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24살)
강남 32층 건물 소유주의 철없는 손녀.

이태석(32살)
은우 할아버지가 소유한 건물 1층에서 국수 장사하는 강직한 성격의 따뜻한 남자.



감히 나더러 32살의 냄새나는 노총각과 결혼을 하라고! 것도 7평짜리 비좁은 가게에서 국수장사나 해먹고 사는 남자랑! 맙소사 이게 말이 돼! 한참 싱싱한 24살 몇 백억 자산가의 손녀인 이 김은우가 그걸 수긍할 거라고 믿으신 거야!

- 수백억이 아니라 수천억도 내가 번 돈이 아니면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 이 무의미한 말씨름 그만하죠.

오 마이 갓! 이 남자 뭐니? 설마 이거 진담은 아니죠! 이봐 이태석 씨 지금 당신 엄청난 실수를 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나 강남 요지 중의 요지에 건물 올린 건물주의 단 하나뿐인 손녀라고. 잘 생각하란 뜻이야. 즉 엄청난 재산 상속녀와의 결혼이라고. 당신 땡잡은 거리고!

- 땡잡은 건지 쭉정이를 잡은 건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죠.

은우는 진심으로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녀가 손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았던 남자의 거절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유가 뭐야! 대체 왜 날 거절하는 건데?

- 김은우 씨가 날 사랑하지 않는 이유만큼 중요한 답이 또 있나요?

사랑 때문이라고? 유통기한이 고작 3년밖에 안 되는 사랑 때문에 감히 나 김은우를, 그 많은 돈을 포기하겠다고? 당신 제 정신이야!





-본문중에서-


반듯한 서안 위에 하얀 봉투가 곱게 누워 있는 모습을 쓰윽 쳐다본 은우의 눈에 물음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에계, 이게 뭐예요?”
냉큼 봉투를 열어 확인한 은우는 돈 액수에 소리를 꽥 질렀다.
“뭐긴 카페 차릴 돈이지. 그 돈으로 소원이라는 카페, 근사하게 차려서 일억으로 불려 와 봐. 네가 장담한 대로 육 개월 안에 돈 불려서 오면 나도 더는 태석이 놈하고 결혼하라고 강요 안 해.”
“할아버지! 꼴랑 오천만 원으로 저한테 뭘 하라고요?”
급기야 은우는 제 못된 성질머리를 고스란히 내밀며 대거리를 했다. 영수의 눈썹이 자유자재로 실룩거렸다.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처럼 구는 손녀 머리를 딱 한 번만 시원하게 쥐어박고 싶은 표정이었다.
“이 돈도 많이 생각해 준 거여. 암, 땅을 파 봐. 십 원짜리 동전 한 닢이 나오나. 장사는 더한 거여. 간이고 쓸개고 죄 지나가는 것들한테 내놓는 것이 장사여. 오죽하면 장사하는 놈 똥은 개도 안 주워 먹는다는 말이 있겠어.”
“그런데 이태석 씨랑 결혼하라고요?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고 장사하는 남자랑? 지금 할아버지 말씀은 정말 논리에 맞지 않잖아요!”
“그놈은 달라. 진짜 진국이여. 근본부터가 다른 놈이란 뜻이여.”
“싫어요. 시골에서 국수 장사나 해 먹고 살다 상경한 냄새나는 노총각, 딱 질색이라고요!”
“그럼 그 돈 육 개월 안에 일억으로 돈 불려서 오든가!”
충격 받은 상태에서도 그녀는 농담이라고, 그냥 하는 소리라고 말해 주길 간절히 바라며 할아버지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하지만 영수는 요지부동이었다.



목 차

프롤로그.
제1장. 사냥꾼, 덫을 놓다.
제2장. 여우, 제 꾀에 제가 넘어가다.
제3장. 여우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들.
제4장. 늑대를 삼킨 여우.
제5장. 늑대, 여우를 홀리다.
제6장. 여우, 사로잡히다.
제7장. 늑대와 춤을.
제8장. 늑대와 여우, 넘어지다.
제9장. 여우, 젖어 들다.
제10장. 늑대의 유혹.
제11장. 달콤하게 녹아내린 밤.
제12장. 달콤하게 채워지다.
제13장. 낯선 동거.
제14장. 아프지만 뜨거운 사랑을.
제15장. 또 한 걸음 더.
제16장. 행복한 약속.
에필로그.