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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벽의 꽃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3권 (완결)
리버(Liber) 지음가하에픽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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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립 금 | : 0원 |
| 파일용량 | : 680 KByte |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300-17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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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아리엘일 것이다.
은빛기사단의 최연소 단장 아리엘 폰 하트하르스는, 반역으로 대화재가 일어난 황궁에서 제 오랜 짝사랑인 제2황자 라트니히 칸 비네시스가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다 죽음을 맞이했는데…… 눈을 뜨니 5년 전, 열일곱 살로 돌아와 있다!
지난 삶을 후회한 아리엘은 이번 생에선 그의 행복만을 지켜주기로 다짐하고, 그런 그녀에게서 라트니히는 위화감을 느낀다. 소유물로만 생각했던 아리엘이 저를 떠나버릴까 두려워하다 제 곁에 묶어둘 방법을 생각해냈으니, 바로 그녀가 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
아름답지만 미친 황자라고 불리는 라트니히와, 검술은 뛰어나나 다른 데선 둔하디둔한 아리엘의 마음은 언제쯤 통할 수 있을까.
“너, 내가 아는 아리엘이 맞는 거지? 그렇지?”
“나는 아리엘이 맞아. 나는 앞으로도 네 곁에 남아 있을 거니까.”
“약속한 거야?”
“그래.”
“내 손발 주제에 날 배신하면, 두 번 다시 햇빛을 못 보게 될 줄 알아.”
“응. 내가 널 배신하면 그땐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2. 작가 소개
3. 차례
#Chapter 14. 가깝고도 먼
#Chapter 15. 전조
#Chapter 16. 진실
#Chapter 17. 그날, 그 자리에서
#Chapter 18. 우리가 아는 이야기
#Chapter 19. 그 이후의 이야기
#Epilogue
4. 미리 보기
아까부터 뱃속이 묘하게 시큰거리고 가슴이 아릿하게 조여든다. 침대에 누웠을 때부터, 아리엘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부터, 그녀와 함께 궁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전 그녀와 이마를 맞대고 있었을 때부터 따스하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한 그 기이한 감각이 그의 심장에서부터 손끝까지 저릿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밝은 빛 덕분에 눈을 뜬 라트니히는 눈앞에 있는 상대를 바라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달빛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 손에 닿는 이의 얼굴엔 음영이 덧대어져 있었지만 수년간 그녀의 얼굴을 매일같이 봐온 그다. 라트니히는 이미 오래전부터 눈을 감고도 아리엘의 얼굴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이 정도 그림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제 오른손을 생명줄마냥 꼭 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리엘.”
입가에 감기는 그 이름이 퍽 부드럽다. 그는 제 부름에도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리엘.”
다시 불러도 돌아오는 건 색색거리는 작은 숨소리뿐이다. 숨소리에 맞춰 그녀의 몸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라트니히는 조금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솔직히 말해, 너 지금 안 자고 있지?”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게 정말 깊이 잠든 것 같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라트니히는 조금 더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아리엘.”
그의 눈에 아리엘의 새하얀 피부가 보였다. 상처 하나 없이 보드라워 보이는 그 피부는 기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새하얬다.
“진짜로 자는 거야?”
그녀의 작고 붉은 입술에서 숨소리가 색색 새어나오고 있었다. 라트니히는 이제 그녀의 길게 드리워진 금빛 속눈썹까지 셀 수 있었다. 그는 저 속눈썹 아래 얼마나 예쁜 녹빛 눈이 숨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너 뭘 믿고 그렇게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는 거야?”
라트니히는 이제 완전히 상반신을 일으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소중히 붙들고 있는 제 손이 아까부터 계속 화끈거리고 있었다.
“날 지켜야 되잖아.”
그의 손이 아리엘의 어깨를 잡아 부드럽게 넘겼고, 잠든 그녀는 그 어떤 반항도 없이 그의 손길을 따라 그대로 넘어갔다.
