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창밖의 달을 향해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자신의 운명인 마녀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빵집 그랑그랑의 주인과 아르비타 제국의 황제라는 이중생활에서 의외로 균형을 잘 잡아가고 있는 마녀 시스티나 노르, 시스 1세. 가혹한 근육통과 저주를 이기고 드디어 운명을 찾는데 성공하는 듯 했으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일기장에 숨겨진 비밀을 보고 말았다. 그렇게 고민에 빠진 마녀를 주위 사람 모두가 걱정하는데……. 빵집 마녀는 사랑과 국가를 둘 다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아이고, 폐하!’ 절규가 절로 나오는 황제 시스 1세의 선택은?

2. 작가 소개

양효진

1989년 3월, 절과 돌탑, 왕릉이 많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그 전에는 남들처럼 먹고, 자고, 공부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충실한 지금이 만족스럽답니다.

현재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는 해가 잘 들어오는 집에서

매일매일 마감에 쫓기는 삶을 사는 중.

▣ 출간작

엘샤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계약의 목걸이

너의 온기에 안기다

눈부신 그대

파란만장 태자호위담

그는 내 심장을 뛰게 한다

내 꿈으로 놀러 와요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공저)

차아제국 열애사(공저)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공저)

하늘 창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겨울엔딩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아이고, 폐하!

허니 앤 베어(공저)

▣ 출간 예정작

드라마틱!

3. 차례

#12. 레몬 아이스크림과 기다림

#13. 마녀와 아이들

#외전4. 레이딘

#14.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구나!

#15. 검은숲에서 온 손님

#16. 마녀와 저주

#17. 이 손 안에 있는 것

4. 미리 보기

“폐하, 오셨습니까.”

“네, 이제 시작하죠.”

서류가 높이높이 쌓였던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전체적으로 관리들도 늘어진 느낌이었다. 좀 우스운 게 가장 고령이신 고문만 활기차게 황궁을 누볐다.

“장마 대비를 위한 안건들이옵니다.”

두툼한 종이들을 읽으면서 도중도중 모르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레소는 장마 때도 비가 심하게 오는 편이 아니지만 다른 지역들은 심한 곳의 경우 집이 부서지는 일이 허다했다. 마을이 물에 잠기는 곳도 있었다.

“물에 잠기는 마을은 3년이나 피해를 입었네요. 근데 방법은 하수도 정비밖에 없나요?”

“네. 주변에 큰 강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좋은 수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근데 보니까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하수도 뚜껑이 하늘을 날았네요.”

“새로 만들어 끼우는 데도 예산이 또 들어갔습니다.”

재무장관님 눈썹이 꿈틀거리는 거 보니 하수도 뚜껑 가격이 제법 하나 보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하나에 70골드란다. 비싸! 엄청 비싸잖아!

“아마 올해도 잠기면 똑같이 예산이 들어간다는 건데. 이건 낭비잖아요.”

“그렇습니다.”

몇 년 동안 들어간 걸 보니 이 마을이 아주 돈 먹는 구멍이다, 구멍. 그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가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도무지 방도가 없어 위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하수도를 고치려면 아예 다 뜯어고쳐야 하나 보네요.”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그 방법이 사실 제일 좋긴 합니다만 기간도 최소 5년 이상에 영지 부채가 늘어나서 위험합니다.”

“근데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진 않네요.”

“물에 잠기다 보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지금 사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농토 때문이라고 하였다. 음, 할 수 없네. 해마다 돈을 잡아먹게 할 순 없으니 대책을 마련해야지. 이건 미리 한번 회의를 거친 건이기 때문에 관리들이 나름대로 생각한 해결방안도 쭉 적혀 있었다. 내가 할 일은 이 중 가장 좋은 걸 선택하는 거였다.

“일단 집 수리비 지원. 이거랑 마법사를 이용한 수해방지. 이 두 가지 안이 참신하네요. 예산도 감당할 만한 수준이고요.”

집 수리비 지원은 기초 공사를 할 때 처음부터 솟아오르게 높이를 확보해 짓는 방법이다. 집하고 사람만 안 잠기면 된다는 발상에서 나왔다는데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마법사를 이용한 수해방지는 말 그대로 고위급 마법사를 파견시켜 물을 저장한 다음 바다에 버리는 방법이었다.

“이건 그냥 읽어보기만 해도 효과가 만점일 거 같은데 왜 그 전까진 안 한 거예요?”

