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1883

클레어 윌로비 양은 맥아렌 공 11세, 해리에게 첫눈에 반했다. 거실에 있던 다른 여자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클레어가 반했던 이유는 단지 그 남자의 터무니없이 아름다운 용모때문 만이 아니었다. 정원 괭이 손잡이만큼이나 널찍한 어깨, 숱많은 금발머리와 찬란하게 반짝이는 푸른 눈 때문도 아니었다. 수년 간 거친 말을 다루어 오며 균형 있게 근육이 잡혀, 멋들어진 녹색 킬트(kilt: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 아래 더할 나위 없이 늠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다리 때문만도 아니었다. 아니다,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것은 눈에 비친 모습이 아닌 귀에 들리는 무엇인가 때문이었다.

클레어는 킬트와 허리춤에 매단 은장식 주둥이 스포란(sporran: 킬트 앞에 차는 작은 모피 주머니), 두터운 양말 안에 찔러 넣은 상아 손잡이 단검, 한쪽 어깨를 넘겨 영주 문장의 배지로 핀을 찌른 타르탄(tartan: 스코틀랜드 전통의 격자 무늬 모직물) 차림새를 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 고독한 남자의 백파이프 소리를 들었다. 헤더(히스 속에 속하는 작은 관목) 벌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와 단조롭게 저음으로 울리는 백파이프 소리를 들었다. 컬러든(정확하게는 1746년 4월 16일에 있었던 Culloden Moor 전투를 말함. 스코틀랜드 서북부 지방의 고지대. 스코틀랜드 출신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통합 왕국의 왕이었던 제임스 2세가 명예혁명으로 퇴위하자, 제임스 2세의 손자 찰스 왕자가 스코틀랜드 전통의 스튜어트 왕가를 지지했던 제임스파Jacobite 및 하이랜드-스코틀랜드 고지 부족-와 왕권을 찬탈한 윌리엄 오렌지-네덜란드 왕자로서 메리의 남편- 공과 메리-제임스 2세의 맏딸-의 연합 군주에 대항했던 전쟁의 마지막 전투이다. 컬러든 무어 전투에서는 오천 명의 제코바이트와 구천 명의 영국 군대가 맞붙어, 영국군 사상자는 일흔여섯 명에 불과했던 반면 스코틀랜드 군은 천이백 명이 전사했다. 전사자가 많았던 이유는 제코바이트의 보급 상태가 워낙이 불량했던 데에 더해, 윌리엄 오렌지 공의 둘째 아들 컴버랜드 공작의 학살 명령 때문이었는데, 컴버랜드는 부상병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함으로써 '도살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1년이 지나지 않아 스코틀랜드 내의 제코바이트는 거의 완전히 소탕되었고, 윌리엄은 이 승리를 기념하여 항구 도시 포트 윌리엄을 건설했다. 하이랜드 족은 전쟁에서의 패배로 전통적인 클랜 Clan 체제가 단계적으로 와해 당했으며, 일부 씨족을 제외하고는 킬트의 착용이 금지되었다)의 총성과 쓰러진 남편을 비탄하는 미망인의 절규를 들었다. 승리에 들뜬 환희의 외침을, 패전의 비장한 침묵을 들었다. 보니 프린스 찰리(Bonnie Prince Charlie: 찰스 왕자. 카톨릭 이름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이며 군주 명은 웨일즈 공이다. 찰스 왕자는 제임스 2세의 손자로 스튜어트 왕가의 사실상 마지막 왕족이다)의 등장에 따른 희망을, 그의 패전에 따른 절망을 들었다. 캠벨의 배신을, 수세기 동안의 대 잉글랜드 전쟁으로 고통받는 스코틀랜드 인의 기나긴 울부짖음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