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기어이 혀가 얽혀들고 말았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저를 지금 사내로 알면서 이러는 건 뭐지?
대한민국, 서울에 살고 있는 여대생 박하나. 슈퍼에 심부름 다녀오는 길에 자판기를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 그곳에서 폭군으로 명성이 자자한 임금인 환을 만나지만, 그는 폭군 중의 폭군! 결국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남장을 하고 ‘하나’가 아닌 임금의 종 ‘멍구’로 살아가게 되는데…….
건방진 종 멍구와 폭군 임금 환의 유쾌통쾌하면서도 달콤한 로맨스!
“마음의 준비가 됐느냐.”
“예?”
아직도 그 소린가. 제법 달달한 입맞춤이었는데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 하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여전한 걸 봐선 역시 키스는 아무 의미 없는 거였다. 환의 말대로 죽기 전이니까 아무나 하고 그냥 해본 거다. 총각귀신으로 떠돌까 봐 영혼이.
“저기, 저는 안 죽으면 안 돼요? 혼자, 혼자만 뛰어내리면 되잖아요? 예? 왜 죽기 싫다는 사람까지 끌어들여서 이래요? 나는 그만 놔주고 혼자…….”
“같이 가는 거다.”
“…….”
“같이.”
눈빛이 진지하다.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예요
http://blog.naver.com/merubi
▣ 출간작
변장 도령
천일야화 박하나 편
환장 도령
▣ 출간 예정
우드럽미
용왕님의 유혹
3. 차례
#1. 이상한 왕, 죽으려면 혼자……
#2. 왕놈이가 너무해
#3. 도화각과 한양 이 도령
#4. 막돼먹은 상상
#5. 어린 기생
#6. 그 여자가 율?
#7. 구덩이에 빠진 멍구
#8. 필연적 재회
#9. 야반도주
#10. 연리지처럼
#11. 온천은 뜨겁지만
#12. 잡혀온 차은수
4. 미리 보기
“멍구!”
“예.”
“내가 자는 동안 얼굴에 부채를 부치거라.”
저기. 하며 턱으로 부채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장식장 위에 진짜 부채가 있다. 하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부채를 집어 들었다. 그러는 사이 환이 이불 속에 들어 잘 준비를 한다. 가슴 위에까지 비단 이불을 곱게 덮고 누운 모습이 얄밉다. 얼굴만 쏙 내놓은 상태로 환이 명령한다.
“부채!”
“예!”
즉각 옆에 앉아 부채를 팔랑팔랑. 부치라니까 부치기는 하는데 이건 뭐지?
“저…….”
환은 눈을 감고 있다. 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왜 이러느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눈도 안 뜨고 이유를 술술 말한다.
“얼굴이 더워. 한 번도 쉬지 말고 부채를 부쳐야 하느니. 안 보이지만 나인들이 많다. 문밖에서 네놈 하는 짓을 다 감시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손을 쉬거나 요량을 피우면 당장에 모가지다!”
“잠드실 때까지만 하면 돼요?”
“아침까지. 내가 눈뜰 때까지.”
“…….”
“중간에 한 번이라도 부채질을 안 하면 넌 내일 아침 참수형이다.”
“…….”
“대답!”
“예…….”
“힘차고 밝게!”
“예엡!”
망할 놈의 요구사항은 많기도 하다. 하나는 마치 신 내림을 받은 것처럼 제 운명이 훤히 보였다. 내일 아침 목이 댕강.
“전하, 보통 잠은 몇 시간씩 주무세요? 설마 열두 시간씩 처자고 그런 건 아니겠지요?”
“처잔다?”
“아이고, 이놈이 망발을 입에 담았네요. 자알 숙면을 취하신다. 그런 뜻이지요. 예에.”
“멍구야.”
“잘못했습니다. 죽여주시지요.”
“알겠다. 여봐라!”
“아니요! 아니요! 뭘 또 그렇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십니까아. 잘못했습니다아.”
두 손을 모아 싹싹 빈다. 이러다 지문이며 손금이 다 닳아 없어져버리겠다. 하나는 파리 앞다리처럼 비벼지는 제 양손을 불쌍하게 내려다본다. 조선시대 망해라! 망할 타임슬립!
