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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휘린(輝潾) 2부 1권
은서우 지음가하에픽2016.03.22
| 판매정가 | : |
|---|---|
| 판매가격 | : 0원 |
| 적 립 금 | : 0원 |
| 파일용량 | : 600 KByte |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295-98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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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그대는 알까? 그대가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도 많이 그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진 제국의 허랑방탕한 황태자 신유성 앞에 좌대신 김종찬의 종질녀, 야무지면서도 아름다운 김채영이 나타났다. 허송세월하던 그를 바로세우고 황제에의 길로 이끌어주는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리는 유성이지만, 사실 김채영의 정체는 서나라의 진명 세자 은세류. 여자로서 왕위계승권을 쟁취해낸 그녀는, 진나라를 안으로부터 무너뜨리기 위해 잠입한 것이다.
처음에는 제 뜻대로, 제 계획대로 모든 게 진행될 줄 알았던 은세류. 하지만 저에게 온 마음을 다하는 유성을 보며, 그녀의 마음에는 미묘한 기운이 덮어드는데…….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지해주며 옆에서 바라봐주는 그녀의 정인 진비월.
혼란한 국정, 혼란한 마음들 속에서 그들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더 이상은 저를 찾지 말라고 전하의 연정을 잘라내려고 했던 제가, 어제 종일 전하를 생각하고 있더군요. 솔직히, 저도 참 많이 놀랐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당장 내 여인이 되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대가 나를 사내로서 허락할 때까지를 잠자코 기다리겠어. 대신, 그대에게 다가가는 나를 밀어내지만 말아줘.”
2. 작가 소개
은서우
자칭 현실주의자라면서 머릿속에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세상에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느려터진 손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 출간작
휘린(輝潾)
휘린(輝潾) 외전
3. 차례
序
제1장. 독수리의 지친 날개
#1-1
#1-2
#1-3
제2장. 붉은 작약
#2-1
4. 미리 보기
우대신의 딸인 김수영이 기별도 없이 황궁의 동궁전을 찾은 까닭은, 혼담의 상대자인 황태자 신유성을 직접 만나서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 막상, 수영은 황태자와 인사를 나누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는 오뉘지간처럼 친근하게 지내는 이황자과도 담소를 나누고 오겠다는 핑계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김채영이 신유성과 단둘이 있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해주는 모양이다. 지켜보는 이목이 가득한 공간에서 김채영이 황태자와 단둘이 있었다는 사실은 궁인들의 가벼운 입들에 오르내리면서 또 다른 소문을 만들 터.
황태자 신유성이 맘에 두고 있는 여인은 우대신의 딸이 아니라 종질녀이며, 이들은 상당히 애틋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김채영이 동궁전의 정문을 나서고 난 이후에 벌어질 상황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양 시종에 의해 문이 닫히면서 - 그리고 그 시종은 황태자의 하명에 따라 주위를 완전히 물렸다 - 넓은 방에는 김채영의 눈앞에는 신유성이, 신유성의 눈앞에는 김채영이 오롯이 앉아 있음이다.
사실 신유성은 아까, 김수영을 뒤따라 방에 들어서는 채영을 보면서 자기가 꿈속에 있는 줄 알았다. 너무도 그리워서 새카맣게 타들어갔던 심장이 그토록 보고팠던 임을 드디어 보게 되면서 순간 멈춰버릴 뻔했다. 만약 김수영만 없었더라면, 당장에 달려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난, 역시 그대가 없으면 단 하루도 살지 못하겠다고 열렬히 고백하면서 뜨겁게 입을 맞췄으리라.
‘……물론, 지금도 충분히 그럴 수 있건만.’
지금은 아니 된다. 바른 자세로 앉아서는 다상의 찻잔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김채영의 아리따운 자태에서 풍기는 냉랭한 기운이 함부로 그녀에게 손을 뻗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두고서 어떤 아무개가 예기를 품은 냉기가 과연 아름다움과 연결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붉디붉은 작약처럼 화미하면서도 그믐달의 서늘한 달빛을 닮은 도도함까지 함께 지닌 그녀에게는 가능하다. 그녀의 일부라면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 아름답다. 미치도록 아름답다. 반은 강제로라도 입술을 열어 숨결을 빼앗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옷고름을 풀어내어 하얀 나체로 제 품에 가두고 오로지 그의 이름만 부르게 만들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로 안 된다. 손가락 하나 잘못 움직였다가는 정말, 그녀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 얼굴마저도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말이다.
‘허니, 지금은 신중해야 한다.’