그녀의 몸이 돌아가 얼굴이 천장을 향하게 되자 그녀의 어깨에 실타래처럼 늘어져 있던 길고 반짝이는 머리칼들도 아리엘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달빛에 반짝이는 금발이 꼭 보석을 갈아 금실에 뿌린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자도 되는 거야?”
아리엘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그의 손을 쥔 채 색색 숨을 내뱉으면서 그렇게, 무방비하게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라트니히는 아리엘에게 붙잡히지 않은 손을 들어 그녀의 따뜻해진 볼을 만져보았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그녀의 볼이 그의 손바닥을 덥혀주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방향을 바꿔 제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아리엘의 눈꺼풀, 코와 입술을 쓸어내렸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지만 예민한 아리엘이라면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법한 강도였다. 하지만 그가 아리엘의 말캉한 입술을 손가락으로 조금 세게 누르고 비빌 때까지 그녀의 닫힌 두 눈은 도저히 열릴 기미를 보이지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던 라트니히가 피식 웃었다.
“……넌 내 앞에서 너무 무방비해.”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지금 당장 이 문밖에 다른 이의 인기척만 느껴져도 눈을 반짝 뜰 그녀는 언제나 라트니히의 기척만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곤 하였다. 사실 그는 그 사실을 제법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새하얀 이불에 감겨 제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고, 손끝까지 저릿한 감정이 다시금 솟구쳐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리엘의 말대로 그녀가 제 침대에서 자는 것은, 아니 그와 그녀가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은 근 5년 만이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저와 함께 자려고 하지 않았을 때 라트니히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는 제멋대로긴 하지만 이성관계와 사회 통념에 대해 무지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그는 기겁하는 그녀를 강제로 제 옆에서 재웠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트하르스 백작님을 사랑하시는 거예요?」
맹랑한 밀러너스 계집아이의 목소리가 그에게 물었다.
‘글쎄…….’
라트니히가 대답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걸까?’
그는 라리벨의 면전에선 그녀의 말에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그 멍청해 보이는 계집애는 하는 행동에 비해 꽤 통찰력이 있고 날카롭게 핵심을 찌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라트니히는 그녀가 말한 대로 아직 아리엘에 대한 제 마음에 확신이 없다.
이 기이한 감정은 그녀를 볼 때마다 치솟는 것으로, 꽤 오랫동안 느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라트니히는 굳이 그 감정의 정체를 파고들려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그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하는 아직 본인이 진짜로 하트하르스 백작님을 사랑하는지도 확신 못하고 계시잖아요!」
‘……건방진 계집애.’
라트니히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만만하게 저는 하트하르스 백작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 그녀의 콧대를 눌러주기 위해서라도 라트니히는 이번만큼은 그의 뱃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이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널 사랑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지?’
라트니히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가 배운, 그가 아는 사랑은 괴롭고 부질없으며 살아가는 데 있어 하등 쓸모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단 한 번도 그 감정을 아리엘에게서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라트니히는 아리엘을 보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그가 생각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동경, 신뢰, 믿음, 질시, 미움, 부러움 등등.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은 좋은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 라트니히의 마음을 들뜨게 할 때도 있었고 또 한없이 가라앉게 할 때도 있었다.
아리엘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게 느껴져 남들에게 보여주며 그녀가 제 것이라고 뽐내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제 궁에만 가둬두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꽁꽁 숨겨두고 싶을 때도 있다. 또 어떤 때는 그녀를 향해 분노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불타올라 그 새하얀 목을 조르고 싶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가 하면,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가슴 가득 따스한 무언가가 차오를 때도 있다.
아리엘에 대한 라트니히의 마음은 제멋대로에 그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통통 튀곤 하였다. 하지만 그는 딱히 제 감정에 제재를 걸지 않았고 언제나 제 마음 가는 대로 아리엘을 다뤄왔는데 그것은 그녀가 당연하게도 그의 소유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엘 역시 그의 행동에 단 한 번도 불만을 표한 적 없었다.
하지만 그 계집애, 라리벨 폰 밀러너스는 그것이 그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녀는 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항상 같이 있고 싶고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고…….」
‘항상 같이 있고 싶냐고?’