“욕을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이 아니냐.”
눈을 감고 환은 떠올린다. 곤장 두 대를 치고 죽이라고 명하였을 때 이 정신 나간 놈이 제 뒤에다 소리치던 욕지거리를. 폭군이라고 했지. 폭군…….
“아직 죽기 싫어요. 저.”
“왜 무슨 미련이 남아서. 네 가족은 너를 돈 받고 팔아넘겼고 네 앞에 남은 미래는 너를 괴롭히는 폭군뿐 아니냐. 쓸모도 없는 목숨 더 살아서 뭐해. 평생 힘겨운 종살이만 하다 죽을 거. 차라리 편하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방면에서는 내가 고수이니 많은 도움을 주마. 다양한 방법을 잘 알고 있으니. 어찌하면 고통 없이 죽는지.”
“저기요, 전하. 저 아직 젊거든요. 그럼 전하부터 죽으세요. 그럼 따라 죽을 테니까. 그렇게는 못하겠죠. 거봐요. 전하도 살고 싶잖아요.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구박을 당하고도 따박따박 말만 잘한다.
“정말로 따라 죽을 테냐?”
“…….”
이게 아닌데. 하나는 눈을 끔뻑거린다. 환의 진지한 눈빛이 저를 바라보고 있다. 어느새 일어나 앉은 환이 하나의 손을 부여잡는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좋구나. 둘이 같이 죽으면 외롭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좋겠다. 가자!”
“으억!”
졸지에 부채는 손에서 떨어졌고 하나는 환에게 끌려 나갔다. 거대한 덩치가 조그마한 하나를 잡아끄는데 안 끌려가고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런데 정말 죽으러 가는 거야, 우리? 농담을 농담으로 들을 줄 모르는 우리 전하. 상또라이 미친놈아.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
“저…… 저, 저기요. 전하, 마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생각을 고쳐먹으세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죽다니요. 마마! 전하! 듣고 있나?!”
묵묵부답이다. 그저 몸이 끌리는 대로 환을 따라간다. 꽉 잡은 손목이 풀리지도 않게 세게 조여 온다. 어찌나 힘을 써대는지 잡힌 손목 부위가 붉어졌다. 하나를 이끌고 대전을 뛰쳐나간 환이 어느 호숫가로 달음질친다. 정확히는 연못. 너무 커서 호수인 줄 알았다.
밤이니 경계가 모호하다. 끝없이 펼쳐진 물길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연못을 빙 둘러 달린 환이 다짜고짜 누각에 오른다. 호수를 바라보고 선 아름다운 누각을 한달음에 오르더니 그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나를 안고 선다.
“왜, 왜 이러십니까. 진, 진정을 하시라고요. 전하.”
“같이 죽자.”
“싫, 싫어요!”
“아까는 같이 죽는다며. 내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며.”
“뻥입니다. 뻥. 저 원래 사기 치고 여기 들어온 거 모르세요? 저 원래 뻥쟁이예요. 다 뻥이라고요! 그래요. 마음에도 없는 말 좀 했습니다. 그렇다고 진짜로 죽으러 오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미쳤어요? 진짜로 미친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라고요!”
“그쪽?”
“예, 그쪽. 왜. 왜요? 너라고 불러줄까요? 그래 너, 너 인마 이 미친 새끼야!”
하나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는 것은 상황이 그렇기 때문이다. 저라고 미쳤다고 왕한테 반말을 찍찍하겠어. 상황이 반말이랑 욕을 하게 만드니까 그런 거지. 씌벌. 왕놈이, 이 폭군 놈이 벌써 허리를 두 손으로 꽉 쥐었다고. 무슨 논개 적장 안고 촉석루 뛰어내리듯이 그렇게 제 허리를 꽉 껴안았다고 지금.
이건 암만 봐도 다이빙이다. 다이빙이야. 저 미친놈이 진짜로 여기서 죽을 생각인가 보다. 아흐흑. 같이 물속에 떨어져 죽자는 심보다, 지금. 엄마, 보고 싶어…… 흐어엉……. 그러니까 죽기 전에 욕이라도 실컷 뱉어놓고 죽어야지. 쌍노무씌끼.
