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 녀석이! 또 집 나간다고! 아이고 지금 내가 사돈처녀 방 앞에서 뭐하는……쉿. 너 조용히 해.”
“사돈처녀? 아…… 그 삼수생?”
삼, 삼수생?
“그래. 지금 자고 있겠네. 쉿. 조용히 해.”
“얼굴 구경해도 돼?”
“얘 봐, 얘 봐,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왜. 얼굴만 보고 나올게.”
순간, 헙.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내 밑에 있는 방문의 고리가 사정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손으로 입을 간신히 틀어막고서는 발꿈치를 들고 침대로 폴쩍폴쩍 뛰어 다급하게 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이게 진짜! 지금 아버지 깨울까? 어?”
또다시 들려오는 사정없이 내려치는 폭행 소리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끌려가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내가 사돈이라고 불러야 돼? 걔가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는 건가? 어? 엄마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약간은 기대감에 차 있는.

다음날. 내가 어제 무슨 꿈을 꿨더라? 흐트러진 기억의 파편들을 한데 끌어 모아도 도통 어떠한 그림도 나오질 않았다. 까맣게 또는 하얗게 질려 버렸다. 자욱한 안개가 내 머리에 두루 뭉실 떠다니고 있었다. 후, 불어도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한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갑갑해. 더 우스꽝스러운 건. 그 새벽에 내 방 앞에서 떠들어대던 남자의 목소리에 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다는 것이다. 대학생이라고 했으니 나하고 비슷한 나이 또래라는 것은 미리 인지했고 웬만하면 오덕후 스타일이 아닌…… 보기만 해도 므흣한 스타일이길 간절히 바랐던 내 바람은 이루어졌다. 그래. 정확히 적중했다. 잘생긴 형부 밑에 동생이 당연히 잘생겼을 거라는 원칙적인 순례는 그러니까.
“우리 도련님.”
언니의 간략한 소개가 이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 생각했다. 나의 머리를 둔탁하게 무언가가 후려쳐 찍어 버렸다. 아연실색이 되어 입을 쩍 벌리고 놀라하는 나와는 달리 태연자약하게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때도 느꼈던 특유하고도 묘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사돈.”
아마 어제 꾼 꿈은 분명 악몽이었던 것 같다. 해민이이다. 그…… 해변의 남정네.

[미리 보기]

“진짜 어이가 없어서. 뭔 상관이지? 내가 왜, 내 인정머리를 그쪽한테 써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
“조용히 하랬지.”
순식간이었다. 해민이가 제 손을 뻗어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린 것은. 영락없이 해민이에게 주둥이가 잡혀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낑낑대다가 결국 해민이의 손을 찰싹찰싹 소리 나게 쳐 보였지만. 해민이의 손에선 힘이 풀릴 기력이 보이지 않았다.
“암튼, 그냥 말로 하는 건 들어 먹질 않지.”
“…….”
그가 내 주둥아리를 꽉 움켜잡은 채로 상체를 살짝 수그려 날 바라보았다. 옹골지게 내 두 눈에 그가 들어차고 나 또한, 그의 투명한 두 눈에 내 모습이 추잡스럽게 들어 차 있었다. 그의 눈에 비추는 그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이 묘한 분위기가 그래서 급기야 내 최대한 내 혀를 끌어 모아 입 밖으로 내뱉어 그의 손을 핥았고 그는 히익, 하고 놀라며 손을 떼어내 그 손으로 그대로 내 머리를 쥐어박아 버렸다.
“대박. 이제 폭력까지 휘둘러.”
다소 오버가 섞인 내 불만에 해민이는 내 침액이 묻은 손을 어찌할 바를 모르며 날 원망스럽게 쏘아보았다. 정색한다고 누가 쫄을 줄 알고?
“왜요.”
“야. 너.”
“뭐요. 저 뭐요.”
“그런 거 함부로 내보이지 마.”
“……뭐라고요?”
“야, 난 아직 너 사돈보다.”
“…….”
“박수인에 더 가까우니까.”
“…….”
“아직 나한테 그런 거 내보이지 말라고.”
‘그냥 졸아 버릴 걸. 눈을 마주 하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