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자, 만승지국의 황제 원. 그리고 그의 유일한 사랑, 장공주. 혈육에게 연심을 드러낸 황제의 진의眞意는 무엇일까.

‘장공주’ 그 이후의 이야기, 특별 외전 ‘公主의 重裏病’에서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유소다

필명 별사탕요정.

O형, 사자자리.

로맨스다운 로맨스를 로맨틱하게 풀어내고 싶은 글쟁이.

▣ 출간작

사랑하는 선생님

장공주

3. 차례

#01.

#02.

#03.

4. 미리 보기

뱃속에 묵직한 바윗덩이 하나가 들어앉은 것 같다. 주기적으로 꿀렁거리는 느낌도 찝찝한데, 덤처럼 딸려오는 이놈의 통증은 또 뭔지.

정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온몸을 회전시키다가 새우처럼 동그랗게 웅크렸다.

“아우우…… 배 아파.”

하복부를 손가락으로 꼬집으며 쥐어짜도 그 아픔보다 복통이 더했다. 이럴 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이불과 혼연일체가 되어 끙끙 앓아대며 견디는 수밖에.

한참 그러고 있자니, 궁녀 양선이 탕약을 쟁반에 받쳐 들고 침상 곁으로 다가왔다.

“공주님, 힘들더라도 잠시 일어나 좀 드시어요. 통증이 나아질 것이옵니다.”

“기다렸어!”

정은 벌떡 일어나 탕약 대접을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 쓴맛은 정말 싫어하지만 배와 허리가 아픈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코를 틀어막고 단숨에 들이켠 정은 양선이 내미는 과자를 급히 입에 넣었다. 한숨이 포르르 나왔다. 곧 약기운이 돌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흐잉. 양선아. 여인들은 어찌하여 매달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배도, 허리도, 가슴도 아프고, 기분은 우울하고, 자꾸만 단 게 먹고 싶고……. 정말 짜증나. 사내들은 아마 이 고통 평생 모르겠지?”

정이 툴툴거리자 양선은 쟁반을 선반에 올려놓고 공주의 허리를 꾹꾹 주물렀다.

“어쩔 수 없지요. 출가하시어 예쁜 아기님 생산하시려면 감인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출가…….”

사지를 쭉 뻗고 안마를 받던 정은 잠시 혼자만의 상념에 빠졌다가 흐흐 웃었다. 양선이 눈매를 가늘게 접고 고개를 저었다. 월경 중인 열세 살 소녀의 기분이란 실로 환절기 날씨 뺨치도록 변화무쌍하다.

“그래. 통경(通經)한 지 오래 되었으니, 이제 나도 어엿한 어른이지. 혼인하여 가군을 얻고, 회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으니까. 그런데…….”

활기 있게 중얼거리던 정은 이내 또 축 늘어졌다. 그러더니 샐쭉 고개를 꼬며 덧붙였다.

“연우는 어째서 아직도 나를 애 취급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야…… 연우 오라버니께서는 공주님을 워낙 어리실 적부터 돌봐왔으니, 갑자기 태도가 바뀌는 쪽이 더 어색하지 않사옵니까?”

“그럼 언제까지고 이렇게 오누이처럼 지내야 한단 말이야? 연우가 날 여인으로 보아 줄 가능성은 전연 없는 거야?”

정이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마를 멈춘 양선은 곤란한 듯 미간을 모았다.

황궁 궁녀로 입궁하여 공주의 놀이 친구처럼 지내게 되기 전에는 그녀 역시 평범한 소녀였다. 이웃집 오라버니를 짝사랑하여 가슴앓이도 실컷 해 보았고, 반대로 짝사랑을 받아 본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상전의 기분을 지극히 공감하기에 조금 마음이 안타까웠다.

아마 다른 이들이라면 입 발린 소리로 공주니까 다 된다, 공주답게 도도한 태도를 유지하라 조언하겠지만 실로 아무짝에 도움 안 되는 소리다. 과실나무 아래에서 바구니를 펼쳐 들고 이제나 저제나 열매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텐가.

“관계를 달리하고 싶으신 것이옵니까?”

“응! 진심으로.”

정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달거리가 시작된 후 신체에 빠른 변화가 찾아들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어났다. 그 관심은 자연스레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가장 친하고, 가장 매력적인 남자인 연우에게로 쏠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황족들의 혼인 시기는 사삿집보다 빠른 편이다. 월경통으로 고생할 때마다 궁녀들이 어서 출가하여 애를 낳아야 나아진다고 농을 던지는 통에, 마음속으로는 단순한 춘정을 넘어 그와의 백년가약에 대한 기대까지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홀로 멀리까지 생각해 두어도 상대는 무슨 사시사철 푸른 송백처럼 변함이 없었다. 답답하고 갑갑하지만 그렇다 해서 대놓고 고백할 용기 또한 없다.

“연우가 정말 좋아. 많이 연모해. 하지만 이런 말…… 당사자 앞에서는 못 하겠어. 당최 날 여인으로 보아 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도전할 기개가 생기지.”

“하오시면…….”

양선은 무릎걸음으로 정에게 바짝 다가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고개를 끄덕여 가며 듣던 정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성미?”

“예,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매력을 뽐내는 것이지요. 일명 허를 찌르는 계교라고 할까요. 연우 오라버니께서 공주님께 예상치 못한 여성미를 느끼시면 그때부터 공주님을 달리 보기 시작하실 것이옵니다. 장담하건대 자리에 누웠다 하면 공주님 꿈을 꾸며 화풍병을 앓을 터여요!”

“지, 진짜일까?”

“그럼요! 제대로 느끼기만 하면요. 이렇게 어여쁘신 공주님인데, 두 눈 멀쩡한 사내라면 누구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사옵니까?”

양선의 자신 있는 어조에 솔깃해진 정은 상기된 뺨을 매만지며 희망에 부풀었다.

“허면 어떤 식으로 여성미를 보이면 좋을까? 내 직접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가져다줄까? 아니면 바느질을 배워서 의복을 지어 줄까? 아니면…….”

“그런 건 사내들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시답잖은 일 아니옵니까?”

“그럼 어찌…….”

“이년의 언니가 형부를 유혹할 때 썼던 방법이 있기는 하온데…….”

양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쭈물쭈물 시선을 피하였다. 정이 조바심을 내며 재촉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그것이…… 이년의 언니는 서인이라 그렇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고귀한 공주님께서 행하시기엔 좀 경박한 것 같기도…….”

“이런 거 저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야! 빨리 말해 보아, 현기증 나게 하지 말고!”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던 양선이 다시 정의 귓전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정은 열심히 경청하다가 전신의 피가 얼굴로 확 몰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참으로 부끄럽고도 대담한 시도였다. 한데 어쩐지 잘만 이루어지면 효과가 있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모르쟁이 어린 소녀들의 엉큼한 꿍꿍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