“크흠, 폐하. 고위급 마법사들을 움직이기가 힘드옵니다.”

소곤소곤 재상 각하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대규모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고위급 마법사들 중 몇은 오만하고 자존심도 무척 강하단다. 즉, 시켜도 일을 안 한다는 말이다. 아니면 터무니없는 금액의 출장료를 요구하거나.

“권력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파벌싸움을 하기도 하고. 하여간 대제께서도 골치 아파하신 게 마탑과 마법사들입니다.”

“롱 할아버지가 특이한 거구나.”

“네. 그렇습니다.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맞춤인 마법을 익히고 있는 고위급 마법사들은 죄다 거물입니다.”

끄응, 근데 그렇다고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쪽에다가 마구 퍼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마을에 사는 가구의 수는 150. 영지 안의 비율로 따지자면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물에 또 잠기게 하는 건 안 되지. 별수 없다.

“탈탈 털어보세요. 흠을 찾은 다음 콱콱 조르세요.”

“털라 하심은, 감사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마탑에 지원금 들어가잖아요. 거물이면 털어서 먼지 안 나올 리가 없어요.”

“좋은 생각이십니다만 교묘하게 잘 숨겼을 수도 있습니다. 제2안까지는 생각을 해두셔야 합니다.”

“제가 황제 되기 전에 많이 시끄러웠잖아요? 근데 원래 마탑은 중립이어야 한다고 법에 못 박혀 있죠. 황족들의 죽음과 자손들에 대한 조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자료가 산더미라고 들었는데 그중 쓸 만한 걸 찾아서 적당히 요리해보세요.”

재상 각하나 고문이 거물이라고 하실 정도면 아마 틀림없이 연결고리가 있을 거다. 음,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니 뭔가 길이 보이시는 거 같네. 근데 고문께서는 아직 조금 부족하다며 하나를 더 생각해보라 하셨다. 아, 좋지도 않은 머리를 쓰려니 힘들다!

“치사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최후의 방법은 돈 안 준다고 해야죠. 아, 이러면 되겠다. 예쁜 놈 빵 하나 더 주고 미운 놈 매 한 대 때리는 걸로 가요. 순순히 갈 경우 소속 학파 마법사들을 위해 장학금 지급. 뻗대고 안 갈 경우에는 반대로 국가 지원금 대폭 삭감.”

“호오, 파벌이 학파별로 형성되어 있다는 걸 잘 아시는군요.”

“제왕학 교양수업 들을 때 조금 배운 기억이 나네요. 시험이 영 쓸모없는 건 아니었나 봐요.”

외울 때는 이걸 빵집 주인인 내가 언제 써먹을까 싶었는데. 참 세상일은 몰라.

하여간 나머지 일은 알아서들 하신다고 해서 난 바로 다음 걸로 넘어갔다. 업무가 적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게으름을 피울 정도는 아니니까.

◇ ◆ ◇

“다 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기쁜 얼굴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황제를 본 후 재상과 고문은 인장이 찍힌 서류를 들고 나왔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황제의 업무는 끝났고 그들의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어머나, 간식은 안 들고 가십니까?”

먹을 걸 가져오던 하토르 부인과 마주친 그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네. 폐하가 날아가시기 전에 어서 들고 가게나.”

“좀 쉬신 후 책을 읽다 가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틈틈이 공부도 하고 계시답니다.”

“그런가?”

“네. 잘 모르는 건 레이딘 경에게 물어봐가면서 조금씩 익히고 계십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될 거 같아요.”

“흐음, 하긴 오늘 일처리는 아주 훌륭하셨지.”

“놀라웠죠. 아, 부인을 너무 오래 붙잡으면 안 되지. 그럼.”

쟁반을 든 부인과 엇갈려 그리 멀지 않은 재상 집무실로 들어간 두 사람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이 서류들은 끝났네.”

“네, 각하.”

보좌관에게 서류를 넘기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재상 마테르는 맞은편에 앉은 고문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많이 성장하셨습니다.”

“기쁜 일이지.”

“처음에는 진짜 눈앞이 캄캄했는데 이제 안정이 되고 나니까 좀 주위가 보입니다. 통상적인 대처는 아니었지만 이제까지의 일들을 보면 결과가 좋았지요.”

“그런데 뭐랄까, 즉위하신 지 1년이 안 되었는데 터지기도 많이 터졌어.”