유성은 혀끝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닦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채영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채영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찻잔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유성의 눈길도 채영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이전까지는 무심결에 지나쳐서 몰랐었는지, 그녀의 손가락은 길었으되 영경 최고의 기녀인 홍주처럼 곱고 여리지는 않았다. 손톱을 가지런하게 자르고 살갗도 깔끔했으나, 손가락 마디마디에 작은 상처들이 있고 검지와 중지에는 약간의 굳은살도 박여 있었다. 세속에 염증을 느껴 자연으로 들어간 아비를 따라서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더니, 여태껏 자기가 도맡아서 살림하고 아비를 보살피느라 무지 고생했나 보다. 힘겨운 벽지 생활을 묵묵히 감내했을 그녀가 애잔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인생은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자신과 함께함으로써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그려본다.
“실은……, 소녀가 황태자 전하께 꼭 아뢰어야 할 말이 있어서, 수영에게 절 황궁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드디어 채영이 말문을 열었다. 유성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서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그랬었군. 나는 처음에는 김수영이 기별도 없이 갑자기 날 찾아와서 무슨 일인가 싶다가, 연이어 들어오는 그대의 얼굴을 보고서야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다.”
“다시는 절 찾지 말아달라고 전하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장본인이면서 결국 제가 먼저 다시 전하를 찾았사옵니다. 소녀의 오만방자한 행보가 언짢지는 않으셨습니까?”
“언짢다니, 당치 않다. 나는 그대가 어째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에 그대가 더더욱 고맙고 반가워. 황궁에 걸음을 놓기가 어디 쉽나? 헌데도 그대는 주변의 이목들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우려를 감수하고 나를 만나러 와주었지 않았나? 사실, 나야말로 그대가 못내 그리웠다. 다시는 그대를 찾지 말라는 까닭을 백번 이해하면서도 오늘은 기어이 그대에게로 달려가려고 했어. 오늘 오전까지는 어떻게든 견뎠는데, 내일부터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더군. 정말로 그대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숨이 탁탁 막혀서 무슨 수든 써야겠더라고.”
신유성은 황태자의 체면과 위신은 모조리 내려놓고 사랑에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내로 채영을 바라보았다. 싱그러우면서도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에 설레는 순박한 사내 같다. 채영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따라 웃는 유성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조용한 가운데 눈빛만 주고받았지만 어느새 꽤 많은 이야기를 적은 듯했다. 적어도 유성에게는 그러했다.
“……그날, 전하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저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저에 대한 전하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고 열정적인지를, 그리고 전하에 대한 저의 마음은 진정 무엇인지를. 저를 진심으로 열애하신다고 고백해주신 전하를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이제는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유성의 심장이 쿵쿵 뛰어댔다. 단박에 ‘해서 그대는 앞으로 어떻게 하겠노라고 마음을 정했는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채영의 너무도 침착한 분위기를 고려하니, 지금 시점에서는 자기 욕심만 앞세운 조바심을 드러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듯하다. 지금 취해야 할 행동은, 채영이 마음속의 이야기를 온전히 꺼내놓을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기. 손바닥이 땀으로 눅눅해지는 듯해서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앞으로 전하를 뵙지 않아도 나는 정말 괜찮을까. 헌데, 짐작과 달리 그다지 괜찮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찾아오시던 분을 더 이상 보지 않으니 못내 허전했습니다. 전하와 나눴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생각나고, 잠자리는 편안했는지, 진지도 잘 드시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더 이상은 저를 찾지 말라고 전하의 연정을 잘라내려고 했던 제가, 어제 종일 전하를 생각하고 있더군요. 솔직히, 저도 참 많이 놀랐습니다.”
하루 종일 나를 생각했다고? 유성은 너무도 좋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입술 밖으로 흘릴 뻔했다.
“그리고…… 제 박정함에 아무런 말도 하지도 못하고 돌아서셔야 했던 전하의 그 슬픈 뒷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렸습니다. 맘이 너무도 아팠습니다. 그날의 일이 전하께 상처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제가 괴롭더군요.”
마지막 덧붙임에 유성은 흠칫했다. 순전 그 때문에 채영이 마음 아파하거나 눈물을 짓는 것이 진심으로 싫었다. 다시는 저를 찾지 말라는 그 말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도, 당숙과 재종형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아니었나?
유성은 눈 깜짝할 새에 찻상을 옆으로 밀쳐버리고 채영에게 바투 다가왔다.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내 분명히 그대에게 말했었다. 나는 그대가 나를 만나러 와준 것이 마냥 고맙다고.”
