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유혹해봐. 나에게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면.”

교통사고로 약혼녀를 잃어버린 혁민. 모든 것을 잃은 그 상황에서도 혁민의 눈에는 그 여자만 보였다. 그 여자를 가질 수만 있다면 남자는 어떤 짓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감정이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 여자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고 싶었다. 6년 후 이 악연을 이어가기 위해 남자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제시하는데…….

“날 가르치려 하지 마. 여자는 여자일 뿐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거기에 이상한 의미를 두지 말자고.”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나경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미처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도 전에 남자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날렸다. 찰싹하는 손의 마찰음과 동시에 나경은 오른쪽 뺨이 후끈 하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밀려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네가 채권자인지, 채무자인지 위치를 확실히 깨닫도록 해.”
“다시 한 번 묻겠어요. 왜 나죠?”

2. 작가 소개

서미선
필명 소나기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세 남자와 매일 싸우는 게 하루 일과.

▣ 출간작

〈후견인〉, 〈루비레드〉, 〈잔인한 사랑〉, 〈가면〉, 〈카인과 아벨〉, 〈부부〉, 〈지독한 거짓말〉, 〈피의 베일〉, 〈넌 내게 지옥이었어〉, 〈되찾은 약혼녀〉, 〈아내〉, 〈레드 러브〉, 〈백설화〉, 〈도령〉, 〈홍분지기〉 외 다수

3. 차례

프롤로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저 집에 가고 싶어요.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당신이 부르기만 하면 곧장 달려오겠어요. 난 할 일도 있고 학교도 다녀야 하고 그리고…….”
“스물둘 작은 나이는 아니야. 매번 똑같은 대답을 들을 걸 알면서도 같은 질문을 하는 게 이제 조금씩 지겨워지는 군. 한가지 만 묻지. 진나경 아이를 혼자 만들 수 있나?”
말문을 자르고 들어오는 남자의 말을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질문을 던졌는데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난 네게서 아이를 얻고 싶어.”
이 남자가 지금 얘기하는 게 무슨 뜻이지? 두 눈만 깜빡거리는 자신을 무시한 채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도망칠 생각 꿈에도, 아니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아. 줄다리기할 때는 처음에는 팽팽하게 줄을 당겨 놓고 하지, 손에 쥔 순간 이기기 위해 힘껏 잡아당기는 거야. 너하고 지금 줄다리기할 생각 전혀 없어. 난 무조건 승리하고 싶은 사람이야. 패배란 있을 수 없지. 특히 내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더욱. 오늘부터 내가 올 때까지 감시체재로 들어갈 거야.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 그러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올 테니까.”
“미쳤군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난 몸을 팔러 나온 창녀가 아니에요. 죽은 아이를 내게서 얻으려고 하는 게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은 아닌 것 같군요.”
가빠지는 호흡을 조절하려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싸우기 보다는 타협을 원했는데 저 남자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고 그가 원하는 요구조건을 다 들어줄 수는 없었다. 상대가 원하는 게 있다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상적으로 사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야. 그냥 따라오는 게 널 위해서 좋아.”
“못해요. 아니 안 해요!”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3분이 지났어.”
미처 다음 말을 이을 사이도 없이 문이 세게 닫히더니 그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자신에게 이렇게 집착하게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텅 빈 집안을 서성이던 나경은 재빨리 문을 열어젖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밖에서 문을 잠가버려 그야말로 조롱 속에 갇힌 새나 같았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 줄 나경은 알고 있었다.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현관 앞 신발장 앞에 얼마나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저리던 다리도 이제는 감각이 없었다. 생각을 한다고 했지만 이미 무의식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또 해도 결론은 한가지뿐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가 잘못을 했다지만 대가를 자신에게 묻는 것은 잘못 되었다. 그리고 결코 그의 말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뜻대로 따라줄지 의문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또다시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더 이상은 싫었다. 갈등이 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경은 이를 악물었다. 겁이 날 정도로 무서웠다. 아이라니, 그럼 악마 같은 그와 관계를 맺어야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자신이라는 말인가? 잘못 들었을 거야, 맨 정신이라고 할 수 없었다. 복수에 눈이 멀어 너무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