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투우장의 황소처럼 다량의 콧김을 내뿜으며 한동안 나를 노려보았다.
“왜, 왜 이래?”
황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얼마나 가까웠던지 나는 그의 동공 속 홍채가 부챗살처럼 움직이는 것까지 다 볼 수 있었다. 그 안에 점처럼 작아진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어머! 아…….”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내 팔을 홱 잡아당기더니 숨도 못 쉴 정도로 꽉 껴안았다. 그것은 어려서 유행했던 레슬러 묘기 중 하나인 킹코브라 작전과 같았다.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인데, 입까지 막히는 바람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내가 바보같이 ‘어머!’하며 입을 동그랗게 벌린 순간, 입속으로 들어온 타인의 혀의 감촉은 상상보다 훨씬 놀라웠다. 게다가 귓가를 때리듯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남자의 굵은 신음소리까지 더하면 그것은 놀라운 것을 떠나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예민한 입 안쪽에서 그의 혀가 파르르 진동을 일으키자,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러자 그는 그 조그만 움직임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또 한 번 힘주어 나를 안았다.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이 밀착된 가슴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이 난타공연을 펼쳤다. 이윽고 공기 중에 쭈우욱 하고 입술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내 입은 자유로워졌고 차츰 숨도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또다시 스르르 눈을 감고 얼굴을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는 입술을 부딪쳤다.
멍청이, 멀건이, 멍텅구리, 얼간이, 어리보기, 얼뜨기, 맹추, 머저리, 맹꽁이, 밥통, 등신, 천치, 방퉁이, 칠뜨기, 팔뜨기, 반편이, 인숭무레기, 미련퉁이, 맹순이, 한심이, 바보였던 나는 두 번째 혀의 역습을 당한 후에야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온몸을 얽어맨 그의 포옹을 풀기 위해 어릴 적 동생과 레슬링 게임을 할 때 쓰던 몽구스 기법, 즉 킹코브라 자세를 푸는 데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전법을 쓰기로 했다. 두 손으로 그의 겨드랑이를 간질이자 그가 잠깐 움찔했다. 이때 나는 비록 입 안을 차지한 그의 혀 때문에 소리 내어 외치진 못했으나 속으로는 ‘이얍!’하고 기합을 주면서 있는 힘껏 그를 밀쳤다.
“어, 어? ……어!”
역시나 킹코브라는 몽구스 기법에 스르르 힘을 잃으며 떨어져나갔다. 내가 얼마나 세게 밀었는지 그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는 더 이상 뒤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의 뒤로 눕다시피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손으로 쓰윽 문질렀다. 그런데 축축한 뭔가가 손등에 묻어났다.
뭐, 뭐야, 이게!
손등에서 반짝이는 것은 한눈에도 알아챌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녹말을 맥아당으로, 맥아당을 포도당으로 바꾸는 일종의 소화액, 즉 타액이었다. 그것도 내 것만이 아닌 그의 것이 섞인 일종의 타액 칵테일이었다. 유전자는 피보다 입 안쪽의 상피세포에서 더 쉽게 추출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타인과 타액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유전자 정보가 유출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유전자 정보를 교환한 듯 했다.
“너, 너…….”
허락 없이 마음대로 유전자를 교환한 죄를 묻기 위해 삿대질을 했다. 하지만 나의 검지는 마치 수전증을 앓는 사람처럼 허공에서 바르르 떨어댔다. 이럴 때는 뺨이라도 후려쳐서 매운 손맛을 보여주어야 했건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려야만 했다.

출간작

《스톡홀름 신드롬에 관하여》, 《시비스킷에 관하여》, 《그들만의 이야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착각》, 《늑대의 정령》,《푸른 수염의 아내》

출간 예정작

《스톰》- 늑대의 정령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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