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인]
세상 끝에서 만난 사람. 그 사람은 단 하나의 바람이었습니다.
한 번도 손에 쥐어 본적 없는 소망이며 희망이며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이기에 손에 쥐어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제 금기(禁忌)를 넘어오려 합니다.
[강태건]
긴 세월을 돌아 그녀 곁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랜 시간 외면하고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마음을 이제 더는 모른 척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만의 잣대 따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그녀에게로 가려 합니다.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주기로 했습니다.
[“십년을 해도 안 돼.”
차분하기만 하던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감정이 실렸다.
“왜 도와주시는 건데요?”
그에 해인도 정말로 묻고 싶은 말은 삼키지 않고 물었다. 분명히 그의 누님도 자형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변호사까지 구해주는 그의 맘은 무엇인지.
수영장 물소리가 들렸다. 계단 저 위쪽 컨벤션센터 홀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들렸다. 다시 내리기 시작한 눈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의 적막이 조금 길었다.
결국 적막을 이기지 못해 눈을 들어 먼저 상대를 응시한 쪽은 해인이었다. 맞은편 벽에 거리를 두고 서 있는 태건을 올려다봤다. 견고한 줄만 알았던 검은 눈동자가 찰나지만 흔들렸다. 깨끗하게 면도한 매끄러운 턱, 피곤을 이기지 못한 듯 조금 갈라진 잘생긴 입술, 얇은 종이컵을 쥔 청결한 손이 긴장해 있었다.
“하고 싶으니까, 윤해인하고.”
그럼에도 똑바로 마주한 눈을 피하지 않고 한 말이었다.
“키스하고 싶고…자고 싶으니까, 윤해인하고.”
심장의 혈관 하나하나가 얽힌다. 해인의 컵을 든 손이 떨렸다. 현실감각이 상실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금기(禁忌)를 넘으려는 그의 말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바람을 드디어 손 안에 쥔 기분은 그녀의 것이 분명했다.
생사의 확률 30퍼센트 안에 들지도 모르는 시간에 찾아온 마지막 바람을.]
수련粹戀
출간작
[트롤의 연인] [숨꽃] [꽃이 되어 나빌레라]
[이방인의 초대] [너에게 닿기를 (이방인의 초대 외전)]
[경성 블루스] [하얀 그림자] [하얀 그림자 (외전)]
[로맨틱 나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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