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은 사랑의 인연은
얼핏 악연의 굴레와 닮아 있었다.,

잘생긴 남자 선배와의 첫눈에 반한 사랑.
그런 일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첫사랑에 대한 아픔은 옅어져 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귤희 앞에 나타난 바로 그 남자 차서우.
여전히 잘생긴 외모에 근사한 분위기의 그가
다름 아닌 회사에 새로 부임한 이사라는 사실에 귤희는 경악하고 만다.
그녀가 보필해야 할 새로운 상사가 바로 그라니!
같은 회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그지없는데,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형벌과도 같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고, 옛사랑은 옛사랑일 뿐!
마음을 다잡고 일에만 정진하려는 귤희에게
서우는 ‘보고 싶었다’는 말 따위를 하며 다가오기 시작하는데…….



-본문 중에서-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젓가락을 귤희의 앞에 내려놓던 서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뭐가?”
“이제 와서 뭘 어쩌려고 이러는 거냐고요.”
역시 순순히 여기까지 따라온 게 실수였다. 고기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괜히 따라와 제자리에서 잘 살아 움직이고 있는 심장을 욱신거리게 만든 건 엄청난 실수였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이 말을 들은 건 그 중에서도 울트라 초특급 실수였다.
우당탕.
귤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바람에 얌전히 엉덩이를 받쳐 주고 있던 의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좀 어이가 없고 기가 찼던 것뿐인데 눈치 없이 너무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져 주는 의자로 인해 귤희는 두 배는 더 크게, 그리고 열 배는 더 거세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지금 나하고 장난쳐?”
물론 강하게 화를 내자 마음먹고 났더니 존댓말은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니.”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의연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서우 때문에 귤희는 점점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야! 차서우! 뭐? 다시 시작해? 누가? 내가? 내가 약 먹었냐? 그리고 누가 네 마음대로 그딴 거 기억하라고 했어! 우리 헤어질 때 내가 분명히 그랬지? 이름도 기억하지 말고 얼굴도 기억에서 깡그리 지우자고, 기억 안 나?”
기억을 떠올리려는지 오른쪽으로 한 번 눈을 굴리더니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
“근데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당신 치매야? 어?”
“아니.”
육질 좋은 고기에 적당하게 양념이 밴 갈비를 맛나게 먹던 다른 사람들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춘 채 발악하는 귤희와 태연하게 앉아 듣고 있는 서우에게 꽂혔다.
“야!”
“지울 수가 없더라. 아니, 지워지지가 않더라.”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
“다시 시작하자.”
파르르 떨고 있는 귤희에게 서우는 여전히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방법이 틀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깟 방법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귤희를 자신의 옆자리로 돌려놓는 게 시급했다. 막연한 그리움에 몸부림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조급함이었다. 막상 귤희가 눈앞에 있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돌았구나, 차서우.”
귤희는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길게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서늘함이 감도는 그녀의 눈빛은 서우를 움찔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봐.”
“그렇겠지. 자기밖에 모르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싸가지 차서우라면 5년 전에 아무렇지 않게 뻥 차 버렸던 어수룩한 옛 애인한테 뻔뻔스럽게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것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
허벅지 옆에 말아 쥐고 있는 귤희의 손이 말을 할 때마다 더욱 단단하게 오그라들었다. 추슬렀던 지난날의 감정들이 벌 떼처럼 그녀를 헤집었다.
“좀 더 일찍 나타나지 그랬어. 그랬으면 멍청하게 옛날 일 다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에 넙죽 예, 했을지도 모르는데.”
진저리가 난다. 더 이상 차서우에게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와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조차 귤희는 몸서리치게 짜증났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 못생겨졌어.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 싫어. 내가 남자 인물을 좀 따지거든.”
“지울 수가 없더라. 아니, 지워지지가 않더라.”
뻔뻔함의 극치. 어떻게 저런 애절한 눈빛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가 있는지.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는 결코 저런 눈빛이 아니었다. 자기가 더 화가 난 것처럼 눈에서 불똥을 튀겨 가며 냉정하게 돌아섰었다.
“미친 놈.”
사람들의 시선이 다 몰려 있는 가운데 귤희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괜히 안쪽 자리를 잡는 바람에 문까지 나오는데 심히 쪽팔리고 얼굴이 따가웠지만 목을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주미란.

1978년 3월 3일생.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최고의 글을 쓰고, 최고의 작품을 번역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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