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개월 손님에게 마음이 흔들리다.

여자에 미친 아버지, 돈 욕심 많은 계모, 용기 없는 엄마 때문에 살아가는 재미가 없는 진아.

그러던 어느 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백수건달이 나타났다.

매사까칠, 짜증일색, 유아독존 재수탱이가 봄비처럼 슬그머니 마음속에 들어온다.

"우린 인연 같은 고상한 사이가 아니야. 단지 스쳐 지나갈 많은 사람들 중 한명일 뿐이지."

-차진아.



단 3개월의 시골 생활이 그의 인생을 바꾸다.

경찰이 잠잠해 질 동안 지낼 곳으로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자신의 조국 한국을 선택한 연우.

촌구석에서 깡만 센 의사를 만나다.

말보다 주먹, 밥보다 술, 남자보다 잠이 먼저인 천방지축 그녀에게 빠져들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내가 갖고 싶은걸 두 눈 뜨고 못 가지는 성미도 아니고, 그렇게 배우지도 않아서 말이야."

-도연우.



-본문 중에서-

사실 그 여자에게 말을 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촌구석에서 세 달 정도 죽은 듯이 있다가, 세 달 뒤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지려고 했으니까.

새카맣게 그을린 아줌마들밖에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젊은 여자는 병자처럼 유독 하얀 저 여자 하나뿐이었지만, 그래도 건드리긴커녕 말을 걸 생각조차 안 했었다.

나름 예쁘게는 생겼지만 그것뿐이었다.

흔한 미색.

아이를 낳고 바닷일을 하는 아줌마들 사이에 있으니 빛이 나는 외모다. 도시에 나가면 저 정도 얼굴, 몸매는 요즘 흔했다. 게다가 얼굴도, 몸매도 꽤나 좋은 축에 속했지만 핏기도 없는 새파랗기까지 한 얼굴색과, 그에 걸맞은 차가운 표정을 베이스로 한 얼굴이라면 뒤도 돌아볼 것 없이 거절이었다.

일주일 전 처음 본 날 방파제에 앉아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는 것이 조금 특이하게 보였을 뿐. 오늘은 슈퍼 평상 위에 앉아서 팩소주를 마시고 있는 게 일주일 전과 조금 다른 점일 뿐이었다.

“선생님!”

학교 선생인가?

저 몰골에, 저 주량을 가진 여자가?

아이들은 저 차갑게 생긴 여자가 뭐가 좋은지 까르륵거리며 다가갔다.

“왜?”

얼굴만큼 차가운 목소리였으나 아이들은 그것조차 익숙해 보였다.

오히려 깔깔거리며 그녀의 곁에 매달릴 뿐 도망가지도 않는다.

저 귀신같은 몰골을 한 여자를 보고 저러다니. 여기 아이들은 깡이 꽤나 센가 보다.

아.

귀신보다는 시체가 더 어울릴 거 같기는 하다.

“그거 맛있어요?”

“맛있어 보여?”

“그러니까 만날 드시는 거 아니에요?”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의 눈에 여자는 피식,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팩소주를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궁금하면 혀만 대 봐.”

얼씨구?

겨우 초등학생이나 됐을 아이들에게 팩소주라니!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을까?

“에퉤퉤!”

신나서 작은 혀를 쏙 내밀었던 녀석들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난리치는 모습을 보며 여자는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그러는 모습을 보며 다시 느긋하게 팩소주를 마셨다.

“선생님! 그렇게 쓰고 맛없는 걸 왜 만날 마셔요?”

“달잖아.”

“엑! 거짓말!”

“진짜야. 너희가 지금 입에 물고 있는 사탕만큼 달아.”

“어른 되면 그거 맛있어지는 거예요?”

아이들의 순진한 질문에 그녀는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약간 쓸쓸해 보이는 미소.

그래서 왠지 그 여자한테 눈길이 갔다.

“늦었으니 집에나 가.”

“그럼 선생님! 내일 봬요!”

헐.

진짜 선생이었나 보다.

저런 인간이 선생이라니.

세상이 망조가 들긴 했나 보다.

“보긴 뭘 봐! 오지 마!”

여자의 그 말이 익숙한 듯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여자는 결국 작게 손을 흔들어 주다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 뭐야?”

한쪽으로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하는 게 상당히 불쾌했다.

하지만 이 정도 불쾌감으로 얼굴에 표정을 드러낼 만큼 어리지는 않았다.

“관광객. 댁은?”

“여기 주인.”

턱 끝으로 가리킨 건물로 시선을 옮겼다.

「진료소.」

얼씨구?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다시 읽어 봤지만 분명히 진료소였다.

그 덕에 지루하기만 했던 이 상황이 조금 재미있어진다는 것을 느끼며 여자를 쳐다봤다.

“당신 의사야?”

“당신은 백수야? 꼬락서니하고는.”

“댁도 만만치 않아.”

내 말에 기분이 나쁘지도 않은지 여자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는 나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촌에 구경할 게 뭐가 있어서?”

“여기 있네.”

뭐가 있는데?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묻는 여자의 시선에 나는 특유의 비웃음을 날려 줬다.

“싸가지 의사.”

“큭!”

그 말이 기분 나쁘지도 않은지 여자는 허리까지 숙이며 웃었다.

잠시 그렇게 웃다가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아직 뜯지 않은 새 팩소주를 집어 나에게 던졌다.

탁.

날아온 팩소주를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아채는 모습에 여자는 웃었다.

“이봐. 당신.”

그리고는 가만히 팩소주를 내려다보는 나를 여자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불러다.

“취업에 실패하고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백수야?”

“그러는 넌 실력 없어 좌천된 의사냐?”

“하핫!”

여자는 이제 정말 즐거운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들했던 눈동자가 저렇게 빛을 낼 리가 없었으니까.

잠시 웃던 여자는 남은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빈 팩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며 일어났다.

“그거나 먹고 가서 자. 백수 씨.”

그게 그 여자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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