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고기 낚는 거라면 영인 씨가 더 잘할 거야. 난 바늘에 떡밥 끼워 던져놓고 찌 움직이길 기다리는 거라면 잘하지.”

향수회사 ‘향’의 명예회장 비서로 첫 출근을 한 날 아침, 지영인은 장미꽃을 가져온 곰 아저씨를 만난다. 둔하고 순박해 보이는 곰 아저씨, 하지만 순수하고 다정한 곰 아저씨! 영인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장미꽃다발을 들고 그녀의 공간을 찾아오는 곰 아저씨 이창이 둔하기는커녕 섬세하고 멋진 남자라는 것에 서서히 눈을 뜬다. 작은 새처럼 쉼 없이 곰 아저씨 창의 주변에서 날갯짓을 하는 영인과 그런 그녀를 보듬어주는 창의 달콤 소소한 연애.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나랑 아저씨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나같이 세련되고 지적이고 예쁜 여자랑, 아저씨같이 미련하고 순진해빠진 남자랑 궁합이 맞을 것 같아요?”

“서로 좋으면…….”

“이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구요. 아저씨와 난 절대 어울리지 않아요. 그리고 난 만나는 사람도 있단 말예요. 그 남자는 큰 회사 오너의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아저씨 헛물 그만 켜시고 정신 차려요. 내가 아저씨 조금이나마 생각해서 하는 소린데…… 그런데 아저씨 하필이면 왜 꽃 배달해요? 다른 거 하지. 왜 하필이면 배달을 하냐구요.”

2. 작가 소개

이선미

1971년 대구 출생.

성숙한 사람들의 사랑, 철부지들의 사랑, 자기애, 집착 등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그리고 싶어 하는 작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담아내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고.

▣ 출간작

아라사의 서우여

석빙화

광란의 귀공자

10일간의 계약

커피프린스 1호점

하록과 배태랑

달의 시 外

3.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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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잠시 뜸을 들인 아저씨는 담담하지만 어쩐지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나는…… 믿지를 못했어. 얄팍하게 사랑한 것인지도 모르지. 난 사랑했기 때문에 더 불안했었어. 사랑만 알았지 거기에 고통이 있다는 건 몰랐어.”

이제 보니 정말 어리다. 어린 시절 불에 한번 데고는 다시는 성냥불조차 켜지 못하는 어른 같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왕소심.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되는데 왠지 불쌍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순수한 사람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힘들어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슬픈 느낌에 젖고 말았다.

하지만 난 이런 느낌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남자에게 사랑받고, 여리고 가엽게 여겨지고 보호받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남자를 감싸고 보호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계획에 없는 것이란 얘기다.

“아저씨가 그렇다면…… 그래야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대꾸해버렸다. 어차피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힘들지 않았는데…… 널 알기 전에는…….”

나는 뜨끔 놀라 휘둥그레 뜬 눈으로 아저씨를 보았다.

힘들지 않았다…… 날 알기 전에는? 대체 무슨 뜻일까? 날 알고부터는 힘들어졌다는 뜻?

하지만 왜? 날 조금만 좋아하기가 힘들다는 뜻일까?

설마…….

밖이 소란스러웠다. 식사가 끝난 모양이다. 하지만 주방엔 어색하면서도 달뜬 침묵으로 채워져 있었다. 곰 아저씨의 말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여운이 내 입에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아저씨가 수돗물을 잠그고 몸을 돌렸는데도 그 침묵은 깨어지지 않았다. 젖은 손을 청바지에 닦는 게 보였다.

시선을 내려 본 아저씨의 손은 의외로 섬세했다. 남자답게 마디가 굵으면서도 투박해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그런데 손등에 사선으로 긴 하얀 흉터가 있었다. 내가 뚫어지게 보는 걸 느꼈는지 아저씨도 자신의 손을 보았다.

“어렸을 때 장미 가시에 긁힌 자국이야.”

나는 손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

“그런 흉터가 있는데 어떻게 계속 장미를 만져요? 아저씬 상처받으면 도망가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시선을 올려 쳐다보자 아저씨가 눈을 피하며 몸을 돌리려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봐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도망가면 끝이에요.”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난 아저씨의 속마음을 보려고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저씨의 눈동자도 꼼짝도 않고 내 눈을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뺨에 아저씨의 손이 닿았다. 손가락의 감촉이 거칠었지만 오히려 그 거친 느낌에 가슴이 뛰었다.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내 맥박도 점점 빠르게 뛰었다. 아저씨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인지 내가 떨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몸이 달아올랐다. 등으로 뜨거운 뱀이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난 아저씨의 거친 손에 만져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저씨의 팔에 꼭 휘감겨서 넓은 가슴에 으스러지도록 안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는 하나라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건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뺨에 닿은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 눈은 흥분과 긴장으로 촉촉이 젖어갔다. 내가 고개를 한껏 쳐들고 바짝 다가갔을 때 아저씨는 싱크대와 나 사이에 갇혀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저씨를 몰아붙여놓고는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의 입술을 훔쳤다. 눈을 감고서 까치발을 하고는 손을 꼭 잡은 채 입맞춤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입술에 느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몰랐던 내 욕망이 나를 더욱 부추겼다.

손을 올려 아저씨의 팔을 잡았다. 그 단단하고 두툼한 근육의 감촉에 놀라며 눈을 떴다. 여전히 키스를 바라는 눈으로 턱을 올린 채였다. 아저씨의 눈빛이 뜨거워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은근한 눈길에 가득 찬 남자의 욕구에 몸이 더 흥분되었다. 아저씨의 눈이 나로 인해 흔들리고 뜨거워져 있는 것이다. 아픈 사람처럼 붉어지고 숨결이 거칠어지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서는 것이다.

나로 인해, 나를 원해서…….

그 생각을 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눈에 아저씨의 입술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 아저씨의 입술이 내 입술을 비비고 파고들었다. 턱에 느껴지는 수염의 감촉이 말할 수 없이 자극적이었다. 달콤한 느낌보다는 짜릿함이 더 강했다. 물컹하고 부드러우며 뜨거운 감촉이 입술을 태우는 것 같았다.

키스는 깊어졌고 나는 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아…….”

강렬한 전율이 입술에서부터 발끝 손끝까지 퍼져갔다. 아저씨의 키스는 의외로 격렬하고 거칠어서 입술로 피가 몰렸다. 온몸이 녹아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으음…….”

입술이 부풀어 오를수록 감각은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뜨거운 감각에 휩싸여서 침을 삼키는 것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에 입술은 말라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는데 내 혀가 핥은 건 아저씨의 입술이었다.

“흣!”

놀라서 떨어지는 아저씨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나는 숨이 가빠져 있었고 아저씨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때 난 내 손이 아저씨의 가슴 위에 놓여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아저씨의 손은 내 허리를 잡고 있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떨어졌다. 이건 돌발사태였다.

우왓!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난 내가 아저씨와 키스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도 내가 먼저 유혹한 거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 돼!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쭈뼛쭈뼛 걸음을 떼며 재빨리 인사를 했다.

“저, 점심 잘 먹었어요. 이제 가봐야겠어요.”

“영인 씨…….”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주방을 나왔다. 골치 아픈 건 싫은데……. 하지만 가슴이 높이 뛴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몸이 몸살 앓은 뒤처럼 나른하면서도 개운한 이 느낌은 도대체 뭐지? 아아, 모르겠다.

잊어버려야 된다.

반드시 잊어버려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