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해요. 그를 잡아야, 보석이 돌아오거든요.”

 

 

힘든 생에 사랑을 주던 ‘그’와 어린 딸 하원을 잃고 절망 끝에 자살을 택한 노하영. 죽은 그녀 앞에 나타난 풍요의 신 사누엘은 그녀가 이번 생의 기억을 가진 채 로맨스 소설에서 파생된 세계 데인에 환생하여, 환생한 ‘그’를 찾아내면 그녀의 딸 하원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가 그를 정확히 찾아내는 순간 그에게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면서.

딸 하원을 만나기 위해 거래를 받아들인 하영은 원래 소설 속에는 없던 인물인 아일 공작가의 막내 공녀 하엘로 환생하여 전생의 ‘그’를 찾기 시작하는데……. 하엘의 주변을 맴도는 각양각색의 남자들 중 과연 ‘그’는 누구일지?

 

 

“리시안서스의 꽃말은.”

“…….”

“변치 않는 사랑.”

 

 

2. 작가 소개

 

올로로소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3. 차례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드리 외전 1

#51. 드리 외전 2

#52. 드리 외전 3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4. 미리 보기

 

어제는 드물게도 수도를 벗어난 날이었다. 에린과 약속했던 티앙과의 여행. 그 약속을 지키러 나간 참이었다. 의뢰를 제외하고는 수도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여행다운 여행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들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언니! 언니, 빨리!”

“또, 또. 에린 뛰지 말라니까.”

커다란 호수를 눈앞에 두고 에린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우리가 택한 곳은 제국 중남부에 위치한 기보 영지. 커다란 호수와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이 인접해 있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위치에 있는 도시이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에 가까운 곳임에도, 기보 영지가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휴양지의 특성 덕분이었다. 온도 차가 그리 크지 않고 늘 훈훈한 공기를 품고 있어 눈은 즐겁고 몸은 노곤하다. 호수에 뱃놀이라도 갈 참이면 푸르른 숲과 깨끗한 하늘이 심신을 정화시켜주니,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다.

티앙이 끝내주는 곳을 골랐구나,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곳은 어떻게 안 거야?”

“할아버지가 알려주더라고.”

그러면서 조금 머쓱하게 웃는 티앙은 왜인지 쑥스러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내 손에 땀이 들어찼다.

아, 지금 좀 위험할지도.

내 심장이 경종을 울렸다. 차라리 철벽을 치던 때가 좋았는데. 언제부턴가 급격하게 다정해진 그가 부담스러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녹을 때가 있었다. 이대로 티앙과 계속 얘기를 나누면 큰일 날 것만 같았다. 홱, 고개를 돌린 나는 얼른 에린에게로 뛰어갔다.

“에린, 위험하잖아. 호수 쪽으로 몸 기울이면 안 돼.”

“에이, 언니. 내가 애도 아니고.”

“너 애 맞거든?”

“헤헷, 알았어요. 나 말 잘 들을게. 그러니까 오빠랑 놀다 와요, 난 신경 쓰지 말구.”

혼자 노는 척하면서 은근히 우릴 보고 있었던 모양인지 에린이 내 등을 다시 떠밀었다. 나는 눈을 추켜올리며 굳건하게 버텼다. 대학 엠티를 가본 적은 없지만 ‘그’에게 들은 적은 있었다. 이런 오지라퍼들이 꼭 한두 명씩 있다고 했다. 지금 에린이 딱 그런 상태인 듯 보였다. 요 앙큼한 것 같으니라고.

“에에리인?”

“피이.”

쭉 입을 내밀고 혀를 한번 빼문 에린은 이내 내 손을 잡고 호수 구경을 이어갔다. 아이고, 머리야. 지끈지끈 두통이 올 지경이다.

나는 에린의 손을 잡은 채 슬쩍 티앙 쪽을 돌아보았다. 사실 굳이 볼 필요는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진 기감이 그의 표정이며 한숨 따위를 전해주고 있었으니까. 웬 한숨일까, 궁금해서 쳐다본 것뿐이다.

“왜?”

“……아니야.”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웃어 보이는 그. 그리고 이어진 대화.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이랬던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였지. 열 살 때였나, 아님 그 후?

