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 이도환.
그가 삼 개월 만에 깨어났을 때, 기억에 없던 아내 유세란이 나타났다.
도환의 기억에서만 사라진 결혼과 아내의 존재, 그러나 돌아온 일상 속에 넘쳐나는 증거들은 이 결혼이 사실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내가 결혼을 했을 리 없어.’
기억에 없는 아내를 밀어내고, 끝까지 결혼을 부정하던 도환.
‘제게는…… 늘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런 도환이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아내의 눈동자에 조금씩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각자의 비밀을 간직한 채 시작한 이 결혼 생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
“정말로…….”
망설일 틈은 그리 길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경고음과 금방이라도 제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은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 세란에겐 어떠한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제 대답을 듣고 싶으세요……?”
그 말을 하는 세란에게서 처음의 놀란 기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착 가라앉은 눈동자엔 어느 정도의 체념과 각오가 담겨 있었다. 마치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매일 스스로에게 되뇌던 사람처럼. 정말로 알고 싶나요. 내가 가진 건 아마도 당신이 원하지 않았을 대답일 텐데도……?
소리 없이 말하는 세란의 눈을 읽은 걸까, 도환이 잠시의 침묵 끝에 입을 뗀다.
“……그래.”
그의 대답, 아니 대답을 닮은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세란은 끝끝내 망설였다. 채 몇 초도 되지 않았을 시간,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지난밤들을 합친 것보다 더 길었을 찰나. 세란은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도 잊고서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로…….”
마침내 밭은 숨과 함께 세란이 입을 떼었을 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잊으셨어요.”
질문처럼 들리진 않았다. 그저 담담히, 그러나 서글프게 하는 혼잣말처럼 그녀는 말했다.
“잊다니, 그게 무슨…….”
저도 모르게 반문을 내뱉은 도환은 이어지는 세란의 목소리에 채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저예요.”
고작 한 발짝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여자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희미한 색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여자가 느릿하게 입술을 뗀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찰나에, 어떤 예감이 들었다. 아마도 이 순간이…… 일생을 두고도, 평생을 두고도, 잊히지 않을, 단 한순간이 되리라는 것을.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믿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직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아내.”
결국,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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