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되게 좋다.”
뜬금없이 내뱉는 말에 가원은 불쑥 고개를 들다가 코앞에 와 있는 유성과 얼굴을 마주하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녁에 바닷바람을 가시느라 부엌에서 머리 감고 대충 몸을 씻어낸 것밖에 없는데 좋은 냄새가 난다니, 그의 말이 여간 생뚱맞게 들리는 게 아니었다. 달콤한 먹잇감을 던져 놓고 덫에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야수 같아 가원은 오한이 일었다.
유성이 허리를 감았던 손을 들어 가원의 머리카락을 만지작댔다.
“너…… 나랑 살래?”
가원은 기절할 듯 놀라 눈이 커다래졌다.
“무, 무슨 말이에요, 그게?”
예상은 했던 터라 유성은 약간의 실망을 안고 객쩍게 대답했다.
“진짜로 내 색시 되려느냐고 묻는 거야. 술집에서 이 남자 저 남자 품에 안기는 것보다 한 남자 품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
술집 이야기가 나오자 가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서울에서 팔려갈 뻔했던 그 술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라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어머니와 외국으로 가면서 날 다시 술집에 보낼 셈이었군요?”
“집으로 보낼 순 없으니까.”
“내가 신고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면…….”
“신고? 후후. 네 사촌 오빠란 사람, 네가 경찰에 신고하기도 전에 널 죽일걸.”
“…….”
“널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고 했지? 그 사람들이 얼마나 네게 힘이 되어줄지 모르겠지만, 자칫하면 너 때문에 그 사람들까지 위험해져. 원래 사람 죽여 본 놈이 피의 위력을 아는 거거든. 게다가 난 남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한국에서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간 이 여자 때문에 꼼짝없이 발이 묶일 테니까.
“방법이 있을 거예요.”
“네가 그 방법을 찾아내기 전에 난 여길 떠나야 해. 선택은 네게 달렸어. 포기하고 날 쫓아간다면 네 안위는 내가 보장해. 하지만 날 쫓아가지 않겠다면 앞으로의 네 안위에 대해선 내 알 바 아니야.”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같이 살자고 해요?”
“너와 내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니까.”
가원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럴 순 없어요!”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막상 거절당하자 유성은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너 같은 건달 주제가 감히 대그룹 상속녀를 넘보느냐, 그런 거야?”
“그런 게 아니라…… 사, 사랑하지 않으니까.”
“살아온 게 동화책 공주님이라 사랑이 목숨보다 중요한 줄은 알겠는데, 현실을 똑바로 봐. 사랑이 널 살려주는 게 아니야.”
“어쨌든 난 그쪽을 쫓아갈 수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난 가족의 복수를 해야 해요.”
“그래, 복수. 답도 안 나오는 복수. 그만 잠이나 자자.”
유성이 체념한 듯 말을 자르고는 다시 끌어당겨 안으려고 하자 가원이 질색해서 그를 밀어냈다.
“좀 떨어져서 자면 안 돼요?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떨어져 자면 내가 불안해서 잠을 못 자.”
그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끈으로 묶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긴 도망가 봐야 섬이잖아요. 도망 안 갈 테니까 걱정 말고 편하게 자요.”
“너야말로 걱정 말고 자. 아무 짓 하지 않을 테니.”
가원이 미심쩍은 듯 물었다.
“정말……이에요?”
“자꾸 귀찮게 물으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그 또한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비누 향을 풍기며 그녀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단전 부위가 뜨끈해지더니 뜨거운 덩어리가 계속해서 몸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고, 발정 난 남자를 도발할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던지 가원도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긴장으로 떨리는 가슴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밤새 문풍지를 들썩이는 바람이 꼭 자신의 심장처럼 위태로웠다.

저자: 이조영

글을 사랑하고,
글에 미치고,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글쟁이.
늘 영화처럼 선명하고 함축적인 메시지가 있는 소설을 쓰고자 노력한다.

[노다지 하숙집에는 앙큼 고양이가 산다][시누대 숲에 가면 바람이 보인다][학교를 접수하라!] 외 출간.
[올드맨(가제)] 퇴고 중.

홈피: 글쟁이 마을(http://piuri.net)
이-메일: yeunnor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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