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뜯고 싶을 만치 사랑해!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은 나의 잔인한 주인.
당신을 사랑해 야만적인 내 본능을 억누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기 싫어졌어요. 더는 안 할 겁니다. 더는…….

그들의 잔인한 본능, 야만(野蠻)의 계절!

아름답지만 차갑고 도도한 신호그룹의 상속녀 최유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하수인이 있다. 가시덤불에서 태어난 남자, 장용복. 오만한 그녀를 더욱 거칠 것 없게 보좌하는 보디가드이며 심부름꾼, 해결사, 그리고…… 그녀의 지골로!

비천한 태생의 배운 거 없고, 거칠고 투박한 사내이기에 저와는 꿈에도 인연이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하찮게 버릴 소모품이라 여겼던 남자가 전부가 되어버렸다. 가증스러운 현실에 미쳐 돌아가실 지경이지만 문득 이 남자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돈으로 얻을 수 있는 모두를 가졌으나 가치가 가늠되지 않는 그가 없으면 삶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제 그녀의 생애 최초로 남자를 지키고자 한다. 그를 온전히 제 것으로 갖고 싶어진 것이다. 거짓으로 점철돼왔던 최유나의 삶에서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진실, 사랑이다!


<본문 중에서>

유나는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쳐다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가슴 밑에서 여리게 올라왔던 어린싹을 매몰차게 잘라내듯 단호히 몸을 돌려 잠자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모포와 베개를 가지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용복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우두커니 선 채 여전히 그녀의 움직임만을 쫓고 있었다.
유나는 동요를 억누르고 무심을 가장하며 말했다.

“침실은 하나뿐이야. 소파에서 자.”
“왜 그래야 하지?”

멍하니 순응하고 있구나 생각했던 남자에게서 나온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반항 끼 많은 통제 불능 불량소년처럼 불만스레 치받는…….
유나는 당혹감을 감추고 고집스럽게 말했다.

“내 집이니까. 싫으면 나가던지.”

찌푸린 표정. 잔뜩 맘 상한 그의 얼굴에 불편한 심기를 꾹 눌러 참는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못 본 척, 유나는 그에게 모포와 베개를 떠안기고 그대로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갔다.
탁, 안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복은 허탈감과 짜증에 한동안 닫힌 문을 노려보다 소파에 풀썩 앉았다.

택시를 타고 오다 불량배들에게 희롱당하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격분을 느꼈다. 야위어 불면 날아갈 듯 하늘거리는 몸을 하고서도 녀석들에게 바락바락 악을 쓰는 모습이라니. 이럴 땐 제발 최유나다운 걸 포기해 주었으면 싶었다. 만약 제때 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났을지. 용복은 절로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거실에 어지럽게 뒹구는 술병들을 쳐다보는 그의 눈이 비감으로 흐려졌다. 이 넓고 쓸쓸한 공간에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시간을 견디어 냈을까. 덜 자란 어린애 같기만 한 그녀가 뭉크러진 자존심으로 주저앉아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려 얼마나 발버둥을 쳤을까.

그는 그녀 뜻대로 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얼굴만 보고 돌아갈 계획이었다면 미친놈처럼 앞뒤도 안 가리고 내처 이곳으로 날아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사뭇 애처롭게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이 강력한 의지로 굳어지고 있었다.
족히 2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용복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앞으로 다가갔다. 거침없는 손길이 문을 두드렸다.

“열어!”
“…….”
“문 열라고. 최유나!”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용복은 멈추지 않고 동작에 힘을 실으며 낮은 소리로 외쳤다.

“유치하게 이러지 마. 열어!”
“유치한 건 너야! 네 머릿속엔 그 짓거리 생각밖에 없니?”

드디어 문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복은 쾅, 주먹으로 닫힌 문을 거세게 쳤다.

“그래. 그 생각밖에 없어.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널 안는 상상밖에 안 했어. 네 거기에 나를 박고 온전히…….”

갑자기 안에서 문이 확 열렸다. 그녀가 문 앞에 선 채 일그러진 얼굴로 부들부들 몸서리를 내고 있었다. 분노인지 열망인지 모를 것들이 부릅뜬 눈 안에 가득했다.

“넌 어떻게…… 너란 새끼는 어떻게 이리도 뻔뻔한 거지? 넌…….”
“그래. 난 그런 놈이야. 돼먹지 못하고, 무식하고, 부끄럼도 모르는 파렴치한.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단순 꼴통. 그래서…… 안 되니? 이런 난 널 꿈꾸는 것만으로도 언감생심이니?”
“하, 어려운 말 쓰네. 언감생심? 좋아, 어디 들어나 보자고. 너…… 나 좋아하니?”
눈을 가늘게 뜨고 반신반의 묻는 질문에 그가 픽 실소했다. 그리고 어둡게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아니. 사랑해. 사랑해!”

그녀가 놀란 것 같았다. 필경 짐작하고 물었으면서도 놀란 게 분명했다. 충격으로 입술에 가는 떨림이 일었다.

“그게 가당키나 해? 그래서 어쩌자고. 흥, 어떻게 너 따위가…….”
“그래, 나 따위가…… 맞아. 하지만 가당치 않아도 상관없어. 아니, 상관 안 해! 원래 난 그런 놈이니까!”

그가 으르렁대며 덮치듯 그녀를 안았다. 여린 반항을 손쉽게 제압하고 폭풍우 몰아치듯 무지막지하고 세차게 밀어붙이며.
휘몰아치는 열정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휩쓸었고 더 이상의 거부도, 시간의 공백이 만들어 놓은 어색함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두 사람은 광기에 사로잡힌 듯 격렬히 서로를 탐닉하며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