“사내라고는 안 믿기는 얼굴이야.”
“…….”
‘갑자기 또 뭔 헛소리냐. 하긴 사내가 아니긴 아니지. 그것도 개구라다 이 노무씌끼야.’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서니 볼이 발그라니 고운 얼굴이다. 여인처럼 선이 곱다. 환은 첫날 접문했던 입술을 챙겨본다.
오, 왕이 좀 수상하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 말이다. 죽겠다고 장담을 해놓고, 이렇게 연못에 뛰어들기 일보 직전의 제스쳐까지 취해놓고 갑자기 노선을 바꾸면 어쩌라고. 안 된단 말이다. 욕까지 실컷 했는데 다시 살면 안 돼요. 전하 놈아…….
“죽기 전이니 무슨 상관이랴.”
“끅,”
저쪽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딸꾹질 같은 것이 나올 뻔하는데 급히 입을 막는다. 막힌 입술 안에서 소리가 잠기고 환이 꼭 다문 두 입술을 물어온다. 쪽쪽. 야살스런 소리가 환이 빨아대는 하나의 아랫입술에서 난다. 이러지 마시라고…… 하는 하나의 말소리는 중간에 묻힌다.
대담하게 혀까지 밀어 넣는 그 치밀함에 하나가 화들짝 놀란다. 아주 뽕을 뽑듯이 키스를 해대는데 숨이 턱 막힌다. 사내라고 알고 이러는 걸 보면 상또라이는 맞는데, 그 수많은 여자는 다 뭐야.
흐읍.
혀를 거둔 환이 입술을 떼었다. 추읍. 입가에 민망하게 흐른 침을 하나가 소매로 서둘러 닦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환의 입가까지 닦아준 하나가 민망하게 웃어 보인다. 습관이 돼서 그만…….
“아, 침이 묻어서…….”
“마음의 준비가 됐느냐.”
“예?”
아직도 그 소린가. 제법 달달한 입맞춤이었는데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이 들까. 하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여전한 걸 봐선 역시 키스는 아무 의미 없는 거였다. 환의 말대로 죽기 전이니까 아무나 하고 그냥 해본 거다. 총각귀신으로 떠돌까 봐 영혼이.
“저기, 저는 안 죽으면 안 돼요? 혼자, 혼자만 뛰어내리면 되잖아요? 예? 왜 죽기 싫다는 사람까지 끌어들여서 이래요? 나는 그만 놔주고 혼자…….”
“같이 가는 거다.”
“…….”
“같이.”
눈빛이 진지하다. 진짠가 부다. 상황을 파악한 하나가 발버둥 쳤다.
“미친놈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귓구멍이 막혔냐! 이 씌벌놈아! 혼자 죽으라고 혼자! 혼자 풍덩! 깔끔하게 혼자! 뛰어들라고 저기! 이 쌍놈의 씌끼…… 흡!”
‘왜 키스는 또 하고 그래. 씌벌…….’
다시 맞춰진 입술에 눈을 감는다. 입 안을 살짝 훑어 긁는 혀 놀림에 정신이 잠깐 풀린다. 이러면 몸이 흐물흐물해지잖아.
‘잘한다, 키스…… 아차차! 이러면 안 되는데.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감았던 눈을 살짝 떠본다. 입술을 물어대는데 심취한 환의 얼굴이 코앞에 보인다. 사내답게 생기긴 생겼다. 선이 굵직하니. 그런데 몸이 조금씩 움직여진다. 본인은 꼼짝 않고 있는데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하나는 아직 동의 안 했다. 못한다, 절대. 죽는 거 싫다고. 그런데 한 사람의 의사는 아무 상관없다는 게 문제다.
모든 것은 환이 결정한다. 죽겠다고 결심했으니 그대로 하는 거다. 하나는 그 길에 얻어걸린 도우미고. 같이 간다. 주인이 죽으면 딸린 종들을 같이 묻는 풍습도 있지 않았나. 그렇다고 보면 되지.
누각 끝으로 바짝 붙은 둘의 몸이 드디어 바깥으로 고꾸라진다. 으헉! 입술을 맞대고 그대로 첨벙! 연못에 두 사람이 거꾸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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