그것은 대답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녀가 제 소유물이냐 소유물이 아니냐를 떠나 라트니히는 언제나 그녀가 제 곁에 있기를 바라왔다.
‘나만 바라봐주었음 하냐고?’
라트니히는 제 손을 들어 여전히 쿨쿨 자고 있는 그녀의 두 눈꺼풀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거야, 당연하지…….”
이 손가락 아래 있는 두 눈이 저만을 바라보길 원한다. 애초에 그걸 원했기에 라트니히는 리노벨라의 독기 어린 충고도 두 번 돌아보지 않고 날름 삼켰던 것이었다. 그는 그녀의 녹안이 빌어먹을 세리엘도 세르히도 라리벨도 아닌 오로지 저만을 오롯이 담았으면 했다.
「꽉 껴안고 싶기도 하고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웃는 얼굴 한 방이면 다 용서해주고 싶고……!」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던 라트니히는 이내 제가 하고 있는 행동을 깨닫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도 라리벨의 들뜬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아, 어떡해! 그냥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기분이 좋고 아파요!」
“그렇군…….”
흥분한 라리벨이 말하는 감정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에 제멋대로였다. 가슴이 저릿하며 아프면서도 아주 기분 나쁘지 않은,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지금의 그의 감정과 똑같았다.
“이런 게 사랑이라는 거지?”
그는 쿵쿵 뛰고 있는 제 심장을 지그시 누르며 삐딱하게 웃었다. 도대체 이 기이한 감정은, 아니 이제는 사랑이라 불러야 마땅한 이 감정은 대체 언제부터 느끼게 된 것이더라? 너무나도 오래전 일이라 라트니히는 정확히 언제부터 그녀를 ‘사랑’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이 감정이 사랑이란 거지?”
라트니히는 아직도 제 감정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왜냐하면 라리벨이 알려준 사랑과 제가 알고 있는 사랑과는 몹시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보여준 사랑은 언제나 황제를 기다리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자포자기한 듯한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라리벨이 말하는 사랑은 잠시라도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마음이 이리저리 뛰어다녀 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애초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픔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라트니히가 그간 알고 있던 사랑의 개념과 뒤집어엎었다. 그가 죽은 제 어미에게서 느껴졌던 사랑은 슬픔과 체념뿐이었으니 말이다.
‘무엇이 진짜지?’
누구의 사랑이 맞는 거야?
“으음…….”
그때 꿈이라도 꾸는 모양인지 아리엘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자 라트니히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아리엘의 얼굴을 정면으로 돌려놓았다. 온전히 그녀의 얼굴이 다시 그의 눈에 들어오자 라트니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띠곤 다시 그녀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뭐, 무엇이 진짜든 상관없겠지.’
문득 라트니히는 제 손안에 온전히 들어온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지금 이 시간이 영원히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얌전히 그의 옆에 누워 있는 아리엘은 충분히 그의 소유욕을 채워주고 있었다.
“중요한 건 내가 너를 향한 이 감정에 거짓은 없다는 거니까.”
라리벨의 말대로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이라면, 앞으로 그는 아리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어차피 라트니히는 라리벨이 말해주기 전까지 제 안에서 꿈틀대는 이 감정을 제대로 정의 내리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설령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거짓이고 제가 본 어머니의 사랑이 진짜라 하더라도 그것 또한 상관없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 가짜라고 한들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 가짜가 되진 않으니 말이다.
라트니히는 아리엘과 항상 함께 있고 싶었다. 그것만은 언제나 진실이었다.
그는 그녀가 온전히 저만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고 꽉 껴안거나 지금처럼 손장난을 치며 만지작거리고 싶기도 했으며 굳이 그녀가 웃지 않아도 그녀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라트니히는 제가 생각해서 나온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아리엘을 옆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고 저릿한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라트니히는 그때 라리벨의 앞에서 말하지 못했던 제 감정을 확인하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어, 아리엘.”
제 손을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을 들어 그 손가락에 하나하나 입을 맞춰주며 라트니히가 속삭였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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