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가는 2월의 마지막.
몸도 마음도 지쳐가기 시작하는 그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마주했다.
매 공연마다 매진을 이루지만, 정작 자신은 만족하지 못하는,
슬럼프라는 벽을 넘지 못하는 남자, 바이올리니스트 이승하.
바이올린과 현재의 직업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양 다리를 걸친 여자, 잡지 기자 이은지.
우연찮게 일어난 접촉사고가 서로에게 좋지 않은 첫인상만 남기고 말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듯이 우연치 않게 두 번째 만난 그들.
만나게 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치 오래 알던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는 시간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고민과 마주하게 되는데…….


【인물】

이승하 - “음악은 일상이다.”
매 공연마다 매진을 이루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음악에 있어서는 까칠한 성격. 하지만 실제 그의 성격을 아는 이는 드물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연주에 만족하지 못하더니 급기야 슬럼프에 빠져 버렸다.
이은지 - “바이올린만 보면 누군가가 숨을 막은 것처럼 갑갑해져.”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인터뷰 대상자들을 대놓고 무시할 수 있는 베테랑 잡지기자
단지 음악이 좋고, 바이올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턱대
고 이쪽으로 뛰어들었다.
바이올린만 보면 갑갑해지고 아릿한 느낌, 포기하지 못한 열정과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갖게 된 이 직업에 대한 매력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채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이런 우연도 다 있군요.”
영은의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며 승하가 농담처럼 낮은 목소리를 내었다.
“악연이죠.”
은지는 그의 목소리의 끝을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승하는 그녀의 대답에 ‘피식’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은지의 눈이 좋지 않은 빛을 띠며 쫓았다.
“일단 인터뷰부터 하시죠.”
은지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큰 인심을 쓰듯 말했다. 일단, 불리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만약 인터뷰를 취소한다면……?”
승하가 조롱하듯 은지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그의 비웃음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술엔 ‘흐응’하는 짧은 단어가 들릴 듯 말듯 하게 새어 나왔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할 정도의 바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그의 귀로 흘러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약속한 거니까. 자리를 옮기죠.”
승하는 표정을 바꾸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의 옆을 지나쳤다. 서늘한 느낌이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자 은지는 고개를 돌려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이왕 하는 거 서로 좋은 기분으로 하자고요.”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승하는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모든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들이 그렇듯 그에게서도 승리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지요.”
은지 또한 제법 밝은 미소를 지으며 승하의 옆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