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뜻밖에 우리는. 조은수와 류지훈은 그렇게 사랑에 빠져 우리가 되었다.

일 잘하고 깔끔한 매너를 자랑하는 인텔리커피의 에이스 사원 류지훈 대리. 실력 있고 악착같이 일하지만 돌아오는 건 ‘독한 년’이라는 소리뿐인 신입사원 조은수. 사랑 때문에 무너진 어머니를 기다리느라 메말라버린 남자와, 진창 같은 삶에 자기 몫이라고는 없어 항상 전쟁처럼 살아온 여자에게 사랑은 미친 짓이고 사치다. 세상을 향해 선을 긋고 벽을 둘러치는 데 익숙한 두 사람. 사랑이라고는 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누구보다 달달한 은밀한 연애.

“난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고, 때론 그 사랑이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았어요. 그래서 난 그게 정말 무서웠거든.”

“…….”

“그런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 나를 살게 하니까, 조은수가.”

나를 살게 하는 것도 바로 당신이라는 이야기를 나긋하게 내쉬는 숨과, 턱밑을 어루만지는 손길로 대신했다.

“쉽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게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게.”

“그런데 조은수, 넌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2. 작가 소개

신민영

사소한 인생을 근사하게 살고 싶다.

촌스러운 낭만을 기억하면서.

블로그 : http://blog.naver.com/ajwannabe

▣ 출간작

불꽃

유혹의 기술

불가분의 연애

▣ 출간 예정작

친절한 여자

3. 차례

#08. 그대 나를 안아주오

#09.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10. 나는 별을 맛보았다네

#11. 토닥여줄게요

#12. 넌 내가 선택한 우주

#13. 우리 이토록 사랑하지만

#14.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15. 사랑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한다면

#16. 나의 자랑, 너랑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주방에 선 남자는 침대에 엎드려 기대에 찬 눈을 한 은수를 보고 쑥스러운 듯 웃었다.

“솔직히 실력이 형편없어요. 흉보면 안 됩니다.”

“그래도 용감하네요. 난 시도도 안 하는데.”

“그게 자랑이에요?”

“자랑은 아니지만…….”

“조은수랑 살면 밥 얻어먹기는 글렀네.”

남자는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했지만 은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함께 사는 일. 가슴이 벅차게 사랑하고, 헤어짐이 아쉬워 몸부림치면서도 그와 함께 사는 일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와의 결혼은 자신에게 너무도 먼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여자가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몇 가지 간단한 주전부리를 가지고 남자가 침대 맡으로 걸어왔다. 인스턴트 콘 수프와 이르게 나온 딸기와 청포도 따위, 솜씨를 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꽤나 귀여웠다.

남자는 침대맡에 의자를 끌어다 앉더니 은수 앞으로 식기를 놓아준다. 시트를 끌어올려 몸을 가린 은수는 남자가 내려놓은 트레이에서 포도 한 알을 집어 먹었다.

“근사한 데서 맛있는 거 사준다더니. 사기 쳤어…….”

“지금이라도 갈까요?”

“벌써 11시 넘었거든요?”

“아 그랬나. 어쩐지 피곤하더라. 너무 힘을 썼나 봐.”

남자의 능청스러운 말에 은수는 남자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아프지 않게 쳤다. 못 말릴 사람이다.

남자는 개구쟁이처럼 웃더니 딸기 한 알을 들어 은수의 입에 넣어준다. 오물오물 그것을 먹는 은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지훈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물들었다.

“조은수.”

“응?”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내가 뭘 맛있게 먹고 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고 하셨거든?”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은수는 먹던 것을 멈추고 지훈의 얼굴을 본다. 그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라는 단어가 유달리 정답게 느껴졌다. 여자가 느끼는 ‘아버지’의 느낌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류지훈이 갖고 있는 그 포근한 느낌이 문득 부러웠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남자가 품에 기대는 은수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물어본 적이 있어. 아빠, 왜 아빠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나만 먹는데 아빠가 배가 불러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요?”

“그건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야.”

“아…….”

듣기만 해도 흐뭇한 이야기였다. 은수는 다시금 마음 가득 부러움이 차올랐다. 그녀에게도 분명 그랬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애틋함을 잊어버렸지만.

“아버지는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시인이었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리님이 적어준 류석 시인의 시…… 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은수가 남자의 가슴팍을 손끝으로 살금살금 간질이며 웃었다.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지훈도 따라 웃는다.

“난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고, 때론 그 사랑이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았어요. 그래서 난 그게 정말 무서웠거든.”

“…….”

“그런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 나를 살게 하니까, 조은수가.”

은수가 다시금 입술을 베어 무는 남자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키스를 받으며 눈을 감았다.

나를 살게 하는 것도 바로 당신이라는 이야기를 나긋하게 내쉬는 숨과, 턱밑을 어루만지는 손길로 대신했다.

키스를 마친 남자가 어느덧 어깨만큼 자라난 여자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면서 빙긋 웃는다.

여자의 입에 포도 한 알을 더 넣어준 남자가 오물거리는 입술을 바라보면서 착한 눈을 깜박였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연애도 해보고. 회사 사람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수없이 많은 사람들하고 같이 밥 한 끼 먹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로 많고 많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하고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난 단 한 번도 그런 마음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쉽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게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게.”

“그런데 조은수, 넌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마음속에서 큰 종이 울린 것처럼 웅, 하는 울림이 느껴졌다. 그 소리는 잔잔한 호숫가에 던진 조약돌이 내는 파동처럼 온몸으로 웅웅 퍼져나갔다.

한참을 말없이 은수의 얼굴을 바라보던 지훈이 트레이 옆에 작은 반지함을 내려놓았다.

“분위기 좋고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거 든든히 먹인 다음에 놀라지 않게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내가 이래. 너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겠다.”

지훈은 침대에 내려놓았던 작은 함을 열어 그 안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반지를 꺼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아 그 위에 반지를 올려놓고 꼭 쥐어 준다.

“조은수. 우리 결혼하자. 나랑 결혼해줘.”

두 눈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 번도 내색이 없던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묵묵한 진심이 은수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지훈은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은수를 품에 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게.”

지훈이 다정하게 얼굴을 감싸 눈을 맞췄다.

“울지 마, 좋은 날인데.”

남자의 말에도 은수는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조은수 씨, 나 받아주는 겁니까?”

남자는 눈물만 흘리는 은수에게 재촉하듯 간절하게 물었다. 은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다시금 으스러질 듯 세게 여자를 안았다.

조은수를 만나 사랑하고, 그녀에게 평생을 약속하며 다짐을 받는 일.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