“전하…….”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당장 내 여인이 되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대가 나를 사내로서 허락할 때까지를 잠자코 기다리겠어. 대신, 그대에게 다가가는 나를 밀어내지만 말아줘. 그대가 걱정하는 문제들은 내가 모두 해결하겠다. 허니, 그대를 향한 내 진정을 외면하지 마라. 그리…… 해주면 아니 되겠나?”
사랑을 갈구하는 절절한 고백. 채영은 유성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는 오로지 자신만을 담고 있었다. 훤칠하고 멋진 황태자가 오로지 저만을 열애한다고 말한다면 젊은 여인들은 가슴이 마구 뛰는 데다가 오금까지 저려 어쩔 줄 몰라 하겠지.
하지만 세류는, 그 가슴이 뛰지 않았다. 이쪽의 진짜 속내를 한 조각이라도 들켜서는 안 된다고 시선 하나에도, 손짓 하나에도, 말투 하나에도 세세히 신경을 쓰고 있어서일까. 머리는 냉철하게 움직이나 심장은 들뜨기커녕 차가워진다.
아니, 뜨거워질 심장이 없다. 은세류가 여인으로 지녔던 심장은 이미 ‘그’에게 줘버리고 없다.
우습게도 신유성이 사랑을 짙게 이야기할수록 이미 오래전에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한 ‘그’의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다. 마냥 다정한 ‘그’의 눈빛 앞에서가 아니라면, 그녀는 여인이 아니다. 두근거릴 심장이 애당초 없었다. 그래서 본질은 은세류인 김채영은 신유성의 사랑을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
채영은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끄덕끄덕 고갯짓했다.
금방 전까지만 해도 유성은 그녀의 마음도 나와 같다고 9할은 확신했었다. 하지만 만일이라는 가정 아래에 붙는 최악의 경우인 1할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어서 얼마의 불안을 끌어안고서 채영의 답변을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의 답변을 확인했다. 비로소 그의 낯빛이 여느 때보다도 환해졌다.
순간의 기쁨을 주체치 못한 유성은 채영의 허리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채영이 재빨리 손바닥으로 그의 입술을 막았다. 유성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채영은 냉랭하게 화내지 않고 유성의 맘을 이해한다는 듯이 제법 부드럽게 타일렀다.
“아직은 아닙니다. 제가 전하를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해주신 그 약조를, 당분간은 지켜주십시오.”
“그, 그래야지.”
당분간이라면 비록 지금은 막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어쨌든 끝이 있다는 소린가. 유성은 채영이 그를 사내로서 받아들이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로 했다.
“하오시면 이만 팔을 풀어주지 않으시렵니까? 저의 허리를 이리 세게 잡고 계시면, 제가 긴장되어서 오늘 전하께 꼭 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다 하지 못합니다.”
“알았다.”
함께 있으면 긴장된다는 말은 듣기에 좋지만 팔을 풀어달라는 부탁은 서운하다. 유성은 아쉬웠지만 채영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채영은 바로 보통걸음 하나 정도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유성은 가슴 한쪽이 아렸다. 대략 한 걸음 정도의 간격, 팔을 뻗으면 손은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안 된다. 눈으로만 재면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심적으로는 상당히 멀다.
“허면 이젠 말해보아라. 내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가?”
“전하와 저의 관계를 위해서, 제가 감히 전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들입니다.”
“나와 그대의 관계를 위해서?”
유성은 말의 이면에 담긴 김채영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그대는 나와의 관계가 깊게 발전하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려는가. 내가 그대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대가 하는 부탁이라면 내 다 들어주리다.
“예.” 하고 답하는 채영을 보고는 유성은 반색했다.
“그래, 어서 말해봐.”
채영은 유성을 위해 싱긋이 웃어주고는 본론의 말머리를 꺼냈다.
“황궁 밖에 전하께서 총애하시는 여인을 하나 두셨다고 들었습니다. 전하께서 그 여인을 지금도 얼마나 아끼시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저를 위해서 그 여인과의 관계를 정리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황태자 전하를 다른 여인과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는 소린가? 온유한 말투로 포장되어 있으나 분명히 다른 여인에 대한 질투심이다. 유성은 얼결에 환호성을 흘릴 뻔했다. 실현이 가능한 바람이면, 황태자 전하를 다른 여인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그 말을, 다시금 들어보고 싶다. 자신이 채영에게 안달복달하듯이 그녀도 오로지 자신에게만 얽매여드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유성은 웃음을 지으면서 사내로서의 소망을 잠시 접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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