“폐하 본인이 원인 제공을 하신 건 없지 않았습니까. 그나저나 하나도 말씀드린 게 없는데 어떻게 마탑과 황위 계승 싸움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아신 걸까요. 황족 수색 보고도 항상 최종보고서만 읽고 바로 다른 일에 들어가셨는데 말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을 만나셨기 때문이겠지.”

재상의 눈이 조금 커졌다. 고문은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설명했다.

“폐하께선 아주 어릴 때부터 항상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자라셨지. 빵집에 오는 손님들은 아주 많으니까 한마디씩 하는 말들을 듣고 사람을 보면서 알게 되신 거야. 인간의 본성이 선한 이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폐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잘 파악하고 계시네.”

“그리고 자금줄을 주무르는 솜씨가 기가 막히시지요. 돈 적게 쓰면서 최대 효과를 보는 방법을 묘하게 아신단 말이지요.”

마법사라는 건 노력만으로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재능을 타고 나야 한다. 고로 그들은 자존심이 세고 학자의 성향이 강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사의 세계에서 인정받으려면 뛰어난 정치력과 같은 요소도 중요하지만 일단 실력이 뒷받침 되어줘야 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실력을 비교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서로를 비교하고 스승을 비교하고 마지막에는 속해있는 학파를 비교했다.

장학금과 지원금 삭감. 똑같이 돈을 써도 이 방식이 더 효율적이었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교섭을 통해 혼자 거액의 출장료를 받아 챙기는 게 더 이득이다. 하지만 여기에 파벌이라는 것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만약 고위급 마법사가 한번 출장 나간 것으로 몇 명의 어린 마법사가 이득을 본다면 수많은 이들이 그를 칭송할 것이다. 그럼 이제 그 고위급 마법사는 황제의 다음 부름도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본인이 싫어도 다른 사람들의 보는 눈이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거절할 경우 지원금 삭감이 되면 거절한 마법사는 당연히 비난을 받는다. 마탑에 한 해 지원되는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1퍼센트만 줄인다 해도 마법사 하나가 힘써서 메울 수 있을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쪽은 명분도 있다. 삭감한 지원금을 수해비용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뭐, 사실 새 황제가 즉위하면 즉위 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묻어버리는 게 보통이죠. 하지만 폐하께서는 처음에 임시로만 하겠다고 하신지라 조사와 증거 보관을 쭉 하게 하셔서…….”

“꽤 요리할 재료들이 많지 않나?”

“그렇습니다. 재무장관은 돈 더럽게 많이 들어간다고 욕을 바리바리 했지만. 이렇게 써먹게 되었으니 화는 좀 풀겠군요.”

“여기에 쓰려고 모은 건 아니지만 일단 있는 걸 썩히는 것도 안 될 일이지. 그 작자들도 나처럼 훌렁훌렁 털리게 생겼네. 아이고, 고소해라. 나 혼자만 폐하께 당할 수는 없는 법이지. 어서 동지를 만들자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거 같은데 해마다 거액의 자금을 쑥 빼가는 게 늘 아니꼽던 터였다. 고문 자신이 현역으로 재상직을 할 때도 고위급 마법사들을 써서 해결하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늘 마탑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법을 무기로 내세워 쏙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하리라. 마탑은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그들이 지원받는 돈은 제국민들의 세금이었다. 고로 법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만약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고 그 경우에 해당이 되므로 아파서 죽기 일보 직전이 아닌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날씨는 예측할 수 없으니 텔레포트를 이용해 여태까지 피해가 컸던 지역으로 이동시키죠.”

“허어, 재상. 텔레포트 마나는 어디서 조달할 생각인가.”

“마탑에 드글거리는 게 마법사들 아닙니까. 연구비를 막아버리면 아마 실험실 밖으로 당장 튀어나올 겁니다.”

“자네도 참 폐하께 물들어버렸구만.”

“폐하께선 아마 연구비를 막는 게 아니라 실험 논문을 난로에 넣어 태워버리겠다고 하실 겁니다. 실험 결과물을 들고 웃으면서 이러시겠지요. 저 진에 마나를 부을 것이냐, 아니면 가루가 된 이걸 들고 연구실로 갈 것이냐.”

“부, 부정은 못하겠네.”

그리고 두 남자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황제 시스 1세는 이미 한번 보물을 녹여버린다고 협박한 전적이 있었다. 실험 논문이나 결과물 정도는 아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우리 녹봉도 삭감한다고 하시기 전에 일하지.”

“네, 고문.”

그리고 그들은 머리를 맞대며 한참이나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