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도원이 비둘기를 내려다보며 초조하게 굴었다. 그는 손을 통해 느껴지는 비둘기의 따스한 체온이나 규칙적인 호흡에 문득 이 비둘기가 크게 다친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둘기가 죽으면 어떡해요!”

그녀는 비둘기를 계속 둘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저분한 비둘기를 장갑도 끼지 않고 든 바람에 머리가 멍해진 수안은 자신의 손안에서 파들거리는 비둘기를 한참 보다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았다.

“죄송한데 저는…… 야생 조류는 잘 모르는데요?”

그 순간 그를 보던 그녀의 눈빛이 ‘부탁드립니다, 수의사느님’에서 ‘뭐냐, 이 돌팔이 새끼는?’으로 바뀌고 말았다.


-본문 중에서-


가느다란 팔이 덥석 잡혔다. 빙글 돌려진 몸 때문에 눈앞이 잠시 아찔해졌지만 강하게 죄어오는 손아귀의 힘을 느끼고 도원은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온 남자는 굳어진 얼굴 그대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지 마.”

그의 단호하면서도 절실한 말에 입 안이 바짝 말랐지만 무심한 눈을 가장해서 그녀가 그를 응시했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는 것뿐인데 속내를 들키는 것처럼 가슴이 덜컥거렸다. 눈물을 참아내느라 붉어진 그녀의 눈이 마음을 아프게 찔러서 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렇게 가지 말아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처럼 그녀가 의연하게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이름 모를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갑자기 그녀가 보이는 거부의 몸짓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성은 일단 뒤로 제쳐 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녀를 잡았다.

그녀는 분명히 상처를 받았다. 무슨 일인지, 도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두운 표정과 힘들어하는 눈치에서 어렵지 않게 그녀의 상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와 특별한 사이가 아님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타인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다친 마음을 할 수만 있다면 그가 직접 감싸 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놓으세요.”

그녀가 팔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지만 그는 손에서 힘을 풀지 못했다. 손을 놓는 순간 그녀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그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자꾸 마음을 뒤흔들었다. 훗날 있을 일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그에게 기대는 것이 어떠냐고 마음의 약한 부분이 달콤하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의 애정에 흠뻑 젖어들고 싶다고, 그가 상처를 어루만져 주길 바라고 있지 않냐고. 자꾸 기우는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민수안 씨.”

그녀가 조금 더 힘을 주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에게도 낫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살아왔다. 이미 그렇게 길이 들어 버린 자신이기에 그 가시로 타인을 찌를 수도 있지 않은가. 냉정하게. 아프게. 지금처럼 매몰찬 표정과 말투로.

“이름…….”

그러나 그에게는 그녀의 가시도 통하지 않았다.

“내 이름 이제 불러 주네요.”

그녀의 차디찬 한마디에 그가 기쁜 듯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단지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가 웃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