열 살 때라고 해봤자 3년 전인데 벌써 기억이 희미하다. 내게 망각이 허락되는 것은 이 세계의 기억뿐. 전생의 기억들은 희미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선명한 색을 입어간다. 그중에서도 유독 생생해지는 기억은, 그렇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하원이를 품에 안은 내가 수목원을 거닐고, 한 발 뒤에서 따라오는 ‘그’가 연신 셔터를 터뜨린다. 그만 좀 하라며 돌아보면 씩 시원한 눈웃음을 날리며 한 방 더. 못 말리겠다며 웃음을 터뜨리면 다가와 손을 잡고 속삭인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아무것도…… 으헉!”

“꺅! 언니!”

전생의 추억에 젖어 있었던 터라 현실 인식이 조금 늦었다. 반말인 부분만 제외하면 정확하게 같은 멘트에 반사적으로 대답을 날리다, 그것이 티앙임을 확인하고 너무 심하게 놀라버렸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다 발을 삐끗한 나는 그대로 호수 쪽으로 기울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에린의 손은 놓아버렸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기울어지는 내 몸은 미처 구할 생각을 못 했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새파란 호수에 나는 암담함을 느꼈다. 세상에.

빠져도 금세 나오겠지만 빠진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플라이!”

이렇게 흑역사 하나 쌓는 건가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았을 때, 티앙의 목소리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나를 감쌌다. 둥실 뜨는 몸에 실눈을 뜨니 코앞까지 다가왔던 호수가 멀어지고 있었다. 멍한 정신에도 새삼 신기했다. 티앙도 마법사였지, 참.

“어어!”

안도감이 강했던 탓일까, 나는 바람에서 벗어나 스스로 몸을 추스르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내 몸은 착실하게 티앙과 가까워졌다.

착.

“괜찮아?”

“…….”

공주님 안기로 나를 받아든 티앙이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이 괜찮냐고 물은 것인지 알 수가 없어 혼란해졌다. 자신 때문에 놀라 호수에 빠질 뻔한 것이 괜찮냐는 걸까, 아니면 멋있게 구하고 나서 하필이면 공주님 안기로 나를 받아든 것이 괜찮냐는 걸까.

둥실둥실 날아가는 정신줄을 붙잡을 생각도 못 하고, 나는 그저 얌전히 안겨 있을 뿐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내 얼굴이 붉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티, 티앙. 일단 내려줄래?”

“응.”

순순히 나를 내려준 티앙은 여전히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빤히 느껴지는 시선을 모르는 척 나는 툭툭, 옷을 터는 것에 집중했다.

“킥.”

“!”

귓가를 스친 웃음에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웃음이 가득한 티앙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듯 눈에 들어왔다. 손에 몽글몽글 땀이 솟는 참이었다. 미치겠다. 뭔가 간질거리고 부끄러워서.

“너 지금 공주님 안기 당했다고 그러는 거지?”

“……알면서 그렇게 들었냐!”

“아하하하.”

이 망할 자식. 그가 내 성격을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렷다!

상황을 파악하고 빽, 소리를 높이니 그가 아주 상큼하게 하하하 웃어젖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제어할 새 없이 쭉 그에게 뻗었다. 목표는 당연히 멱살이었다.

“너 죽고 나 살자. 이리 와.”

“으아, 에리인! 살려줘!”

다급한 척 에린을 찾지만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장난기가 가득한 그 얼굴에 뻗어나가던 손이 멈칫한다. 여기도 공주님을 안는다는 말이 있었나? 안으면 큰일 날 텐데? 하지만 신나 보이는 저 얼굴은 대놓고 장난쳤음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창 호기심 많고 활동적일 나이에 마탑에 처박혀 공부만 하고 있으니, 이렇게 나들이를 나오면 신날 법도 하지.

그래, 25년이나 더 산 내가 참자.

“후우, 너, 내가 봐준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공녀님!”

“공녀라고 부르지 마, 소름 돋아.”

“그러라고 한 건데?”

“…….”

취소. 잡히면 죽는다, 너.

-font-family:함초롬바탕;mso-hansi-font-family:함초롬바탕;font-size:11.0pt;">간절한 눈으로 묻던 ‘그’가 떠올랐다. 거하게 배신을 당하고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할 때 다가온 그를, 나는 ‘전혀’라고 할 정도로 의지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이가 발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미 홀로 판단하고 홀로 견디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뒤로 ‘그’가 어떻게 행동했었더라.

복잡한 눈으로 반을 쳐다보았다.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마차 밖만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처연하다. 아이 주제에 그런 얼굴 하지 말라고 볼을 확 당겨주고 싶었지만, 원인 제공자가 나이니 그럴 수도 없고.

내가 너를 휘두른다 했니? 반, 너야말로 나를 휘두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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