고 입술이 조금씩 달싹거리는 그의 눈초리에는 작은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난 3년이나 기다렸단 말입니다.”
말끝에 쏟아 뱉는 한숨은 허공에 멈췄던 내 손이 그의 얼굴로 다가가게 만들었다. 이내 멈춰 버린 손은 다시 내려와 버렸지만. 몇 번 다시 뒤척이던 재영은 편한 자리를 찾았는지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드는 듯했다. 갑자기 화가 나 주먹을 쥐고 때리는 시늉을 했다.
“나는 잠도 못 자고 뒤척이다가 나왔는데 넌 잠이 오냐? 휴.”
앉아 있던 벤치에 가 다시 엉덩이를 들이댔다.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지껄이는 건지 난 절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알지도 못할 걸 밤새도록 고민하겠지. 가끔은 생각이 많은 내가 싫어진다. 당장 저 사람을 깨우거나 경찰에 넘기고 집으로 가서 다리 쭉 뻗고 자면 될 것이었지만 벤치에서 꾸벅꾸벅 조는 쪽을 선택했다.
조금씩 주변이 환해지고 아침이 오고 있다는 게 눈을 감고도 느껴졌다. 그냥 잠시 졸았던 것 같은데 꽤 시간이 지났는지 눈은 쉽사리 떠지지 않았다. 살랑살랑 바람에 실려 오는 상쾌한 공기가 좀 더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하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여름이라 해도 아침공기는 쌀쌀했지만 춥지 않았다. 이 새벽엔 항상 잠자리를 뒤척이며 아침이 오는 게 싫었던 일상과 다르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고개를 기대고 자고 있었지만 아늑했다.
“무슨 좋은 꿈을 꾸기에.”
혹여 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는 재영의 목소리였다. 마주치는 게 썩 내키지 않아 계속 자는 척했다. 언제부터인지 그에게 덮어 주었던 옷이 내 어깨에 올라 앉아 있었다.
“다신 안 본다더니 왜 왔습니까.”
조용히 말하는 그는 한 손으로 내 이마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계속 봅시다.”
한참 만에 낮은 음성으로 내뱉은 그의 말은 의외였다. 안 보면 큰일 날 것처럼 애절함이 묻어 있어서 하마터면 눈이 떠질 뻔했다.
“난 정말 많이 돌아왔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